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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동정담] 전체주의식 언론 평가

황태자의 사색 2021. 12. 9.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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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동정담] 전체주의식 언론 평가

 
정부가 언론사의 사회적 책임 이행을 평가해 점수를 매기겠다고 발표한 지난 1일. 지하철로 이동 중에 문득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앞자리에 앉은 두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둘 중에 누가 사회적 책임을 더 많이 이행하고 있는지 점수를 매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사람마다 삶에서 중요한 게 다르다. 한 사람은 기업에서 좋은 제품을 개발하는 데서, 그 옆에 앉은 이는 잘못된 제품으로 피해를 입은 소비자를 돕는 데서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그 의미가 충족될 때, 우리는 좋은 제품 개발이나 소비자 지원 같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게 된다. 사람마다 삶의 의미가 같을 수 없기에 사회적 책임 이행 방법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획일적인 잣대로 개인의 사회적 책임에 점수를 매기는 건 개인차를 무시하는 짓이다. 개인 삶의 독자성을 부정하는 행위다.

언론사도 마찬가지다. 각 개인에게 추구하는 삶의 의미가 있듯이, 각 언론사에는 스스로에게 부여한 '존재의 이유'가 있다. 어떤 언론사는 혁신 기업이 기득권에 밀려 좌초되지 않도록 돕는 게 존재 이유일 수 있다. 또 다른 언론사는 노동자들이 부당 대우를 받지 않도록 돕는 게 존재 이유일 수 있다. 언론사 역시 자신만의 존재 이유를 실현함으로써 사회적 책임을 이행한다. 획일적인 잣대로 어느 언론사가 더 많은 사회적 책임을 졌는지 점수를 매긴다는 건 언론사마다 존재 이유가 다르다는 걸 무시하는 전체주의적 행태다.

그러나 현 정부는 점수를 매기겠다고 한다. 언론중재위원회와 한국신문윤리위원회의 시정 권고나 경고 건수 등을 종합해 점수를 매기겠다고 한다. 이런 획일적 기준으로는 언론사 각자의 존재 이유, 다시 말해 기업의 혁신을 얼마나 지원했는지, 노동자의 삶을 얼마나 개선했는지는 전혀 평가할 수가 없다. 그 평가는 시민사회와 독자의 몫이다. 공권력을 쥔 정부가 그 책임을 평가하는 척도를 만든다는 건, 개별 언론사의 독자성을 부정하는 게 된다. 민주주의에 위배된다.

[김인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