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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엘리시움을 원하시나요
불평등과 양극화가
코로나 이후 더 커졌다
가진 이들에게 묻는다
당신들만의 세상 만들건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없나
- 윤경호 논설위원
- 입력 : 2022.01.29 00: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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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는 '오디세이아'에서 엘리시움의 위치를 언급했다. 가이아(땅)를 둘러싼 오케아노스 강 서쪽 가장자리라고 했다. 그리스 신화 속 지혜의 왕인 라다만토스가 엘리시움에 거주하고 있다고 썼다. 기원전 8세기 때의 기록이다. 호메로스 100년 뒤 작가 헤시오도스는 엘리시움을 서쪽 바다에 있는 축복받은 자들의 섬이라고 했다. 다시 헤시오도스 100년 뒤 시인인 핀다로스는 여러 개 섬이라고 알려져 있던 엘리시움을 단 하나의 섬이라고 정리했다. 핀다로스는 올림피아 축제에서 부르는 합창시를 써 명성을 날리던 시인으로, 당대에 대단한 권위를 인정받고 있었다. 여하튼 엘리시움은 소수의 무리만 갈 수 있는 그들만의 낙원이다.
대중에게 엘리시움이라는 용어는 2013년 나온 미국 공상과학영화로 익숙해졌다. 닐 블롬캠프가 각본을 쓰고 감독까지 맡은 화제작이다. 맷 데이먼과 조디 포스터가 주연이다. 서기 2154년 황폐해진 지구는 온갖 문제로 시달린다. 인구 과잉, 자원 고갈에다 환경 오염까지 심하다. 대부분의 시민은 빈곤에 허덕이고, 노동자들은 착취당한다. 계층 간 갈등은 극에 달해 있다. 정치와 경제를 주도하는 세력은 우주 식민지인 엘리시움을 만들어 이주해 그곳에서 윤택하고 호화로운 생활을 이어 간다. 엘리시움에는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메드베이가 있다. 백혈병이나 말기 암 같은 난치병도 깔끔하게 치료되는 첨단 시설이다. 지구는 노예처럼 사는 일반인들의 세상이고 엘리시움은 부자와 정치 권력을 쥔 지배집단만 갈 수 있는 별천지다.
전혀 다른 이야기도 있다. 1347년 영국과 프랑스가 백년전쟁을 벌이던 때다. 영국 군은 바다 건너 프랑스 도시 칼레를 포위해 항복을 받아낸다.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칼레시의 항복 사절단을 마주한다. 시민들의 생명을 보장해줄 테니 대신 그동안의 저항에 대해 누군가 책임을 지라며 6명을 골라내면 처형하겠다고 한다. 칼레 시민들은 혼란에 빠진다. 누가 처형을 당해야 할지 정해야 한다. 모두 머뭇거리는데 칼레시에서 가장 부자인 생 피에르가 맨 먼저 손을 든다. 시장과 몇몇 귀족이 뒤를 따른다. 다음 날 처형을 받으려 6명이 교수대에 선다. 에드워드 3세는 죽음을 자처한 희생정신에 감복해 이들을 살려준다. 돈 많고 신분 높은 이들의 솔선수범에서 이른바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탄생한다.
우리 시대 불평등과 양극화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자본주의 첨병 미국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 '월가를 점령하라'는 구호와 함께 이미 불만이 분출됐다. 이후 계속 쌓여 가는 중이다. 코로나19 사태로 닥쳐온 미증유의 소용돌이에 양극화는 더 커졌다. 대한민국에서도 그렇다. 소득 분포 상위 20%에 해당하는 5분위 구성원들의 자산과 소득은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오히려 늘었다. 그들은 자기 몫 지키는 일엔 안간힘을 쓴다. 부동산 세금을 향해 반발과 저항이 가열하다. 일용직들이 일을 못 얻어 생계를 위협받아도, 자영업자들이 벼랑 끝으로 밀려나도 오불관언일 뿐이다.
죽음을 자처하며 먼저 손을 든 칼레의 귀족과 부자들의 모습은 자기들만의 세상 엘리시움을 만든 이들과 확연히 대비된다. 동정과 자비를 베풀라는 요청 따위는 구차하다.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도 공허하다. 가진 이들에게 묻는다. 당신들만의 엘리시움을 만들 건가. 아니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보여줄 건가.
[윤경호 MBN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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