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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준의 시선] 지옥에 대한 저항
입력 2022.01.20 17:00 수정 2022.01.21 00:03 지면 A38
현대예술에 홍위병식 검열 자행
문명 파괴하는 변장한 파시스트들
창작의 자유, 60년대로 후퇴시켜
예술은 자유의 기본·최후 보루
예술가가 대중에, 다른 지식인에
검열당하는 국가는 절망 그 자체
이응준 시인·소설가
문명 파괴하는 변장한 파시스트들
창작의 자유, 60년대로 후퇴시켜
예술은 자유의 기본·최후 보루
예술가가 대중에, 다른 지식인에
검열당하는 국가는 절망 그 자체
이응준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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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 소설가들 소설 읽어보세요. 문제가 될 만한 것들은 알아서 피해서 쓰거든요.” 편집장의 말이 술잔 안에 맴돌았다. 자존심은 차치하고, 내게 늘 선의를 다해주는 출판사에 피해를 줄지도 모른다는 그 ‘만일’이 괴로웠다. 차라리 군부독재 때문이라면 번뇌 없이 투쟁했을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소설을 쓸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소설가가 되고 난 뒤로 처음 하고 있었다.
작품에는 시니피앙(겉모습)과 시니피에(속뜻)가 있다. 겉모습은 하나인데 속뜻은 ‘무한대로’ 다양하게 감각되고 해석된다. 이 노릇에서 ‘미학’이 발생한다. 딱 이게 가장 간단한 예술의 작동 원리다. 가령, 포르노는 겉모습이 곧 속뜻이고 속뜻은 겉모양이어서 사실상 속뜻이 없다. 하여 도착 상태가 아닌 다음에야 포르노에서는 예술적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반면, 겉모습이 포르노여도 그 속뜻이 포르노가 아닌 가치를 지니고 있으면 바로 그 격차에서 예술성이 드러난다. 감상자가 무식하고 광포(狂暴)할 때 속뜻은 못 보고 인민재판을 벌이거나 정말로 법정에 세운다. 현대예술이란 제 이념에 입각해 선과 악을 가른 뒤 그 선(이라는 것)의 편에 서는 게 아니다. 당위(當爲)가 아니라 현상(現狀)이며, 답이 아니라 세상과 인간을 향한 ‘질문’인 것이다. 20세기 초 예술가들이 프로이트의 등장에 열광했던 까닭은 그가 인간을 단두대와 피고인석에서 정신병원의 침대와 뜰로 옮겨놓았기 때문이다. 죄인에서 환자로 신분이 바뀐 인간의 예술이 현대예술이다. 클래식 음악을 즐기기 위해 어느 정도의 교양이 필요하듯 현대문학도 그러하다. 홍위병식 검열을 자행하는 집단은 한둘이 아니고 그 기준도 제멋대로며 걸려서 당하는 것도 재수에 달렸다. 저들을 만족시키려면 한국문학전집 세계문학전집의 대부분은 불살라져야 한다. 저들의 겉모습이 페미니즘이든 PC(정치적 올바름)든 ‘그 무엇이건 간에’ 저들의 속뜻(정체)은 ‘문명파괴(vandalism)’다. 저들이 포르노고 저들이 만드는 세상이 포르노인 것이다. 자기가 무슨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도 모르는 저들은 변장한 나치 파시스트들이다.
“모든 창작 활동은 감정과 꿈을 다루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감정과 꿈은 현실상의 척도나 규범을 넘어선 것이다.” 어떤 집단이 내리는 “판결의 유죄·무죄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만일’에의 고려가 끼치는 창작 과정상의 감정이나 꿈의 위축이다” “이것은 죄악이다”라고 시인 김수영이 일갈했던 게 동아일보 1960년 11월 10일자에서였다. 18년 전인 2004년보다 창작의 자유가 타락했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오늘 이 사회는 김수영이 저런 한탄을 하던 62년 전으로 후퇴해 있다.
예전엔 이념이 다르다고 한들 창작의 자유에 있어서만큼은 동지의식이 있었다. 그 시절이 그립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창작하지 않는 작가는 부정직한 작가이며 조종당하는 예술은 사기다. 자기검열 하는 작가는 살아도 죽은 목숨이기에 지옥에 대해 아는 척할 자격이 있다. 만취한 그 밤, 나는 이 사회가 정말 지옥 같았다. 청중을 바라지 않는다. 서너 사람만 읽어준대도 맘대로 쓰다가 죽는 게 소원이다. 나는 그 책의 단 한 줄도 고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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