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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이라 생각한 기획… 1억명이 봤네요”

황태자의 사색 2022. 1. 25.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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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이라 생각한 기획… 1억명이 봤네요”

뮤지컬 ‘라이온 킹’ 25년… 제작자 토머스 슈마허

입력 2022.01.25 03:00
 
 
 
 
 
디즈니는 1990년대 뮤지컬 ‘미녀와 야수’ ‘라이온 킹’〈사진〉 ‘아이다’ 등을 발표하며 단기간에 브로드웨이의 맹수로 떠올랐다. 가족 뮤지컬 시장을 개척했다. /ⓒDeen van Meer

“1994년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이 성공을 거둔 직후였다. 디즈니 회장이 나를 호출해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날 받은 주문은 실현 불가능해 보였다. ‘라이온 킹’을 뮤지컬로? 내가 들어본 최악의 아이디어였다.”

브로드웨이 역사상 최고 흥행작은 비관을 뚫고 태어났다. 디즈니 공연 사업을 이끄는 토머스 슈마허 대표가 ‘최악의 아이디어’로 기억하는 뮤지컬 ‘라이온 킹’은 1997년 초연해 25년간 1억1000만명이 관람했다. 코로나 시대에도 해외 투어를 할 만큼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라이온 킹’ 내한 공연이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개막한다. 이메일로 만난 슈마허는 “공동체가 겪는 상실과 해방을 그린 뮤지컬이라 팬데믹 이후 인류의 투쟁과도 통한다”고 했다.

-뮤지컬 ‘라이온 킹’을 이야기하려면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에서 시작해야 한다.

“1990년 초고(草稿) 제목은 ‘정글왕’이었다. 사자와 하이에나 사이의 대립으로 발전시키면서 ‘햄릿’처럼 형제간의 싸움을 보탰다. 음악(노래)을 강력히 요구해 작곡가 엘턴 존과 작사가 팀 라이스가 합류했다.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은 1994년 여름에 개봉했고 박스오피스 기록을 모두 갈아치웠다.”

-뮤지컬로 바꾸는 작업은 왜 어려웠나.

“동물들이 등장해야 한다. 아프리카에서 누 떼가 우르르 달아나는 모습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배우가 가면을 뒤집어쓰는 식으로 조잡하게 흉내내면 애니메이션이 쌓아올린 판타지까지 깨질 수 있다.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으려면 독창적인 상상력을 지닌 연출가가 필요했다. 나는 줄리 테이머를 떠올렸고 그 전화 한 통으로 뮤지컬 ‘라이온 킹’의 운명이 바뀌었다.”

-줄리 테이머는 아시아의 인형극과 가면극에 정통한 연출가 겸 디자이너인데 그녀의 해법은 무엇이었나.

“줄리는 ‘이야기와 이미지를 재창조하는 일’에 도전했다. 신화와 전설을 다룬 경험이 많고 시각적 감각도 뛰어났다. 가면으로 얼굴 전체를 가리거나 의상으로 몸 전체를 덮지 않았다. 숨기지 않고 드러내면서도 우아하게 움직이는 동물 캐릭터를 감동적으로 빚어냈다. 또 아프리카 음악을 전면에 내세웠으며 개코원숭이 무당인 라피키를 여성으로 만들어 ‘생명의 순환’이라는 주제를 부각했다.”

 
디즈니 공연 부문 토머스 슈마허 대표. /디즈니 시어트리컬

줄리 테이머는 뮤지컬 ‘라이온 킹’을 관통하는 이미지를 서클(동그라미)로 잡았다. 이야기가 소년 심바의 탄생과 죽음, 재탄생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태양, 아버지 무파사의 가면, 프라이드 록도 동그라미를 강조한다. 슈마허는 “줄리는 이 뮤지컬에 완벽한 예술가였다”고 했다.

-뮤지컬 ‘라이온 킹’은 데뷔 2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큰 사랑을 받는다.

“애니메이션이 32개 언어로 번역된 사실을 아나? ‘라이온 킹’은 최초의 거대한 글로벌 영화였다. 세계 어디서나 자기 가족, 자기 공동체의 이야기로 받아들였다. 그 보편성은 뮤지컬에서도 매한가지다. 줄리는 아프리카, 아시아, 서양 등 서로 다른 문화를 무대에 섞으면서 이야기를 시각화하는 매혹적인 솜씨를 보여줬다(줄리 테이머는 이 작품으로 1998년 토니상에서 여성 최초로 연출상을 받았다).”

-이 뮤지컬의 메시지 중 지금 더 강하게 와닿는 부분이라면.

“상실과 해방(loss and liberation)’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사자들이 예상하지 못한 일로 완전히 찢겨 상처받지만 그것을 복구하기 위해 싸우는 장면을 보라. 코로나 이후 2년간 우리가 해온 투쟁과 겹친다고 나는 생각한다.”

-브로드웨이에 ‘성공 레시피’라는 게 있나?

“‘라이온 킹’은 대박이 났지만 그런 비법은 없다. 성공을 모방하는 것이야말로 실패의 지름길이다.”

뮤지컬 '라이온킹'이 공연 중인 미국 뉴욕의 택시 광고. 이번 내한공연은 방역 문제로 동물들이 객석을 통해 등장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