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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안갯속 박빙 대선으로 존재감 커진 TV토론…막판 혈투가 시작됐다

황태자의 사색 2022. 2. 1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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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안갯속 박빙 대선으로 존재감 커진 TV토론…막판 혈투가 시작됐다

난타전 예상되는 TV토론
승리의 결정적 관건은?

입력 2022.02.12 03:00
 
 
 
 
 
대선 후보들이 11일 서울 중구 매경미디어센터에서 열린 한국기자협회 주최·방송 6개사 공동 주관 '2022 대선후보 초청 토론'에 참석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왼쪽부터), 정의당 심상정 후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연합뉴스

대선이 25일 앞으로 다가왔다. 전례에 비춰보면 이때쯤이면 어떤 후보가 ‘대세’인지 윤곽이 나오기 마련이지만, 양강 후보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현재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박빙의 접전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투표할 후보를 확실히 정하지 못한 부동층 비중도 높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 관심이 향하는 곳은 대선 후보들의 TV토론회다. 지난 3일 첫 TV 토론의 시청률은 지상파 3사 합계 39%(전국 기준)를 기록했다. 후보들은 11일 두 번째 TV토론에서 재격돌했고, 이 역시 뜨거운 반응을 낳았다.

역대 우리 대선에서 TV토론은 결과를 좌우하는 결정적 변수는 되지 못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는 왜 이렇게 토론의 존재감이 큰 걸까.

◇박빙 판세, 부동층이 토론 중요성 키워

선거 TV토론이 유권자의 태도와 투표 행위에 미치는 영향은 크게 ‘설득 효과’와 ‘강화 효과’로 나뉜다. 설득 효과는 토론을 통해 유권자가 지지 후보를 정하거나 변경한다는 것이며, 강화 효과는 토론이 유권자가 갖고 있던 기존의 판단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과거 우리 선거에서의 TV토론을 분석한 연구 중 다수는 토론이 유권자의 태도를 변화시킨다기보다는, 유권자들이 갖고 있던 생각을 강화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1997년 대선 때 이인제 후보가 토론을 잘했지만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가 토론을 잘했나? 후보 중 가장 버벅거렸지만 대통령이 됐다. 토론과 관계없이 1위를 유지하던 후보가 당선돼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판세가 지금처럼 박빙인 상황에선 토론이 주요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형준 교수는 “이재명·윤석열 두 후보가 오차범위 내 경쟁을 하고 있다는 점, 부동층과 스윙보터가 많다는 점 등에서 과거 대선과 다르다”고 말했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는 “한 후보가 토론을 잘해서 상대 후보의 지지자를 끌어오는 일은 어렵지만, 말실수나 부적절한 태도 등을 통해 ‘자폭’할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실제 첫 TV토론 직후인 4~5일 진행된 리얼미터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24.7%가 ‘TV토론 이후 지지 후보가 변경됐느냐’는 질문에 ‘변경됐다’고 답했다. 4명 중 1명꼴로 토론을 보고 지지 후보를 바꾼 것이다. 서던포스트 조사에서도 전체 응답자의 14.6%가 TV토론 이후 지지 후보를 바꿀 수 있겠다고 응답했다. 코로나 상황으로 후보들의 오프라인 활동이 제한된 상황이기 때문에 TV토론이 중요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TV토론에 대한 높은 관심은 ‘어떤 후보가 국정 지도자로서의 자격을 갖췄는가’ ‘숱한 의혹들에 대한 해명을 어떻게 하는가’ 등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유권자의 마음이 반영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때문에 후보들은 토론과 관련해 매우 민감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설 연휴 직전 예정됐다가 무산된 이재명·윤석열 양자 토론에서 각 후보 진영은 예민함의 극치를 보여줬다. 국민의당 안철수,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자신들이 배제된 토론에 대해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이재명·윤석열 후보는 토론 날짜와 시간·토론 주제·자료 지참 여부 등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송경재 상지대 교수는 “토론 개최 자체가 이토록 어려운 이유는 토론에 대한 정치권의 인식이 정보 전달이나 정책 경쟁이 아니라 당리당략, 유불리 따지기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형준 교수는 “(이재명·윤석열 후보) 양쪽이 토론 룰에 집착하는 것은 두 후보 모두 각종 의혹에 휩싸여 있는 상황에서 전략적 방어 기제가 작동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 3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서 한 시민이 대선 후보 TV토론을 시청하고 있다. 이날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국민의힘 윤석열, 정의당 심상정,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참석하는 4자 토론이 처음으로 열린 날이다. 전문가들은 “판세가 박빙이고, 부동층이 많기 때문에 토론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크다”고 진단했다. /연합뉴스

◇예열은 끝났다, 본격 승부 관전 포인트는

첫 토론이 끝난 직후 각 후보 진영에선 공개적인 자화자찬이 이어졌다. 그러나 내부에선 우려의 분위기도 감지됐다. 익명을 요구한 여권 관계자는 “대장동 이슈와 관련해 3대1로 야권 후보들이 이재명 후보를 공격하는 모습이 연출됐고 이 후보는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이 후보가 ‘RE100′이나 ‘유럽연합(EU) 택소노미’를 꺼낸 것은 좋지 못한 공격이었다”고 평가했다. 국민의힘 선대본부 관계자는 “(윤 후보가) 주택 청약 통장 만점을 40점이라고 얘기할 때 가슴이 철렁했다. 이런 실수는 ‘준비되지 않았다’는 이미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첫 토론이 대체로 평이했다는 평가를 내놨다. 4명 후보 모두 결정적인 한 방도, 자책골도 없었다는 게 중론이다. 1993년 원탁토론아카데미를 설립한 토론 전문가 강치원 호서대 특임교수는 “이재명 후보는 윤석열 후보에게 ‘RE100′과 관련해 단계적으로 묻지 않고 너무 급한 모습을 보였다”, “윤석열 후보는 이재명 후보에게 대장동과 관련해 너무 검사처럼 물었고, 질문이 겉돌아 깊이 있지 못했다”, “안철수 후보는 연금개혁 등과 관련해 차근차근 말한 것이 좋았지만, 말하는 톤이 정치가의 톤은 아니었다”, “심상정 후보는 권력형 성범죄에 대한 후보들의 사과를 이끌어낸 점이 좋았지만, ‘이대남’ 문제와 관련해 발언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토론 횟수가 거듭될수록 후보들의 공격 수위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는 전망도 나온다. 송경재 교수는 “남은 기간에 승패가 결정되므로, 앞으로 토론에선 자극적이고 공격적인 말들이 많이 나오는 난타전이 예상된다”며 “공격이 타당하다고 인식되면 유효 포인트가 되고, 선을 넘으면 역풍이 불 것”이라고 말했다.

TV 토론 2라운드까지 마친 후보 4명은 내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 참석을 검토 중이다. 오는 21일과 25일, 3월 2일에는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주관하는 법정 TV토론회가 열릴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의 토론 관전 포인트로 의혹 추궁과 대응, 무지와 말실수, 태도 등을 꼽았다. 이재명 후보는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성남 FC 후원금 의혹, 배우자 김혜경씨와 관련된 경기도 도비 사적 유용과 공적 자료 삭제 의혹 등을, 윤석열 후보는 병역 기피 의혹, 대장동 사업 결탁 의혹, 배우자 김건희씨 관련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과 허위 학력 및 경력 의혹, 무속 관계 의혹 등을 받고 있다. 토론에서 의혹들과 관련한 공격이 나올 것이고, 이에 대한 각 후보의 대응에 이목이 쏠릴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후보의 이른바 ‘적폐 수사’ 발언도 토론 테이블에 계속 오를 전망이다.

기본적인 사실 관계를 잘못 알거나, 동문서답식의 답변은 치명적일 수 있다. 상대 후보의 발언에 한숨을 쉬거나 비웃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나쁜 인상을 줄 수 있다. 유권자들의 뇌리에 박히는 ‘한 장면’이 나오는가도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이다. 김형준 교수는 “후보들은 토론이 끝나고 긍정적 잔상을 남길 간결하면서도 인상적인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고 했다. ‘제가 MB 아바타입니까’(2017년 대선·안철수 후보) ‘저는 박근혜 후보를 반드시 떨어뜨릴 겁니다’(2012년 대선·이정희 후보) 등은 대표적인 부정적 잔상의 예다. 안철수·심상정 후보의 칼끝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주의 깊게 살펴볼 대목이다. 특히 대선 막판의 최대 변수로 꼽히는 단일화의 ‘키’를 쥔 안철수 후보에게 관심이 쏠린다. 안 후보의 경우 토론에서 긍정적 반전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다른 후보의 단일화 요구에 응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송경재 교수는 “누가 더 본인의 색깔을 잘 드러내느냐, 실수를 안 하느냐, 구체화된 정책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느냐가 관건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