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무비줌인/손효주]10초 건너뛰기 중독자에겐 죄가 없다

황태자의 사색 2022. 2. 18. 10:45
728x90

[무비줌인/손효주]10초 건너뛰기 중독자에겐 죄가 없다

입력 2022-02-18 03:00업데이트 2022-02-18 10:32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에서 주연 배우 레이디 가가(파트리치아 역)가 파티를 즐기고 있다. 필자의 ‘10초 건너뛰기’ 중독 증세를 일시적으로 치료해준 영화다. 유니버설픽처스 제공
손효주 문화부 기자
지난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이 상영 중인 한 영화관. 관객석에서 필자는 손톱을 만지작거렸다. 자세 고쳐 앉기를 거듭하는 등 몇 차례 안절부절못했다.

스크린에선 넷플릭스의 ‘마이네임’이 상영되고 있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린 이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리즈가 초청된 건 처음. 스크린 한가운데 떠오른 넷플릭스의 ‘N’은 기성 영화계를 향해 “세상은 OTT가 점령했다”라고 선포하는 듯했다. 그러나 영화와 시리즈의 경계가 사라지는 순간을 목도하고 있다는 사실에 벅차오른 것도 잠시, 곧 초조해지고 말았다.

경찰 역할의 한소희가 차량을 운전해 경찰서로 돌아오는 장면이 문제였다. 운전 장면과 그가 경찰서 복도를 걷는 장면 등이 대사 없이 약 50초간 이어졌다. 10초, 20초…. 차오르는 시간과 함께 ‘이상한 욕구’가 턱 끝까지 차올랐으니, 그것은 마법의 버튼 ‘10초 건너뛰기’를 누르고 싶다는 욕구였다.

 
그렇다. ‘10초 건너뛰기’ 중독 증세다. 이런 증상을 겪는 이들은 OTT를 통한 콘텐츠 시청에 익숙한 MZ세대 사이에서 비교적 흔하다. ‘마이네임’의 50초처럼 스토리를 이해하는 데 문제가 되지 않는 장면에서 건너뛰기 욕구는 정점을 찍는다.

OTT는 시청 편의를 제공하고 콘텐츠 소비를 촉진할 목적 등으로 10초 건너뛰기 기능을 도입했다. 이 기능은 고속재생 기능과 상승 효과를 내며 시청 형태의 혁명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인터넷엔 8시간이 넘는 10부작 시리즈를 두 기능을 활용해 4시간 만에 주파했다는 식의 ‘속도전 무용담’이 넘친다.

이런 시청 형태가 병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단 몇 초의 지루함도 참지 못하는 증세는 강박증이 결합된 성인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와 유사하다는 것. 그러나 이를 빈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MZ세대의 ‘행위 중독’ 탓으로만 돌려야 할지는 생각해볼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