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환 유럽특파원의 Special Report] ‘글로벌 수퍼파워’ 추구하는 러의 ‘우크라이나 모델’… 中도 따라하나
푸틴의 전략과 국제 정치
전면적 무력 충돌 가능성이 고조되던 우크라이나 사태가 러시아의 외교 협상 지속 선언과 일부 병력 철수로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 과연 이번 사태는 전환점을 맞고 있는 것일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15일(현지 시각) 기자회견을 통해 “전쟁이 아닌 평화적 해결을 바란다”고 밝혔다. 더 나아가 러시아의 이른바 ‘안보 보장’ 요구의 핵심인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포기 문제를 “하루빨리 (협상으로) 매듭짓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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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상황만 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으로 촉발된 위기가 해결 국면으로 가는 듯 보인다. 그러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서방 지도자들은 “러시아가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불명확하다”며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3면에서 포위한 13만~15만 대군의 철수가 본격화하지 않았고, 이들이 철수한다 해도 언제든 다시 돌아와 침공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미국과 서방이 긴장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이번 사태를 통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큰 그림’이 구체적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유럽 외교가에선 “러시아의 ‘글로벌 수퍼 파워 복귀’라는 대전략의 구체적 수단과 방법들이 정체를 드러냈다”는 말이 나온다.
푸틴의 ‘단계적 수퍼 파워 복귀’ 전략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접경의 대규모 군사 활동 이유로 ‘NATO 확장에 따른 러시아의 안보 불안’을 들면서 서방에 ‘문서화된 안보 보장’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애초에 세계 최고의 핵전력과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재래식 군사력을 보유한 러시아가 안보 불안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 등은 “러시아의 군사적 압박이 유럽 전체의 안보 불안을 야기, 도리어 나토의 결속을 강화하고 군비 증강을 초래한다는 것을 푸틴이 모를 리 없다”고 지적했다.
결국 우크라이나에 대한 종주권(宗主權)을 절대 포기 못 한다는 것이 러시아의 본래 의도고, 그 배경에는 푸틴의 ‘단계적 세계 전략’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①동유럽과 중앙아시아를 아우르는 구(舊) 소련 지역의 패권을 복원하고 ②이를 기반으로 영향력의 외연을 타 지역으로 확대하며 ③종국에는 과거 구 소련에 버금가는 ‘수퍼 파워(초강대국)’로 복귀하겠다는 3단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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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압박과 동시에 올해 초 카자흐스탄의 반정부 시위 사태에 적극 개입해 영향력을 과시한 것은 지역 패권의 복원 시도로 여겨지고 있다. 러시아는 더 나아가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하면서 자국 병력과 전투기까지 보내 중동으로 손을 뻗치고 있다. 러시아 영향력의 외연을 더욱 넓혀가는 행보다.
푸틴 대통령은 또 지난 3일 모스크바에서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만난 데 이어, 16일에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도 만났다. 지난달엔 베네수엘라, 쿠바, 니카라과 정상과 잇따라 전화 회담을 하며 각종 지원을 약속했다. 지구 반대편 중남미까지, 전 세계에 영향력을 발휘하겠다는 신호탄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이 모든 과정의 첫 단추가 되는 출발점이다. 우크라이나 경제가 러시아의 굴기(崛起)에 상당한 전략적 이점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프랑스에 이어 유럽 2위의 농업 생산국이다. 또 소련 시절부터 우수한 항공·우주·군수 산업을 갖추고 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우크라이나가 친러 국가로 남아야 자국 경제·산업 역량을 키우기에 유리하다. 친러 반군이 장악한 동부 돈바스 지역은 우크라이나의 공업 시설이 집중된 지역이다.
미국 방치 속에 ‘힘든 상대’로 큰 러시아
미국과 서방 입장에선 러시아의 ‘큰 그림’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쉽게 우크라이나를 넘겨줄 수 없다. 그러나 이에 대처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 딜레마다. 러시아는 자국의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군사력뿐만 아니라 에너지 자원이라는 ‘무기’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며 한층 진화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군사적으로는 2014년의 크림반도 점령과 2008년의 조지아 침공 같은 전격전뿐만 아니라, 수개월에 걸친 점진적 병력 증강만으로도 충분히 서방을 압박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또 미국과 유럽의 ‘초강력 경제 제재’ 위협에 끈질기게 버티면서, 유럽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 중단이라는 강력한 보복 수단이 있음을 보였다. 소련 시절에 비해 더 다양하고 효율적인 대외 압박 수단을 구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는 전쟁이 아닌 협상 테이블에서도 러시아가 더 유리한 입장에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유럽에서는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를 30여 년간 방치해 온 미국의 전략적 실책이 지금의 상황을 낳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영국 일간 더텔레그래프는 “동유럽부터 코카서스 지방, 중앙아시아까지 러시아의 패권이 성공적으로 강화되고 있는 동안, 미국과 서방의 대응은 미약하기 짝이 없었다”며 “푸틴에겐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다’는 파란불을 켜준 셈이었다”고 분석했다.
[러 下院, 우크라이나 분리 결의안 채택]
친러 우크라 동부지역 편입 유도
러시아 하원은 15일(현지 시각) 친러 반군이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도네츠크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자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후 러시아에 편입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미국·서방과 협상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저지 후, 우크라이나를 연방제 형태로 유도할 것이란 의혹이 커지고 있다.
프랑스 국제관계연구소(IFRI)는 “우크라이나가 돈바스와 크림반도를 포함해 연방 국가를 이루게 하는 것이 러시아의 전략적 목표에 더 부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연방제가 되면 나토 가입 같은 군사·외교적 결정을 연방 구성원인 크림과 2개 자치주(州)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이 주들을 독립시키는 것보다 우크라이나 연방에 편입시켜 놓고, 중앙정부의 군사·외교적 결정에 계속 거부권을 행사토록 하는 것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좌지우지하는 데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이 같은 전략은 중국의 큰 관심을 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우크라이나 사태 초기부터 러시아가 서방을 압박해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내는 과정에 주목해 왔다. 러시아가 전략적 성과를 거두는 것이 확인되면, 중국도 직접적 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피터 더턴 호주 국방장관은 “우크라이나에서의 위기 사태 진전은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파리의 한 서방 외교관은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전략도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북한 급변 사태 등을 이유로 압록강 접경 지역에 중국군을 배치, 침공 위기를 조장해 한반도에 중국에 더 유리한 체제가 들어서도록 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군사적 영향력을 활용, 한반도 전체를 친중화(親中化)하는 모델을 바로 우크라이나 사태가 제공한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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