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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죄로 체포된 밀러는 4년 반을 복역했다. 20대 초반에 출소했지만 총기 강도를 몇 차례 저질러 5년을 더 감옥에 있었다. 하지만 긴 수감 생활은 그에게 전화위복이 됐다. 재범예방 프로그램으로 고교 졸업 자격을 취득했고, 출소자에게 주어지는 혜택으로 대학을 졸업했다. MBA 과정을 마쳤을 때가 38세였다. 유명 회계 법인에 취직할 기회가 생겼지만 면접을 하면서 전과를 얘기해 탈락했다.
▷이때부터 그는 살인 전과를 숨겼다. 몇몇 식품회사에서 임원 경력을 쌓은 그는 1997년 나이키로 옮겼다. 전설적인 미국프로농구(NBA) 선수인 마이클 조던의 브랜드를 담당하는 ‘나이키 조던’ 회장을 현재 맡고 있다. 그는 ‘나이키 조던’을 40억 달러의 회사로 키웠다. 나이키 본사가 있는 포틀랜드 연고의 NBA 구단주도 지냈다. 흑인 기업가로 뒤늦게 성공한 것이다.
▷73세의 밀러는 최근 고향을 두 차례 찾아가 피해자 유족 등을 만나 피해자의 이름으로 장학재단을 설립하는 계획을 논의했다. 유족은 “이제 밀러를 적으로도, 친구로도 생각하지 않는다.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은 그가 스스로 감당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이 책으로 비밀은 죽었다’고 썼다. 하지만 비밀이 사라졌다고 용서가 그 자리를 바로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 사람의 실수가 인생 최악의 실수이더라도 나머지 인생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는 밀러의 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교정시스템이 없었다면 그의 성공 신화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원수 논설위원 need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