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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점령 프랑스서도 나쁜 프랑스인이 더 위험했다

황태자의 사색 2021. 7. 29.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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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점령 프랑스서도 나쁜 프랑스인이 더 위험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7.29 00:40 | 종합 26면 지면보기

 

기자

이훈범 기자

무엇을 위한 반일인가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서울 정동길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꿀릴 게 없는 아름다운 길이다. 이문세가 노래한 대로 “이제 모두 세월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게 많다. 그중에서도 “언덕 밑 조그만 교회당” 정동교회와 덕수궁 돌담, 그리고 그 밑을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이 변함없다.
 

고작 20년 존재한 돈덕전 복원
무능했던 고종도 투사로 미화
보수 친일로 모는 정치적 악용
나쁜 한국인들을 더 경계해야

한때 덕수궁 돌담길을 함께 걸은 연인은 헤어진다는 속설이 있었지만, 그건 “정동 언덕 위에 가정법원이 있었기에 이혼하는 부부들이 찾아 생긴 말”이라는 게 길 가다 주워들은 해설사의 설명이다. 지금 그 법원은 서울시립미술관으로 변모해 더 많은 연인들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이 길에 짜증을 유발하는 모습들이 생겨났다. 우선 미국 대사관저를 지키는 경찰 버스 대여섯 대가 차로 하나를 거의 차지하고 늘어서 있다. 그 바람에 차량들은 차로 하나로 교차 통행을 해야하고 보행자들은 옹색한 가설 인도로 어깨를 부딪치며 지나야 한다. 추우면 히터를 트느라 더우면 에어컨을 트느라 버스는 늘 시동이 걸려있고 연신 매캐한 매연을 뿜어댄다.
 
2019년 한 대학생단체 회원들이 대사관저 담을 넘어들어가 점거농성을 벌인 이후 강화된 경비 조치다. 당시 사다리 2개를 놓고 담을 넘는 학생들을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던 경찰이 이제 반대로 (늘 그렇듯) 지나치게 많은 인력으로 오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찌푸려진 눈살을 가까스로 바로잡고 구세군 교회 쪽으로 언덕을 걸어오르다 보면 더욱 짜증나는 장면이 기다리고 있다. 덕수궁 담벼락 한 켠을 허물고 건물을 짓는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이해 못 할 돈덕전 복원
 

세계 어디 내놔도 빠질 것 없이 아름다운 서울 정동길. 하지만 치욕의 역사와 반일감정, 그리고 그것을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밥벌이로 삼는 ‘악한의지’가 스며있다. [연합뉴스]

문화재청 설명에 따르면 “일제에 의해 훼철된 돈덕전(惇德殿)” 복원 공사다. 1907년 대한제국의 고종황제가 외국 사절들을 맞던 곳이며 순종황제 즉위식이 열렸던 장소라서 ‘역사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경운궁(덕수궁의 옛이름)의 북서쪽 구석에 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이 건물을 왜 복원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특별히 의미 있는 건축 양식도 아니고 인근에 있던 러시아 공사관을 본떠 만든데다, 그 자리를 오랜 세월 지키고 있던 것도 아니고 고작해야 20여년 자리했을 뿐인 건물을 말이다. 더구나 설계도도 남아있지 않아 있던 그대로 복원할 수도 없고, 그래선지 돌과 벽돌로 제대로 짓는 게 아니라 철골로 겉모습만 살리는 복원이 왜 필요한 것인지 말이다.
 
옛것은 무조건 되살려야 한다는 건가. 그렇다면 조선시대가 지금 우리가 본받아야 할 이상향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건물이 필요하다면 차라리 현대적 건축양식과 전통을 조화시킨 이 시대가 자랑할 만한 걸 짓는 게 낫지 않을까.
 
‘역사적’ 의미도 밭긴 마찬가지다. 돈덕전은 1902년 열릴 예정이던 ‘고종 즉위 40주년 칭경예식’을 위해 지은 것이었다. 고종은 이 행사를 통해 대한제국의 위용을 대내외에 과시하고자 했다. 하지만 당시 우리 사정이 어디 자랑할 만한 거였나.
 
지그프리트 겐테라는 독일 기자가 돈덕전 건립 당시의 모습을 남긴 글이 있다.
 
“러시아 공사관을 모델로 현재 많은 비용을 들여 궁전을 새로 짓고 있다. 좀 더 화려하고 위엄 있게 짓는다고 한다. 계속되는 지출로 비어가는 국고가 지탱해줄 수 있다면 대기실과 기둥을 갖춘 베란다가 딸린 건물은 튼튼한 화강암으로 세워 장엄할 것이다. 그러나 국왕이 새 궁전에 거주할지는 의문이다. 황제의 생활 습관이 여전히 순수한 조선식이기 때문이다. 신축을 부추긴 외국인들에 대한 체면에 왕은 더 많은 신경을 쓰는 것 같다.” (문화콘텐츠닷컴 재인용)
 
노나카 겐조라는 사람의 ‘석조전 건축의 경위’라는 글에는 이런 내용도 나온다.
 
“돈덕전은 명치 34년(1901)에 낙성된 것으로 공사비는 16만원이었으나 실제 든 금액은 5만원 내외라는 말이 있어 문란한 재정을 알게 해준다.”
 
실제로 1904년까지는 돈덕전이 황제의 주요 활동공간이 아니었다. 1904년 경운궁 대화재 당시 화마를 피한 몇 안 되는 건물이었기에 용도가 생겼다가, 1919년 고종의 승하로 주인을 잃은 뒤 방치되다 언제인지도 모르게 헐렸다.
 
문 정부의 반일 프레임
 
이런 초라한 역사의 건물을 굳이 복원하는 이유가 뭘까. 국민들의 반일 정서를 이용하려는 정치적 의도 말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미 그 앞에 ‘고종의 길’까지 만든 정부(서울시)다. 그 길 역시 고증 문제는 별개로, 일제가 두려워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망간 왕의 도주로에 굳이 ‘왕의 길’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달리 생각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내내 반일 프레임 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악화되는 한·일 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은커녕 오히려 반일 정서를 부추기며 양국 관계를 악화시켰다. 일본이 정경 분리의 원칙을 무시하고 과거사 갈등을 수출 규제로 보복하자 기다렸다는듯 대통령이 이순신의 ‘상유십이(尙有十二)’를 운운하고 거북선 횟집에서 밥을 먹었다. 참모들과 지지자들은 ‘죽창가’와 ‘토착 왜구’ 같은 익지않은 용어들로 부응했다.
 
국민을 친일과 반일로 갈라놓고, 한·일 관계를 걱정하는 보수세력을 ‘친일파’로 몰아붙였다. 지지자들을 결속시켜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국내정치 전략이었다. 그 와중에 위안부 할머니나 독립운동가들을 위한다는 시민단체들의 앵벌이, 기회주의자들이 사복을 채웠다.
 
반일 프레임을 공고히 하다보니 고종 같은 무능한 군주도 일제에 항거한 투사로 미화할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나온 것이 고종의 길과 돈덕전 복원이었을 터다. 이 두 사업을 시작한 주체가 반일 시민단체를 지지세력으로 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라는 사실이 이를 웅변한다.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정부가 갑자기 돌변해 여러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했지만, 기대했던 도쿄에서의 ‘남북평화쇼’가 물 건너간지라 다시 반일 모드로 돌아설 게 분명하다. 올림픽 선수촌의 한국 선수단 거주동에 걸렸던 현수막부터 그렇다. 대한체육회는 부인하지만, ‘신에게는 아직 5천만 국민들의 응원과 지지가 남아 있사옵니다’라는 현수막 문구는 “전투에 참여하는 장군의 이미지를 연상케 한다”는 IOC의 지적이 옳다. 거기엔 번뜩이는 재치도 없고 공연한 피해의식만 있을 뿐이며 따라서 불필요한 도발에 불과한 것이다. 마치 친구 생일 파티에 가서 “작년에 네가 나 때렸잖아”라는 말을 반복하는 짓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그러면서 일본 극우세력이 욱일기를 흔들며 응원한다고 어찌 비판을 할 수가 있나 말이다.
 
별수 없이 철거하고 다시 단 현수막도 그리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범 내려온다’는 문구와 함께 한반도를 호랑이로 형상화한 그림이었다. 웹툰 작가 윤서인처럼 “척추 나간 X신 호랑이”라고 흥분할 것까진 없겠으나, 그의 지적에 공감이 간다. “긍정과 응원·화합·행복·여유가 뭔지 모르고 매사에 악의적이고 적대적이고 건들기만 해봐 부들거리는 나라가 내 조국인 게 너무 슬프다.” 그의 말대로 “세계인의 축제에 참가하게 돼서 기뻐요”라든지, “어려운 시기에 모두 힘냅시다”라는 현수막을 거는 게 그렇게 어려울까.
 
재미있는 건 한반도 호랑이의 저작권자가 육당 최남선이란 사실이다. 그가 1908년 펴낸 대한민국 최초의 근대적 종합잡지 『소년』 창간호에 실렸다. 한반도를 토끼에 비유한 일본 지리학자 고토에 대한 반론이었다. 하지만 최남선은 변절한 지식인으로 반일단체들이 제일 경멸하는 인물 중 하나가 아닌가.
 
이상돈 교수는 “친일로 변절한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손꼽히고 있음을 생각하면 그의 아이디어인 ‘호랑이 한반도’가 민족의 상징으로 도쿄 올림픽 선수촌에 휘날리고 있는 현실은 또 다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고 말한다.
 
나쁜 한국인들이 더 위험
 
‘범 내려온다’는 문구는 더 웃기다. 원래 이 말은 판소리 ‘수궁가’에 나오는 것이다. 토끼를 찾으러 뭍에 나온 용궁의 자라가 수영을 하느라 진이 빠져 ‘토 선생’ 대신 ‘호 선생’이라 잘못 불렀다. 자신을 선생이라 불러주는 소리를 듣고 호랑이는 위엄있게 내려온다. 호랑이를 빼고 잔치를 벌였던 다른 동물들은 공포에 떤다.
 
여기까진 그럴듯하다. 하지만 책임감을 느낀 자라가 호랑이 ‘가운뎃다리’를 물었다. 호랑이는 비명을 지르며 순식간에 의주 압록강까지 도망을 갔다. 이처럼 잠시 후 당할 망신은 생각하지도 못하고 온갖 폼을 다 잡던 호랑이의 모습을 안다면, 한국 선수들의 투혼을 일깨우는데 사용하지는 못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남아있는 반일 감정엔 공연한 자격지심이 섞여있다. 태어날 때부터 조국이 일본에 버금가는 선진국이었던 MZ세대들에게는 결코 없는 감정이다. 그런 시대착오적 정서를 일부 세력들이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자신들의 밥벌이 수단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런 세력들은 일제보다 더 나쁘다. 그런 세력에 이용당하지 않으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그들이 우리와 비교해서 자주 인용하는 게 프랑스다. 해방 후 독일 부역자 청산을 완벽하게 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간과되는 사실이 있다. 당시 독일은 프랑스 점령지역에서 불순분자(일제에게는 불령선인)들을 색출한 뒤 독일이나 오스트리아로 보내 강제노역을 시켰다. 그런데 프랑스인들이 자기 동포들을 독일 당국에 무고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프랑스 출판의 역사’라 불리는 가스통 갈리마르도 그런 봉변을 당했다. 알고 보니 갈리마르가 출판을 거부했던 인물의 복수극이었다. 사실을 안 독일군 장군 한 명이 힘을 써 갈리마르는 무사할 수 있었다. 레지스탕스가 본격적인 활동을 벌이던 시기의 프랑스에서는 ‘착한’ 독일인보다 ‘나쁜’ 프랑스인이 더욱 위험했던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이 땅에도 반일 감정을 정치적 목적과 밥벌이에 이용하는 나쁜 한국인들이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 그들을 더 경계해야 한다. 애꿎은 경찰들만 고생시키는 반미(를 악용하는 나쁜 한국인들)도 마찬가지다.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출처: 중앙일보] [이훈범의 퍼스펙티브] 독일 점령 프랑스서도 나쁜 프랑스인이 더 위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