지도자의 말은 나라를 대표하고
시대와 역사의 기록으로 남아
사인에게 연설문 손대게 한 건
시스템·리더십 스스로 부정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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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영
에이케이스 대표
전 청와대 춘추관장
보스턴의 존 F 케네디 대통령 기념관에는 이런 구절이 쓰여 있다. “사람은 죽고 국가는 번영하거나 쇠락할 수 있어도 생각은 살아남는다.” 케네디 대통령은 새로운 세대의 미국인을 강조한 ‘뉴프런티어’ 캠페인을 통해 새로운 시대의 언어, 세계를 보여주고자 했고 지금도 그렇게 기억되고 있다. 소련과의 우주 탐사 경쟁에서 미국이 뒤처졌을 때 그는 1962년 라이스대 연설에서 “거대한 로켓을 타고 미지의 천체에 대한 미지의 임무를 수행한 후 지구로 안전하게 귀환할 것이다”는 인류의 달 착륙 계획을 약속했다. 7년 후 아폴로 11호를 타고 도착한 닐 암스트롱은 달의 표면에 성조기를 꽂기 전에 자신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거대한 도약”이라는 말로 화답한다.
제3차 세계대전을 부를 뻔했던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했던 순간이라고 불리는 쿠바 미사일 위기 때 그는 ‘운명의 날 시계’를 돌리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쏟는다. 총성 대신 말과 글이 오가는 13일간의 외교 전쟁을 치러냈다. 폭격주의자들과 맞서 해상봉쇄라는 전략을 끌어내면서 대국민담화를 통해 소련에는 협박의 메시지를, 국민에게는 상황과 비전을 전달했다. 동시에 니키타 흐루쇼프와는 서신과 전화, 대리인 면담을 통해 핵미사일 철수라는 거래를 완성했다. 이 전 과정에는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문 담당자였던 테드 소렌슨이 함께했다. 폭격을 반대한 유일한 군 수뇌부였던 국방장관 로버트 맥나마라는 영화 ‘D-13’에서 공포탄을 쏘며 충돌을 조장하는 해군 제독에게 다음과 같이 외친다. “각하께서 결코 폭격을 하지 말라 하셨소.” “발표 명령은 분명 각하에게 받아야 할 거요.” 그리고 덧붙인다. “이건 봉쇄가 아닌 하나의 새로운 언어요. 그 누구도 시도한 적이 없는 케네디 대통령이 흐루쇼프에게 보내는 언어란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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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위에 부담을 느끼고 사랑을 찾아 떠난 에드워드 8세의 뒤를 이어 영국 왕에 오른 조지 6세는 말더듬이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의 전쟁에 임박해 불안에 떠는 국민에게 대국민 라디오 연설을 해야 하는 왕은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다. 권위를 버리고 여러 선생을 통해 가혹한 훈련을 받으며 또박또박 진심을 담아 연설하는 것을 배운다. 영국의 정신과 영국인의 삶을 대변했던 그는 결국 전쟁을 앞둔 한 나라의 국왕 역할을 훌륭히 수행한다.
DA 300
로널드 레이건 전 미 대통령은 배우 출신이라서 소통을 잘한 것이 아니다. 무명의 정치인일 때부터 지역에서 부단하게 정책을 연구하고 토론하며 칼럼을 쓴 결과로 ‘레이거노믹스’라는 철학을 가진 대통령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뛰어난 연설 능력을 가진 버락 오바마 현 대통령은 총기난사 사건으로 숨진 9세 소녀 크리스티나를 추모하며 51초간 연설을 중단하기도 하고, 백인 청년의 총기난사로 목숨을 잃은 흑인 목사 장례식에서는 추모사를 읽다가 잠시 고개를 숙이더니 갑자기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불렀다. 지난해 캐나다 40대 총리 쥐스탱 트뤼도는 다양한 인종과 계층, 종교를 망라한 남녀 동수 내각을 출범시킨다. 기자의 질문에 그는 “2015년이니까(Because it’s 2015)”라며 "캐나다를 닮은 내각”이라고 밝힌다.
우리 대통령은 국민과 2016년을 부정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말했다. “독재자는 힘으로 통치하고 민주주의 지도자는 말로써 정치를 합니다. 제왕은 말이 필요 없습니다.”(『대통령의 말하기』, 윤태영) 전설의 스피치라이터 테드 소렌슨은 회고록 『카운슬러』를 다음과 같이 맺는다. “세계는 탁월한 지도자뿐 아니라 그에게 조언을 하고 보조할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조언자의 충고, 조력자의 도움, 카운슬러의 상담. 하지만 궁극적으로 의사 결정은 오로지 대통령만이 할 수 있으며 또 그래야만 한다.”
유민영 에이케이스 대표·전 청와대 춘추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