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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리 듣던 구글 “이 숲엔 죽은 나무 많군요”

황태자의 사색 2022. 2. 8.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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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리 듣던 구글 “이 숲엔 죽은 나무 많군요”

음성기술 시장, 年 20%씩 성장… 귀 기울이는 테크기업들

입력 2022.02.08 03:00
 
 
 
 
 

지난달 27일(현지 시각) 온라인으로 열린 구글의 ‘런치 앤 런(lunch & learn)’ 행사의 주제는 ‘소리’였다. 이 행사는 외신기자들이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구글의 최신 연구를 온라인으로 접하는 자리다. 이날 구글은 숲속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려줬다. 사람 귀로는 어떤 종류의 새인지 구별이 불가능했다. 구글 직원은 이어 다른 음성 파일을 틀었다. 조금 전 들었던 새소리를 세부적으로 나눈 것으로, 3종의 새가 각기 다른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구글의 생체음향학팀이 AI 머신러닝(인공지능 기계학습)을 통해 새소리를 구분해 낸 것이다.

테크 기업들이 수많은 소리 가운데 특정 소리를 구분하는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인공지능으로 원하는 소리만 구분하고, 이를 통해 미처 인식하기 힘들었던 현상이나 문제점을 밝혀내기 위해서이다. 기술이 고도화되면 향후 질병 진단이나 첨단 장비의 이상 신호 감지에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설명이다.

◇새소리 통해 숲 생태계 파악

구글이 숲속 새소리 구분에 집중하는 이유는 새소리로 숲속 생태계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숲에 딱따구리가 유별나게 많다면 그 숲엔 죽은 나무가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다발적으로 지저귀는 새소리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대화 소리가 가득한 칵테일 파티에서 각 사람의 말소리를 구별하기 쉽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구글은 바람 소리, 벌레 소리, 온갖 새소리를 제각각 분리하기 위해 AI 분리신경 네트워크를 사용한다. 숲에서 녹음한 여러 소리가 뒤섞인 오디오 파일을 여러 개 합쳤다가 분리하기를 반복하면서 AI가 스스로 개별 소리의 패턴을 찾아낼 수 있도록 학습시키는 방식이다. 구글 측은 “눈으로 파악하는 것보다 최대 10배 많은 새를 소리로 식별할 수 있다”고 했다.

보쉬가 개발한 AI 음성센서 시스템인 ‘사운드시’. 우주정거장 내 장비 소리를 분석해 고장 유무를 알려준다. /보쉬

소리 인식·분리 기술에 투자하는 것은 구글뿐만이 아니다. 자동차 부품업체 보쉬는 머신러닝 AI 음성센서 시스템인 사운드시(SoundSee)를 개발했다. 이 음성인식 센서는 2019년 로봇에 탑재돼 국제우주정거장(ISS)에 투입됐다. 우주정거장의 각종 장비에서 나는 소리를 포착하고, 장비의 소리가 평소와 다르면 이를 분석해 고장 유무를 우주인에게 알려준다. 한국 스타트업 디플리는 AI로 아기 울음소리를 해석해준다. 5만 시간 이상의 음성 빅데이터를 통해 아이가 배가 고파 우는지, 아파서 우는지,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우는지 등을 파악하는 것이다.

 
 
 
 

◇숨소리 통해 아이들 호흡기 질병 탐지

세계적인 대학들도 소리에서 유의미한 정보를 끄집어내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안성훈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팀은 작년 8월 공장 내부 소음에서 공작기계, 공기압축기, 그라인더 등 3개의 장비 소리를 각각 구분하는 데 성공했다. 여러 개의 소리가 섞인 파형을 인공지능으로 분리해낸 것이다. 이를 활용하면 음성 센서 하나로 여러 대의 장비 상태를 실시간 모니터링할 수 있다. 작년 6월엔 미국 메릴랜드대 캐럴 에스피윌슨 교수팀이 사람의 목소리를 분석해 우울증에 걸렸는지 파악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억양과 말 속도 등을 분석해 미리 우울증 위험을 경고할 수도 있다. MIT대의 조시 맥더모트 교수팀은 AI가 사람처럼 소리만 듣고 어디서 소리가 발생했는지 음원을 파악하는 모델을 개발했다.

시장조사업체 리서치앤드마케츠에 따르면 소리 구분 기술을 포함한 글로벌 음성 기술 시장 규모는 매년 19.76%씩 성장해 2026년엔 344억1000만달러(41조3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마이크 맨수에티 보쉬 북미법인 사장은 올 1월 미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 전시회 CES2022에서 “음성 구분 인식 기술을 소아들의 호흡기 질병을 탐지하는 데 활용할 것”이라고 했다. 숨소리만 듣고 호흡기 이상 유무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구글은 소리 분석 기술을 인간의 오감이 통하지 않는 분야에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스콧 위즈덤 구글 연구과학자는 “수중생물 음향학을 산호초의 건강을 확인하고, 땅속 미세 움직임을 파악하는 데도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