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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 ‘손정의 Pick’ AI로 금융 잡는다…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 김형식

황태자의 사색 2022. 2. 17.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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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 ‘손정의 Pick’ AI로 금융 잡는다…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 김형식

중앙일보

입력 2022.02.17 06:00

팩플레터 199호, 2022.2.10

 Today's Interview
‘손정의 Pick’ AI로 금융 잡는다…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 김형식 

안녕하세요, 여러분! ‘목요 팩플’ 인터뷰입니다.

요즘 주식시장이 널뛰고 있죠. 요동치는 주가를 따라 마음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분도 많습니다. 이럴 땐 똑똑하다고 소문난  인공지능(AI)이 척척 투자도 대신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요. 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는 바로 이런 AI를 개발하는 핀테크 스타트업입니다. 최근에 소프트뱅크가 1억4600만달러(약 1750억원)를 투자해 화제를 모았죠.

오늘은 남궁민 기자가 이 회사 김형식 대표(42)를 만나고 왔습니다. 때로는 인간보다 뛰어난 투자자인 AI가 플러스 알파 수익을 내게 만든 이야기, 한번 들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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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 김형식 대표 사무실에는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 가득했다. 금융 상품인 상장지수펀드(ETF)를 운용하는 회사지만, 사무실엔 그 흔한 주가 차트 하나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건 ‘뇌 과학의 모든 역사’, ‘의식의 수수께끼를 풀다’ 등 신경과학 서적. 김 대표 머릿속엔 금융을 넘어 ‘인간의 사고방식’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했다.

이 회사는 창업 3년 만인 2019년 뉴욕 증시에 AI가 운용하는 ETF를 상장해 주목받았다. 국내 기업 중 처음이다. 지난해에는 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의 AI가 테슬라의 최근 2년간 있었던 주가 하락(월간 기준) 3번을 모두 미리 맞춰 '테슬라 족집게'라는 별명도 얻었다.

지난달엔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로부터 1억4600만 달러(약 1750억원)를 투자 받았다. 업계 안팎에선 비전펀드가 아닌 소프트뱅크가 직접 투자한 걸 놓고 전략적 협업을 염두에 둔 투자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는 어떤 큰 그림을 그리는 걸까. 지난달 25일 서울 영등포구 본사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주알못' 공대생, 프로그램 매매에 빠지다

김형식 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 대표 약력

대학 전공도, 관심사도 전형적인 ‘금융맨’과 다르다.
“대학 들어갈 때까지 주식에 전혀 관심이 없던 공대생이었다. 그러다 2001년 병역특례로 일하던 회사에서 HTS(홈트레이딩시스템) 개발 업무를 맡았다. 이때 처음으로 주식을 접했다. 닷컴버블이 무너진 직후라 수익을 많이 거뒀다. 수익이 많이 나니 재미가 붙어 전업 개인투자자가 됐다. ‘데이 트레이더’ 1세대다.”
어떻게 처음부터 큰돈을 벌었나.
“HTS에는 공시·뉴스 속보 같은 정보가 들어왔다. 당시 근무하던 곳이 AI 자연어 처리 회사였기 때문에 이 기술을 활용해 해석했다. 예컨대 ‘A 회사가 특허 출원했다’는 뉴스가 나오면 자동으로 그 회사를 매수하는 방식이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초보적인 기술인데, 당시에는 시장 특성이 뉴스 하나에도 격렬하게 반응했던 터라 성과가 좋았다. 월 수익률이 10%를 넘었다.”
계속 추가 수익을 내긴 어려울 텐데.
“전업 투자자로 나선 지 1~2년쯤 지나니 뉴스를 이용한 매매로 거두는 추가 수익(α·알파)이 사라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만 그렇게 매매한 게 아니었다. 다른 투자자도 뉴스 속보를 활용한 투자를 하고 있었다. 증권사에 이용료를 내고 더 빠르게 기사를 받아보는 투자자도 있었다. 이런 투자자들이 먼저 수익을 가져갔기 때문에 경쟁이 되지 않았다.”

믿었던 투자 전략 효과는 사라졌지만, 김 대표는 투자를 그만두지 못했다. 손에 잡히는 듯하면 사라지는 ‘알파’를 쫓아 더 깊숙하게 빠져들었다. 그는 “지금도 코인으로 돈 번 친구들이 절대 그만두지 못하는 것처럼, 한 번 맛본 수익이 계속 떠올랐다”고 말했다.

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 개요

생물학에서 찾은 AI 매매의 힌트

첫 실패 후 어떤 선택을 했나.
“제대로 투자를 공부하자는 생각에 2005년부터 서울대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는데, 실수였다. 투자와는 전혀 관계가 없더라. 다른 돌파구를 찾아서 주변 친구들과 모여 직접 프로그램을 짜서 투자했다. 5~6명이 기숙사에 모여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해서 주식이나 파생상품 투자를 했다. 알고리즘 매매를 한 건데, 2008년 금융위기 같은 변동성이 큰 장을 만나니까 특히 효과가 좋았다.”
이번에는 알파가 사라지지 않았나.
“똑같았다. 2011년까지 수익이 좋았는데, 3년 정도 지나니 적자로 돌아섰다. 다른 경쟁자들도 알고리즘 매매를 적극적으로 쓰기 시작하니 내가 거둘 알파가 사라진 거다. 시장 수준이 높아지니까 예전처럼 한가지 전술로 큰 수익을 꾸준히 내기 어려워졌다. 전략을 만들면 순식간에 효과가 사라지는 일이 반복됐다. 엄청난 자본과 인력을 투입하는 경쟁자를 상대하기 벅찼다.”
돌파구를 어떻게 찾았나.
“무직 상태로 무슨 일을 할지 고민하던 차에 한 결혼식장에서 고교 동창을 만났다. 미국 스탠포드대에서 생물정보학을 공부한 친구인데, 미국에서는 AI 딥러닝을 활용한 트레이딩을 많이 연구한다고 알려줬다. 보통 단백질이나 유전자 구조를 분석할 때 쓰는 기술인데, 투자에 접목할 수 있다고 하니까 바로 활용해 봤다. 다시 수익이 나기 시작했다.”

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가 운용하는 AMOM ETF의 테슬라 보유 비중 추이와 테슬라 주가.

알파와 술래잡기 끝에 김 대표는 AI라는 해법을 찾았다. 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의 시작이었다.

과거 전략과 AI 투자의 차이는.
“이전에는 직접 사람이 전략을 실험했다면 이제는 AI가 직접 학습하면서 전략을 찾는다. 예를 들어 현재 시장 상황에서 ROE(자기자본이익률)가 주가 움직임에 큰 영향을 준다고 AI가 판단하면, 이 변수의 가중치가 높아진다. 이렇게 작은 영역의 변화를 파악하는 AI가 있고, 이 정보를 모아서 투자 전략을 짜는 AI가 또 있다.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AI가 최적의 전략을 만들고 실행하는 방식이다.”
AMOM(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 운용 ETF)이 테슬라를 하락 시점에 맞춰 매도한 게 화제였다.
테슬라처럼 사람 심리에 큰 영향을 받는 주식이 더 적중률이 높다. AI는 냉정하게 데이터로만 적정 주가를 파악해서 매매를 결정할 수 있어서다. 트위터나 레딧 같은 곳에 테슬라에 대한 긍정적, 부정적인 글이 퍼지는 것도 수치화해 반영할 수 있다. 일론 머스크가 올린 트윗이 주가에 부정적인 이슈이고, 이게 얼마나 퍼졌는지 측정하는 식이다. 감정적 요소로만 투자를 결정하진 않지만, 참고하고 있다.”
몇 년 전 ‘로보어드바이저’ 같은 AI 금융상품이 나왔지만 외면 받았다.
“AI를 활용했다고 했지만, ‘안정형’ ‘적극형’처럼 투자자 성향을 나누고 나이 정도를 고려해 자산배분을 하는 수준에 그쳤기 때문이다. 단순한 자산배분 상품에 가깝고 AI와 큰 관련은 없다. 하지만 AI를 활용한 자산배분은 우리도 개발하고 있다. 앞으로는 투자자의 지출 데이터, 주택·차량 매매 같은 데이터를 모두 고려해 적절하게 자산배분하는 방식으로 고도화해야 한다."

인간은 AI 트레이더를 이길 수 없다 

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가 운용하는 QRFT ETF와 미국 S&P500 지수 성과 비교.

AI가 인간보다 어떤 점이 투자에 유리할까.
“AI는 인간보다 훨씬 방대한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고, 감정적 요소로 판단이 흔들리지 않는다. 테슬라와 관련한 많은 수치를 모아서 판단하고 전 세계에서 올라오는 트윗 같은 정성적인 요소도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거시적 맥락을 읽는 능력은 떨어진다. 테슬라의 주가 데이터는 읽을 수 있어도 '전기차 시장의 미래' 같은 건 사람만 판단할 수 있다.”
뇌과학에 관심을 갖는 것도 그런 이유인가.
“투자는 사람도 AI도 혼자서는 잘 못하는 영역이다. 양쪽 강점을 어떻게 활용할지가 항상 고민이다. 사람의 사고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연구하고 AI에 접목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생물학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온 건데, 실제로 실험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는 건 100번에 한두 번 정도다. 앞으로도 인간과 AI의 강점을 결합하는 게 미션이 될 것 같다."

김형식 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 대표 사무실에 놓인 책들. 뇌과학 관련 책이 눈에 띈다. 남궁민 기자

AI만의 강점이 확실한 건 어떤 영역인가.
“개발 도구 중에 AI가 트레이딩을 하는 AXE(AI eXecution Engine·인공지능 주문집행 엔진)를 증권사에 제공하고 있다. 연기금이나 증권사에서 수천억 원어치 주식을 팔 때, 한 번에 팔 수 없다. 이 때문에 트레이더가 여러 번 거래하게 되는데 시차로 인해 호가가 바뀌어서 조금 손해를 본다. 보통 기준가보다 0.05% 가량 낮은 가격에 팔면 최정상급 트레이더로 분류하는데 AXE는 오히려 기준가보다 0.1~0.05% 더 높은 가격에서 비싸게 판다. AI는 아주 짧은 시간에도 많은 판단을 할 수 있어서다. 이 분야는 앞으로도 인간이 AI를 이기는 건 어려울 것이다.”

AI를 빌려주는 회사

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 직원들과 김 대표. 주로 AI, 컴퓨터공학 전공자로 이뤄졌다. [사진 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 제공]

스타트업 업계에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투자는 중요한 이정표다. 쿠팡, 알리바바, 우버 등 쟁쟁한 기업을 미리 알아본 손 회장의 안목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창업한 지 6년 된 기업에 손 회장이 손을 내민 이유는 뭘까.

소프트뱅크 투자를 받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이번에 투자가 이뤄졌지만, 사실 2년 전에도 투자 제안이 왔다. 당시엔 기업 규모가 투자를 받기엔 작다고 생각해서 미뤄졌다. 단순히 수익을 목적으로 한 재무적 투자가 아니라 전략적으로 제휴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투자도 비전펀드가 아니라 소프트뱅크가 직접 지분을 투자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소프트뱅크가 기대하는 시너지는 뭘까.
“소프트뱅크의 투자 포트폴리오 운용에 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의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 소프트뱅크는 비상장 스타트업에도 많이 투자하고 있지만, 상장사 주식도 많이 갖고 있다. 이 주식을 관리하고 매매하는 데 AI를 활용하는 구상이다. 소프트뱅크의 투자 관리를 위한 도구를 제공할 수 있다.”
소프트뱅크 뿐 아니라 미래에셋 등 증권사와의 협업도 많다. 경쟁자 아닌가?
우리 비즈니스 모델은 모든 회사가 ‘알파’(수익)를 찾게 도와주는 일이다. 금융사에 AI 솔루션을 제공해서 더 좋은 투자 결정을 내리도록 조언하는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를 팔려 한다. 이 기술은 금융사에서만 쓰는 건 아니다.”
어디서 쓸 수 있나.
“고객 중에는 철강, 정유업체도 있다. 해외 시장 철광석 가격이나 환율, 물동량 같은 요소가 사업에 큰 영향을 미친다. 방대한 데이터를 종합해 경영 판단에 활용할 수 있는 AI를 세팅해 준다. 우리 역할은 기업들에 AI로 돌아가는 ‘실험실’을 놔주는 거다. 이 실험실에서 기업들이 여러 사업 전략을 짜고 시험할 수 있다.”
빅테크 기업도 앞다퉈 AI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경쟁할 수 있을까.
“빅테크 기업은 운용해야 할 현금도 많고 기술도 있으니까 직접 개발할거다. 하지만 작은 기업은 각자 AI를 개발할 수 없다. 우리는 그런 기업에 AI를 전문적으로 개발해 제공하는 회사가 되려고 한다.”
크래프트테크놀로지의 궁극적인 꿈은 뭔가.
“PC 시절 ‘인텔 인사이드’라는 표시가 믿음의 상징이었다. 앞으로 우리의 AI를 쓰는 기업에도 ‘크래프트 인사이드’라는 표시가 붙을 만큼 믿고 쓰는 AI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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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민 기자 namgung.m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