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요’ 누르듯 후원…수퍼챗으로 억대 수익 유튜버 많아
수퍼챗이 뭐길래
유튜버 한모(27)씨는 최근 어리둥절했다. 지난해 유튜브에서 게임 방송을 시작한 한씨는 반년간의 고생 끝에 구독자 1000명을 확보했다. 하지만 이후 지난달까지 유튜브를 통해 그가 얻은 광고 수익은 한 달 평균 10만원 정도였다. 영상 제작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고려하면 ‘손해 보는 장사’라 유튜버를 그만둘 생각까지 하던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한씨는 “방송 중에 무심코 특정 게임 제작사 욕을 하면서 이 회사의 행태를 지적했는데 하루 만에 수퍼챗으로 32만원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격하게 동의한 시청자들이 후원금을 보낸 것이다. 한씨는 “수익을 더 내려면 계속 기업들 욕을 해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토로했다.
‘김해꼬마tv’ 작년 7억 수익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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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꼬마tv
한씨처럼 수퍼챗으로 돈을 번 경험이 있는 국내 유튜버가 급증한 가운데 수퍼챗으로만 연간 억대 수익을 거두는 경우도 적잖은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사로잡는다. 최근 유튜브 통계 분석 업체 플레이보드에 따르면 먹방(먹는 방송)을 하는 ‘김해꼬마tv’라는 유튜버는 지난해 총 4만6000여 수퍼챗을 받아 무려 7억175만원의 수익을 올렸다. 국내 웬만한 인기 유튜버의 연간 광고 수익 뺨치는 액수다. 강용석 변호사와 김세의 전 기자가 운영하는 정치·시사 채널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가 6만6000여 수퍼챗, 6억4800만원의 수익을 올려 그 뒤를 이었다. 이외에도 10위 안에 든 유튜버들은 지난해 기본 2억5000만원 이상을 수퍼챗으로 벌어들였다.
수퍼챗이 뭐길래 이처럼 시청자가 아낌없이 지갑을 열고, 유튜버는 짭짤한 수익을 거두고 있을까. 수퍼챗은 유튜브가 2017년 처음 도입한 ‘콘텐트 구매 플랫폼’이다. 불특정 다수의 기업(광고주)이 붙는 광고와 달리, 유튜버의 생방송 중에 시청자가 채팅창을 통해 직접 현금을 후원할 수 있는 서비스다. 한 번에 900원에서 50만원까지 결제가 가능하며, 하루 결제 한도는 50만원이다. 수퍼챗을 받았다고 금액 전부가 유튜버의 몫인 것은 아니다. 7대 3의 비율로 수익을 배분해 유튜브가 수수료로 30%를 가져간다. 유튜브 측은 구독자 1000명 이상을 보유한 18세 이상의 유튜버만 수퍼챗으로 돈을 벌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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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이런 수퍼챗은 국내에서 유튜브보다 먼저 1인 미디어 붐을 일으켰던 아프리카TV의 ‘별풍선’과 비슷하다. 별풍선처럼 시청자와 유튜버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생방송 내용이 마음에 들어 후원금을 결제한 시청자의 아이디(ID)는 실시간으로 채팅창에 표시돼 유튜버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때 시청자는 유튜버에게 메시지를 같이 전달할 수 있다. 수퍼챗으로 소액을 후원해본 대학생 이은형(23)씨는 “인스타그램이나 포털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듯, 웹툰 미리보기에 푼돈을 쓰듯 가벼운 마음으로 후원할 수 있는 게 수퍼챗의 장점”이라며 “유튜버가 고맙다면서 더 열심히 하겠다고 화답하면 다음 방송에 대한 기대가 커진다”고 설명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유튜버들은 수퍼챗과 별풍선 같은 후원금으로 전체 수익의 6.7%를 올렸다. 광고(59.3%)나 상품 홍보 및 판매(17.1%)로 올린 수익보다는 낮지만 만만찮은 비중이다. 수퍼챗이 이처럼 인기 있는 소통·표현 수단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온라인에선 하나의 중요한 ‘영향력 지표’로 떠올랐다. 정치권에선 이미 수퍼챗을 통한 힘겨루기나 민심 살피기가 한창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해 말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와의 설전 중에 “수퍼챗이나 받으라”고 한 것,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배우자 김건희씨가 지난달 공개된 녹취록에서 수퍼챗을 언급한 것 등이 화제가 됐다.
이는 유독 국내에서 수퍼챗이 정치적 의사 표현 수단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것과도 관련이 깊다. 지난해 수퍼챗 수익 ‘톱10’ 유튜버 가운데 가세연 외에도 현 정부에 비판적인 정치평론가 유재일의 유튜브(3위·4억7200만원),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운영하는 너알아TV(5위·3억8000만원), 친여 성향인 시사타파TV(6위·2억9000만원) 등 4곳이 짙은 정치색으로 무장했다. 자신의 정치관과 잘 맞는 채널에 후원금을 보내면서 심적 위안을 얻는 시청자가 많다는 얘기다. 세계에서 한국처럼 정치 관련 채널이 수퍼챗 수익 상위권을 차지한 나라는 없다. 지난해 글로벌 순위를 봐도 톱10 중 9곳은 가상인간과 일본 애니메이션 등을 기반으로 한 버추얼(virtual) 유튜버였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국내에서의 수퍼챗 인기가 정치에 대한 실망감이나 기타 사회적 갈등이 그만큼 한계 수위에 다다랐음을 방증하는 게 아니냐는 견해도 내놓고 있다. 유튜브의 인기 정치 채널들은 중립성을 포기한 대신 극단적으로 자기 정치관만 내세우고 있는데, 그럴수록 수퍼챗도 많이 받고 있어서다. 또한 남혐(남성 혐오)과 여혐(여성 혐오) 등 젠더 갈등을 소재로 한 자극적인 방송으로 지난해 수천만원의 수퍼챗 수익을 거둔 유튜버도 속출했다. 방송 프로그램 제작사 네오터치포인트의 김경달 대표는 “수퍼챗 수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막말을 하고 음모론 제기, 잘못된 정보 제공 등으로 사회적 갈등·혐오를 부추기는 콘텐트가 계속 늘고 있다”고 우려했다.
정치권은 수퍼챗 통한 힘겨루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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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타파TV
유튜브 측이 이런 콘텐트에 대해 무작정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유튜브는 선정성과 폭력성, 혐오 조장, 정치적 편향성 등으로 자사 운영 기준에 위배되는 콘텐트엔 노란색 달러 모양의 ‘노란딱지’를 붙인다. 광고주들이 광고를 넣기 부적합한 콘텐트라는 의미의 자체 규제다. 하지만 노란딱지가 붙어 광고가 제한되더라도 유튜버 입장에선 시청자들의 수퍼챗이 채널의 수익성을 유지시켜준다. 2018년 방송을 시작한 가세연이 노란딱지를 자주 받았음에도 지금껏 누적 수퍼챗 수익만 18억원 이상을 거둔 것이 대표적 예다. 그렇다고 이보다 고강도 규제를 하자니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억압해선 안 된다는 논리와 상충된다.
결국 유튜버들의 자정 노력과 함께 시청자들의 의식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분석이다. 이종혁 광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시청자로 하여금 방송 진행자(제작자)를 최대한 친근하게 느끼게 하는 연성(軟性) 콘텐트가 대다수 유튜브 채널의 인기 비결”이라며 “그 과정에서 지나치게 편향된 콘텐트가 범람하고 있음에도 많은 시청자들이 확증편향(자신의 가치관이나 판단에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다른 정보는 무시하게 되는 심리)에 따라 무비판적으로 이끌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확증편향이 무분별한 수퍼챗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유홍식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수퍼챗은 개인의 자유에 맡길 문제이지만, 시청자들이 유튜브 콘텐트를 맹신하기보다는 비판적으로 소비해야 건강한 공론장이 형성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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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아
국내에선 정치·시사나 재테크 관련 유튜버가 수퍼챗을 많이 받고 있지만, 해외에선 버추얼(가상) 유튜버인 이른바 ‘버튜버’가 수퍼챗 수익 상위권을 장악하고 있다. 버튜버는 2016년 무렵 일본에서 시작된 트렌드로 실제 사람이 아닌 가상인간이나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등장해 방송을 진행한다.
플레이보드에 따르면 지난해 ‘루시아(Rushia)’라는 일본 버튜버는 약 20억200만원의 수퍼챗 수익을 올려 세계 1위를 차지했다. 2위 ‘코코(Coco)’가 17억9300만원, 3위 ‘라미(Lamy)’가 11억9500만원으로 뒤를 이었는데 모두 버튜버다.
현재 일본에서 활동하는 버튜버만 수천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도 적잖은 버튜버가 활동 중이다. 게임 제작사 스마일게이트가 자사 게임 홍보용으로 만든 ‘세아’(사진), 성우 겸 배우 서유리가 연기하는 ‘로나로나땅’ 등이 인기 있는 버튜버다. 버튜버의 성공을 위해 중요한 요소는 캐릭터의 정교한 모델링과 성우의 연기다. 이 때문에 일부 버튜버 소속사는 아예 전문 배우를 채용해 운영하기도 한다.
이런 버튜버는 주로 서브컬처(부차적 문화) 마니아 사이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지만, 코로나19를 계기로 일본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집안에 틀어박혀 영상을 소비하는 수요가 폭증하면서 이전보다 관심을 갖는 경우가 늘고 있다. 영국 BBC 등 외신들이 잇따라 버튜버 관련 보도에 나섰을 정도다. 다만 아직까지 남성향의 버튜버 위주로 시장이 형성된 것은 한계로 지적된다. 콘텐트 업계 관계자는 “버튜버의 인기는 최근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가상인간 열풍과 무관치 않다”며 “콘텐트 산업 측면에서 성장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분야인 만큼 국내 업계도 주목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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