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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검객’ 최인정, 또 마지막에 울었다

황태자의 사색 2021. 7. 29.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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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검객’ 최인정, 또 마지막에 울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7.29 00:03 | 경제 7면 지면보기

 

기자

배영은

최인정(왼쪽)이 27일 펜싱 여자 에페 단체 에스토니아와 결승전에서 공격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인정(31·계룡시청)은 펜싱을 “삶”이라고 했다. 이유가 있다. “펜싱을 하는 동안 그 안에서 희로애락을 모두 느끼기 때문”이다.
 

펜싱 여자 에페 은 이끈 ‘에이스’
단체전서 자주 마지막 주자 맡아
금 못 따면 자책감에 눈물 펑펑
“도쿄 메달에 만족, 동료들 덕분”

처음엔 ‘어쩌다 보니’ 펜싱 선수가 됐다. 충남 금산군 금성면 마수리에서 태어나 금산여중에 진학했다. 때마침 학교에 펜싱부가 있었다. 선수가 되기로 마음먹고 세부 종목을 고르려 하니, “우리 학교엔 에페 선수밖에 없다”고 했다. 선택의 여지 없이 에페 검을 쥐었다.
 
금산여고 펜싱부는 선수가 4명밖에 없는 ‘초미니 팀’이었다. 그런데 2007년 전국 종별 펜싱선수권에서 여자 고등부 개인전과 단체전을 석권했다. 개인전 우승자도, 단체전 우승의 일등공신도 모두 2학년 최인정이었다. 미래의 여자 에페 에이스는 그때 태동했다.
 
국가대표의 꿈도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최인정은 열아홉 살이던 2010년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다. 이듬해 아시아펜싱선수권에서 여자 에페 개인전 금메달을 땄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는 단체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여자 에페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이었다.
 

경기에 지고 우는 최인정을 위로해주는 동료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그 후 9년이 흘렀다. 최인정은 지난 27일 도쿄올림픽 여자 에페 단체전에서 두 번째 은메달을 수확했다. 런던의 막내가 도쿄에선 에이스로 피스트에 올랐다. 선배 강영미(36·광주서구청)와 후배 송세라(28·부산시청), 이혜인(26·강원도청)이 그 환희를 함께했다.
 
그 사이 대한민국은 최인정의 눈물을 여러 번 봤다. 그는 유독 단체전 경기가 끝난 뒤 많이 울었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선 결승에서 중국에 19-43으로 대패한 게 분해서 울었다. 2016년 리우올림픽 때는 8강에서 에스토니아에 1점 차로 져서 또 울었다. 당시 막내 최인정이 마지막 주자로 나섰다가 역전 결승점을 내줬다. 그는 “내가 다 망쳤다”며 자책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결승전이 끝난 뒤에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중국과 연장에서 다시 마지막으로 실점했다. 연장전 시작 후 최인정이 먼저 점수를 냈는데, 심판이 “상대를 찌르기 전 무릎이 바닥에 닿았다”며 득점을 무효로 처리했다.
 
흔들린 최인정은 결국 중국의 마지막 공격을 막지 못했다. 경기 후 “분명히 먼저 찌르고 나서 무릎이 닿았다고 생각했다. 심판이 아니라고 해도 버텼어야 했다”며 펑펑 울었다.
 
그로부터 3년 뒤, 최인정은 도쿄올림픽 단체전 준결승에서 또 중국을 만났다. 침착하고 의연했다. 6라운드에선 중국 선수의 전선이 허리 부근에 엉킨 걸 발견하자 경기를 중단하고 직접 정리해주는 여유도 보였다. 한국은 경기의 대미를 장식한 최인정의 활약을 앞세워 중국을 꺾고 결승에 올랐다.
 
세 번째 올림픽에서 맞이한 두 번째 결승전. 최인정은 이번에도 한국의 ‘마무리 검객’으로 나섰다. 그리고 리우올림픽 8강 상대였던 에스토니아에게 금메달 포인트를 내줬다. 그는 경기 후 “큰 대회에서 마지막 주자를 많이 맡았는데, 계속 은메달만 따서 아무래도 신경이 쓰였다. 심적으로 많이 힘들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더는 “금메달을 못 따서 죄송하다”며 울지 않았다. 대신 “영미 언니와 동생들이 너무 잘 뛰어줘서 결승까지 올랐다. 올림픽 메달을 가져갈 수 있어 만족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역사는 반복됐지만, 에이스의 어깨는 한결 가볍다. “올림픽은 내가 펜싱을 하는 이유를 보여주고, 증명하고, 느낄 수 있는 무대”라고 최인정은 말했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보여주고, 증명하고, 느꼈다. 더는 울 이유가 없다. 


배영은 기자 bae.youngeun@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마무리 검객’ 최인정, 또 마지막에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