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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은 아이들 기다리는 건 안락사…유기견 구하려 카메라 들었죠" [인터뷰]

황태자의 사색 2022. 3. 5. 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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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은 아이들 기다리는 건 안락사…유기견 구하려 카메라 들었죠" [인터뷰]

[Weekend Interview] 유기견의 운명을 바꾸는 `펫 포토그래퍼` 염호영 사진작가

  • 고보현 기자
  • 입력 : 2022.03.04 17:05:21   수정 : 2022.03.04 23:23:29
 
 

반려동물 사진을 전문으로 찍는 염호영 사진작가가 서울 광진구 뚝섬유원지에서 반려견 로마 옆에 앉아 카메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탓 트밤 아시'라는 말이 있어요. 산스크리트어인데요. 그대가 그것이고, 너의 눈을 통해 나를 본다는 뜻이죠."

염호영 사진작가(38)는 동물의 눈을 통해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본다고 했다. "동물 사진을 찍다 보면 아이들 눈동자에 내가 그대로 나타나요. 가끔 짜증을 내거나 할 때면 거울을 보고 화를 내는 느낌이에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결국에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만 남는 것 같아요."

반려동물 양육 인구 1500만 시대. '애완동물'에서 '반려동물'로 성장한 이들은 어느새 우리의 가족이 된 지 오래다. 염 사진작가는 이처럼 우리 삶에 떼려야 뗄 수 없는 특별한 존재인 '가족'들과 추억 쌓는 일을 돕는다. 개와 고양이 등 반려동물의 프로필 사진, 가족사진을 비롯해 유기견 입양이나 노령견의 영정 사진을 전문적으로 촬영하는 '펫 포토그래퍼' 염 사진작가를 만났다.

―펫 포토그래퍼라니 아직 우리나라에선 생소하기만 하다.

▷주로 하는 일은 반려동물 스튜디오나 야외에서 관련 촬영을 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서울대공원 기자단으로 활동하면서 코로나19로 직접 방문하기 힘든 시민들을 위해 사진촬영을 하기도 했다.

생각보다 강아지·고양이 말고도 많은 동물들이 반려동물로 지내고 있다. 햄스터, 앵무새, 뱀, 도마뱀 촬영도 많이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뱀과 햄스터도 주인을 알아본다는 점이다. 햄스터도 주인이 불러야 오고, 앵무새에게선 촬영 도중 욕먹은 적도 있다(웃음).

―반려견 로마도 같이 소개해달라. 언제부터 식구가 됐는지.

▷로마는 여섯 살이고 시바 믹스견인 것 같다. 2016년에 데리고 왔다. 주변 지인이 귀엽다고 키웠다가 털이 많이 빠진다는 사실을 알고 유기한 것이다. 세상에 별사람이 다 있구나 싶었다. 제가 밤새 로마를 찾아내 전 주인에게 포기각서를 쓰게 한 뒤 입양했다. 키우다 보니 지금의 토실토실한 모습을 갖게 됐지만 처음에만 해도 피부병, 영양실조 등이 있었다.

―사람보다 개를 더 많이 만나는 직업일 것 같다. 개를 이해하기 위해 동물훈련사 자격증도 취득했다고.

▷스튜디오에도 임시보호 중인 유기견들이 항상 있다. 매번 한두 마리씩, 짧으면 한 달에서 반년까지 돌보고 있다.

반려동물행동교정사와 동물훈련사 2급 자격증이 있다. 물론 자격증이 다는 아니다.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하는 과정, 아이들을 그만큼 이해하려는 노력 자체가 중요한 것 같다. 처음에 아무것도 없었을 때에는 아이들을 알아야 하니 공부를 시작했다. 해부학 공부까지 했었는데 도움이 많이 됐다.

사진은 관찰하는 작업이다. 지식을 갖고 관찰하다 보니 반려동물이 아픈 곳을 가족보다 먼저 발견할 때도 있다. 얼마 전에도 촬영 중인 강아지를 보고 "왼쪽 뒷다리에 슬개골 탈구가 왔네요"라고 말씀드렸는데 보호자는 미처 모르고 계시더라. 이후 병원을 갔더니 슬개골 탈구 판정을 받았다고 들었다.

―한 장의 반려동물 사진이 탄생하게 되는 과정이 궁금하다.

▷다른 사진관에서 찍은 것보다 제가 작업한 반려동물의 표정이 많이 밝다고 말해주신다. 똑같은 사진인데 평소 모습이 더 잘 나온다는 말인 것 같다. 우선 동물들이 사진 찍으러 낯선 곳에 끌려왔다는 느낌이 들지 않게 넓은 운동장에서 마음껏 뛰어놀게 한다.

두 번째는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엄마 손을 잡고 어딘가로 왔는데 나보다 수십 배나 큰 사람이 나타나 손에 시커먼 걸(카메라) 들고 있으니 무섭지 않겠나.

그럴 땐 가만히 서 있다가 먼저 다가오는 강아지들에게 간식을 하나씩 준다. 1m 이내로 가까워지면 간식을 주고 '간식 자판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때까지 반복한다.

촬영이 시작되면 장난감이나 간식으로 주의를 끈다. 제가 강아지 소리를 직접 내는 경우도 많다. 하울링 소리가 나면 강아지 귀가 쫑긋해지면서 집중력이 올라간다. 고개를 한쪽으로 갸우뚱하는 포즈가 나오기도 한다.

―이른바 '증멍사진(반려견 프로필)'이나 가족사진을 찍으러 오는 사람들은 어떤 이들인지.

▷예를 들어서 강아지를 데리고 오는 분들 중에는 신혼부부, 커플이 많다. 노령견은 아무래도 중장년층 부모님들이 데려온다. 가끔 아저씨들이 오시는 경우에는 부끄럽다는 듯 강아지만 맡긴 채 '예쁘게만 찍어줘'라고 말한 후 휙 나가신다. 강아지를 위해 소중한 사진 한 장 남기고 싶다는 소녀 같은 감성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직업을 택한 결정적 계기가 로마 때문이라고 들었다.

▷로마를 데려온 지 1년쯤 지난 2017년이었던 것 같다. 그때만 해도 강아지에 대해 아예 모르면서 키우고 있었다. 어느 날 산책이 부족했는지 로마가 문이 열린 곳으로 뛰쳐나갔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시바견이 콜링(부르면 오게 하는 훈련)이 잘 안되는 견종이라고 하더라. 경기도 광주에서 잃어버렸는데 이틀 뒤에 20㎞ 떨어진 용인시 보호소에서 연락이 왔다.

보호소에 갔더니 그때만 해도 뜬장이라고 해서 개들을 층층이 쌓아놨다. 로마를 데리고 나오기 전에 항상 가지고 다니던 카메라로 유기견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집에 와서 소장님에게 사진들을 보내주고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소장님에게 연락이 와서 말하길, 제가 찍은 사진을 보고 안락사가 예정돼 있던 개가 해외로 입양을 갔다고 말해줬다. "당신이 찍은 사진 한 장 덕분에 그 아이가 살았다"는 그 전화를 끊고 한참을 생각했다.

당시 저는 신혼부부 사진을 공장처럼 찍어내는 웨딩업계에서 일하고 있었다. 일에 대한 회의감이 들던 차에 '당신의 사진이 생명을 구했다'는 이야길 들으니 이 일을 해야 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기견 보호소의 동물 사진을 찍다 보면 제 사진으로 입양을 잘 간 경우도 있지만 결국 안락사를 당한 아이도 있다. 그럴수록 더 욕심이 생겼다. '내가 더 잘 찍었다면 그 아이는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사진 제공 = 오디너리독스]
―유기견 말고도 노령견의 영정사진도 무료로 찍어준다고 들었다.

▷원래는 1년 동안 노령견 100마리를 찍겠다는 프로젝트로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강아지 사진을 보면 어리고 이쁘고 귀여운 모습만 나오지 않나. 그런데 우리 주위엔 나이가 많아 장애가 생기거나 늙고 병든 개들이 많다. 당신들이 알고 있는 작고 귀여운 강아지만 보지 말아달라고 말하고 싶다. 이렇게 노령견이 되면 눈도 안 보이고 이빨도 없어질 텐데, 죽을 때까지 한 생명을 책임질 수 있는지 입양 전에 한 번만 더 생각해주길 바라는 의미에서 찍기 시작했다.

―반려동물 사진작가의 매력 세 가지 꼽자면.

▷뻔한 사진이 안 나오는 점이 가장 큰 재미라고 할 수 있다. 풍경이나 건축물 사진처럼 고정된 사물을 찍는 것이 아니라서 그렇다. 사람도 사진 찍을 때 부탁하면 가만히 앉아 있지 않나. 반면 동물 촬영은 언제나 환경 변화가 많다. 촬영에 있어 변화를 계속 줘야 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강아지 사진을 찍으려면 운동장도 필요하고 간식도 필요하다. 고양이는 동공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촬영장 조명까지 신경 써야 한다. 도마뱀은 히터와 가습기, 핫팩까지 동원해 온습도를 조절하고 햄스터는 도망가면 찾기가 힘들어 사방이 밀폐된 곳에서 찍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런 것은 일반 촬영에선 보기 드물다. 한 아이를 오래 찍다 보면 그 동물이 내게 호감을 갖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교감하는 과정에서 느끼게 되는 감정들이 참 행복하다.

그 밖에 강아지들은 사진을 찍는다는 것을 몰라서 자연스러운 모습이 잘 나온다. 사람은 긴장해서 굳기도 하는데 동물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쁘게 나오는 느낌이다. 강아지들은 24시간 내내 뭐든지 최선을 다해서 살기 때문에 언제 어느 순간에 찍어도 열정적인 사진들이 나온다는 게 좋다(웃음).

―지난해 국내 유기동물 발생 건수가 12만건에 달한다고 한다.

▷유럽의 많은 국가에선 강아지를 키우기 위해 보호자가 시험을 봐야 한다. 예를 들어 강아지가 장난감을 삼켰을 때 필요한 응급조치까지 배워야 동물을 키울 수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생명이라도 너무 쉽게 얻을 수 있으니 쉽게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반려동물 선진국이 되려면 강아지를 법적으로 좀 더 키우기 어렵게 만드는 조치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반려동물 입양과 등록, 퍼피 트레이닝 등 교육도 지금보다 장벽이 높아져야 한다.

―반려견·반려묘 촬영 꿀팁을 알려준다면.

▷휴대폰을 거꾸로 들고 촬영하면 된다. 반려동물 눈높이에 맞춰서 찍으면 더 잘 나온다는 뜻이다. 보통은 서서 카메라를 들고 바닥에 있는 동물을 찍게 마련이다. 이런 경우 강아지가 위를 올려다 보는 구도로, 사진의 배경이 땅바닥이 돼버린다. 그것보다는 서로 시선을 맞추는 '아이레벨' 촬영법 하나만으로도 사진이 많이 달라질 수 있다.


▶▶ 염호영 사진작가는…

1984년 출생. 2007년 일본 유학 당시 우연한 계기로 사진을 배우기 시작해 사진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2019년 소니글로벌동물사진전에서 대상을 수상했으며 그 외 다수 공모전에서 입상한 그는 이듬해 소니코리아 공식작가에 등단했다. 오랜 시간 유기견 보호·입양 지원 봉사활동을 해오던 그는 지극히 평범한 개들을 위하겠다는 마음으로 2020년 '오디너리독스' 스튜디오를 열었다. TV 프로그램 '개는 훌륭하다' '류수영의 동물티비' 등에 출연했으며 현재 서울시 평생교육원, 청주교육대학교 등에서 온·오프라인 교육과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고보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