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닥친 기후위기를 경고하는 공익디자인이 많이 나오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급격히 녹으면서 생명체가 설 자리를 잃어 가는 모습을 형상화 한 스웨덴의 공익디자인.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기후위기를 다룬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재난영화 '투모로우'에 보면 부통령의 마지막 연설 장면이 나온다. 현대문명을 대표하는 대도시들이 기후변화로 인해 빙하에 뒤덮여 무너져 가는 급박한 상황에서 부통령은 이렇게 독백하듯 말한다. "우리는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인류는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지구의 자원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고…. 하지만 오만이었습니다."
'투모로우'의 원제는 '모레'(The day after tomorrow)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2004년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은 기후위기를 모레쯤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모레'가 이제 '오늘'이 됐다.
하지만 국제사회나 정치권은 기후위기를 여전히 '모레'쯤 벌어질 일이라 생각하면서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다. 기후위기가 모든 패 중에 가장 먼저 보여줘야 할 패임에도 불구하고 꺼내기를 꺼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후위기를 세상에 알리는 것은 민간의 일이 됐다. 그중에서도 특히 예술이 가장 급박하게 기후위기를 이야기하고 있다. 예술은 흡사 조기 경보 시스템처럼 지구의 위기 징후를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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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기후위기는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설명하는 가장 큰 이슈가 됐다. 기후위기는 공상과학 소설에 등장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앞에 온 현실이다.
◆ 어두운 밤으로 순순히 들어가지 말라
2018년 12월 덴마크 설치미술가 올라푸르 엘리아손이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 앞마당에 그린란드 빙하를 옮겨 놓았다. 설치미술가들은 기후 관련 회의가 열리는 대도시를 돌아다니며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알리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 제공 = 스튜디오 올라푸르 엘리아손]
'투모로우'에서 보듯 가장 극적으로 기후위기를 경고하고 있는 예술은 영화다. 2004년 제작된 '투모로우'는 개봉 당시보다 17년이 지난 지금이 더 화제가 되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남극과 북극의 빙하가 녹으면서 해류의 흐름이 교란되고 결국 바다 온도가 급격히 낮아지면서 새로운 빙하기가 온다는 줄거리다. 최근 들어 '투모로우'의 경고는 현실이 됐다. 겨울마다 중위도 지방을 덮치는 이상한파의 원인이 극지방 빙하가 녹기 때문이라는 과학적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인터스텔라'는 우주의 신비나 과학의 성취를 논하는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도 기후 재난을 다룬 영화다. 영화의 배경은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로 지구의 식량이 바닥나고 있는 미래 사회다. 태양조차 볼 수 없는 모래 먼지가 가득한 평원에서 주인공은 읊조린다. "병충해 때문에 밀을 다 불태우고 옥수수를 키웠지만 소용없어요. 사방이 다 흙먼지예요. 이걸 마시지 않기 위해 천 쪼가리로 코와 입을 가렸어요."
은퇴한 유능한 우주비행사였던 쿠퍼는 지구를 대체할 새로운 행성을 찾는 임무를 띠고 우주선에 오른다. 우주선이 대기권 밖으로 날아오르는 긴박하고 신비스러운 장면에서 딜런 토머스의 시 '저 어두운 밤으로 순순히 걸어 들어가지 마세요'가 흘러나온다. "저 어두운 밤으로 순순히 들어가지 마라. / 해가 지는 마지막까지 / 자신을 불태우고 저항하라 / 분노하라, 분노하라." 지구에 닥친 어둠을 받아들이지 말라는 딜런 토머스의 시는 흡사 비장한 지령처럼 스크린에 울려퍼졌다.
영화 '비포 더 플러드'(Before the Flood)는 기후변화에 대항하는 사람들의 활동을 조명한 다큐멘터리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연출 및 내레이션을 맡아 화제가 됐다. 환경운동에 적극적인 디캐프리오는 자신이 왜 환경운동가가 되었는지를 담담히 설명하듯 지구가 처한 위기의 민낯을 보여준다. 영화 후반부에는 디캐프리오가 유엔에서 연설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가 제시하는 지구를 살리는 방법은 아주 간결하다. 현명하게 소비하고, 온실가스 배출을 무조건 줄이는 것이다.
◆ 기후위기 다룬 작품이 노벨상 받을 것
문학에서 기후위기를 다룬 지는 오래됐다. 기후의 급격한 변화는 곧 흉년을 야기했고, 흉년은 인간 삶을 밑바닥부터 위협하는 요인이 됐기 때문이다. 흉년은 곧 죽음, 이민, 폭동, 전쟁 등의 원인이 됐고 문학의 소재가 됐다. 모래폭풍으로 사막화된 땅을 버리고 길을 떠나는 가족들을 다룬 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에서부터 메뚜기떼의 습격으로 피폐해진 중국 농촌을 그린 펄 벅의 '대지' 등 생각나는 소설이 많다.
민음사에서 출간된 '곰과 함께'라는 소설집은 마거릿 애트우드를 비롯해 이 시대 최고 현대 작가 10명이 '환경 위기와 인류의 미래'를 주제로 쓴 작품을 담았다. 세계적인 환경 저널리스트 빌 매키번은 서문에서 "지구 온난화와 관련한 글을 쓸 때의 문제는 진실이 웬만한 허구보다 더 황당하다는 점이다"고 말한다. 이미 기후변화로 인해 허구보다도 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경고다. 미국 평론가인 셸리 스트리비 캘리포니아 대학 교수는 "과학자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소설가들이 대신하고 있다"며 "그나마 소설이 현실을 인식하게 하고 다가오는 미래를 예감할 수 있게 해준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머지않아 노벨문학상은 기후위기라는 소재를 통해 새로운 가치관을 제시한 서사에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한국 소설에서 기후위기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은 아직 드물다. 올해 화제가 된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김기창)이 가장 직접적으로 기후 문제를 다룬다. 10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기후변화로 인해 당연하게 누려온 일상이 무너지는 현장을 그린다. 오랫동안 지속돼온 폭염으로 돔시티를 만들어 피신한 사람들이 새로운 환경에서 겪는 어려움을 다룬 단편에서부터 환경 악화로 시민과 공무원이 갈등을 겪는 작품 등이 눈길을 끈다.
◆ 도시 한복판에 빙하가…'선한 예술'의 경고
미술도 기후위기 메시지를 작품에 담는 데 적극적이다. 특히 설치미술가들이 장르적 특성을 활용해 이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가 열릴 때마다 극적인 메시지를 담은 작품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작가가 덴마크 출신의 올라푸르 엘리아손이다. 그는 녹고 있는 그린란드 빙하를 그대로 가져다가 총회가 열리는 장소에 설치했다.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그를 '선한 예술가'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의 예술은 행동 그 자체다. 바다에 녹색 물감을 풀기도 하고, 아이슬란드에서 양을 직접 키우기도 한다. 개발도상국을 위해 태양열 램프를 개발해 판매하기도 하고, 전 세계 미술계·건축계 행사뿐 아니라 경제 포럼까지 참석해 기후위기를 외친다.
기후변화로 인한 숲의 소멸을 경고한 작가도 있었다. 미국의 마야 린은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 '유령 숲'을 설치했다. 유령 숲에는 나뭇잎이 다 떨어진 죽은 삼나무 49그루가 심어져 있다. 지금은 죽은 나무들이 아주 일부지만 시간이 흐르면 숲 전체가 죽은 나무로 가득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올해 초 핀란드의 헬싱긴 사노마트 신문사는 지구 온난화로 인해 녹아내리는 북극 빙하를 형상화한 '기후위기 글꼴'(The Climate Crisis Font)을 만들었다. 기후위기 글꼴은 한 해 한 해 빙하가 녹는 정도에 따라 굵기가 표현된다. 지금 이대로 북극의 빙하가 녹는다면 기후위기 글꼴은 점점 얇아져 나중에는 형체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 비발디가 기후위기를 보았다면
음악을 통해 기후위기를 깨우치려는 움직임도 늘어나고 있다.
만약 '사계'를 작곡한 비발디가 현재의 기후위기를 대면했다면 어떤 음악을 만들었을까? 낭만으로만 가득한 작품을 만들 수 있었을까?
폴란드 음악가 시몬 바이스는 비발디의 '사계'를 패러디해 기후위기를 경고하고 나섰다. 그가 재해석한 곡은 '잃어버린 계절'(The Lost Seasons)이다. '잃어버린 계절'은 2018년 폴란드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 회의에서 초연됐는데 비발디의 원곡과는 달리 계절의 미학을 무너뜨려 충격을 던졌다. '잃어버린 계절'은 계절에 따른 자연의 아름다움을 묘사하지 않고 가뭄과 태풍, 홍수와 산불 등 기후변화로 일어나는 자연재해를 곡에 담아냈다. 컴퓨터 게임 레이저 사운드로 가뭄을 표현하는 등 그의 생경한 시도는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이탈리아 출신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루도비코 에이나우디는 노르웨이 인근에서 빙하를 배경으로 피아노를 연주해 눈길을 끌었다. 국제 환경단체인 그린피스 캠페인으로 진행된 연주에서 에이나우디는 녹아내리는 빙하를 연상시키는 하강 악절(패시지)로 가득한 '북극을 위한 엘리지'를 선보였다.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피아노와 녹아내리는 빙하의 조합은 감동과 공포를 동시에 보여주면서 화제가 됐다.
지리학자이자 음악가인 대니얼 크로퍼드는 지구의 온도 변화를 첼로 음색으로 변환시킨 '뜨거워지는 지구의 노래'를 발표했다. 19세기 후반부터 최근까지 지표면과 해수면의 온도 변화 그래프를 오선지에 일일이 대입한 곡은 100여 년간의 지구 온도 변화를 담은 백서로 눈길을 끌었다.
◆ K팝도 기후변화를 말하기 시작했다
K팝 팬층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MZ세대가 기후위기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K팝 그룹들도 기후변화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최근 동남아 지역 K팝 팬들이 개설한 '케이팝 포 플래닛'은 기후변화 플랫폼으로 화제가 됐다. 방탄소년단을 비롯한 블랙핑크, 엑소, 세븐틴 등 세계적 K팝 그룹들은 이미 기후변화로 인한 태풍, 산불, 홍수 등으로 피해를 본 지역 이재민을 돕는 일을 지속해 오고 있다.
국내에서는 '스타 숲 프로젝트'가 눈길을 끈다. K팝 팬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K팝 스타의 이름으로 모금해 숲을 조성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수십 개의 K팝 숲이 생겨났는데 그룹 신화 팬들이 서울 개포동에 만든 '신화 숲'의 경우 1000그루의 나무가 식재돼 있다. 방탄소년단, 엑소, 아이유, 투애니원, 지드래곤 등의 이름을 딴 숲도 생겨났다. 이 같은 프로젝트는 팬덤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일조하고 있으며 사회적 문제에 도움을 주는 '선한 영향력' 운동으로도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스웨덴의 소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테드 강연에서 이렇게 말한다. 툰베리는 너무나 상징적으로 기후위기에 대한 인류의 무지를 지적한다. "제가 여덟 살이었을 때 기후변화나 지구 온난화라는 말을 처음 들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것들은 우리 인간의 삶의 방식으로 인해 생겨난 것들이었습니다. '여러 존재 중 그저 한 동물일 뿐인 인간이 지구의 날씨를 바꿀 수 있다니 참 이상하네'라고 생각했던 게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누구도 기후변화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화석연료 사용이 우리 존재를 위협하는데 어째서 우리는 여전히 그 일을 지속할 수 있는 거죠? 왜 그것을 불법으로 규정하지 않죠? 왜 그런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