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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수단만으로 평화 이룬다는 건 도그마… 종전 선언땐 안보 위험”

황태자의 사색 2022. 3. 7.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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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수단만으로 평화 이룬다는 건 도그마… 종전 선언땐 안보 위험”

[유용원이 만난 사람] 야전 군인으로 독일서 첫 역사학 박사 딴 류제승 국가전략연구원 부원장

입력 2022.03.07 03:00
 
 
 
 
 
류제승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부원장이 6일 조선일보사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배경과 전망, 교훈 등에 대해 인터뷰하고 있다. 류 부원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은 힘이 없는 평화의 허구성과 동맹의 중요성을 일깨워줬다”며 “오직 평화적 수단으로 평화를 이룬다는 도그마에 빠져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남강호 기자

지난달 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으로 국제적인 파장이 커지고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엄포에 그치거나 국지전을 펼 것이라는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전면 침공을 택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비유됐던 우크라이나 전쟁은 우크라이나 지도자와 국민들의 강한 항전 의지로 러시아군이 고전하며 장기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러시아 전면 침공 배경과 현재의 전황(戰况) 분석, 향후 전망과 우리에게 주는 교훈 등에 대해 류제승(65)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부원장(예비역 육군중장)을 6일 조선일보사에서 만나 들어봤다. 류 부원장은 국방부 정책실장 등을 지내 국제 안보정세와 국방 정책, 전략·전술에 밝은 전문가다.

러시아가 키이우 점령하려는 이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했는데 푸틴과 러시아의 전쟁계획 및 공격작전의 목적은 무엇인가?

“푸틴의 전쟁 목표는 우크라이나의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포기, 중립화, 비무장화, 친러 정권으로의 교체 등을 통해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영향권에 묶어 두려는 데 있다. 이러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군사작전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전략적 중심인 키이우를 점령하고자 하는 것이다.

러시아는 이를 위해 작전선(Line of Operation)을 북부·동부·남부 축선(軸線)으로 계획해 공세를 취하고 있다. 작전선은 작전 목표에 이르는 경로로 결정적 지점들을 연결한 선이다.

최종 목표 키이우에 이르는 축선 상의 전략적 요충지인 하르키우, 오데사, 마리우폴, 헤르손 등지가 결정적 지점이며 결정적 전투가 이뤄지는 곳이다. 이 중 현재 헤르손은 러시아군의 수중에 떨어진 상태다.”

-러시아군이 예상 외로 고전하고 있는데 러시아군에 문제가 많은 것인지, 아니면 우크라이나 군과 국민들의 기대 이상 선전 때문인지.

“러시아군이 고전하는 이유는 러시아군의 전쟁전략 및 작전에 내재된 문제와 함께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중심이 된 총력 항전에 있다고 본다. 우크라이나는 정치 지도부를 중심으로 민군(民軍)이 혼연일체가 돼 결사 항전을 벌이고 있다. 반면 러시아군은 식량과 유류를 제대로 지원받지 못하고 있는데 기갑 및 기계화부대가 주력부대이기 때문에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쟁이 아닌 훈련에 참가하는 줄 알았다는 러시아 병사의 증언, 우크라이나 여성이 건넨 휴대전화로 고향의 어머니와 통화하며 눈물을 흘리는 병사의 모습 등에서 왜 싸워야 하는지에 대한 목적의식과 정신무장이 부실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 해빙기가 되면서 생겨난 ‘라스푸티차(진흙뻘)’로 인해 도로망에 의존해 기동해야 하는 제약이 따르면서 러시아군의 기계화 및 차량화된 공격부대 이동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 전쟁 준비 및 수행 과정 부실

-러시아군이 아직까지 제공권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것 같은데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의 전력을 비교해보면 뜻밖이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나.

“상대적으로 우세한 전력을 보유한 러시아군의 전쟁준비와 전쟁수행을 위한 과정이 부실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군사작전은 1단계 여건 조성 작전, 2단계 결정적 작전 , 3단계 전투력 지속 작전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2단계 결정적 작전에 있어 러시아군이 속전속결을 기도했다면 1개 축선에 주공(主攻) 임무를 부여하고, 다른 1개 축선에 조공(助功) 임무를 부여해 전투력을 집중 운용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광활한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북부·동부·남부 3개 축선으로 분산해 운용함으로써 결국 모든 축선에서 충격력이 부족해지고 공격 기세가 둔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본다.”

-’도시는 병력의 늪’이라는 표현도 있는데 키이우 등 대도시에서 시가전을 벌이면 러시아가 장기전의 늪에 빠질 수 있는 것 아닌가?

“군사 교리는 ‘도시는 병력을 삼킨다. 공격 작전 시 도시는 최대한 우회하라. 방어 작전 시 도시는 장애물로 이용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지금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도심 곳곳의 병목 지점을 잘 알기 때문에 대전차지뢰 등을 설치해 적 전차나 장갑차의 기동을 정지시키고, 그 순간 대전차 미사일, 화염병 등으로 습격하기 때문에 러시아군의 전차와 장갑차 피해가 많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2016년 용산 국방부에서 류제승 당시 국방부 정책실장과 토머스 밴달 미 8군 사령관이 주한미군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 결정을 발표하고 있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 특징 중의 하나는 러시아는 물론 우크라이나도 치열한 하이브리드전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하이브리드전은 기존의 재래식 전쟁·비정규전·사이버전에다 가짜뉴스 등 심리전, 외교전, 소송전 등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온갖 도구를 동원, 상대에게 타격을 입히고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려는 새로운 형태의 전쟁 개념이다.

-그동안 하이브리드전은 러시아의 강점 중 하나로 꼽혀왔다. 하지만 이번엔 오히려 우크라이나가 SNS 등을 활용한 여론전에서 앞서고 있는 듯한데.

 

“어떤 전쟁이든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하면 그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고 패배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 공격을 받은 우크라이나는 긴급히 IT 부대를 창설하고, 전 세계 해커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세계적인 기업들이 호응에 나섰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은 사이버전과 정치심리전, 미디어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본격적인 하이브리드 전쟁시대로의 전환점이 되었다는 역사적 평가가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전쟁의 4분의 3은 정신적 전투력”

-이번 전쟁은 현대전에서도 역시 정신력, 정신자세가 가장 중요한 변수 중의 하나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 아닌지.

“‘전쟁론’으로 유명한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전쟁과 전투에서 정신적 전투력이 3/4, 물리적 전투력이 1/4 비중을 차지한다고 설파했다. 전쟁 수행 방식이 복합적이고 고도화될수록 그 주체인 인간의 사유와 판단력의 중요성은 더 커지고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정신력이 결정적 성격을 띠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나에게는 죽음을 겁낼 권리가 없다’며 결연한 국가 수호 의지를 표현하고 있는데 그의 결연한 자세는 2차 대전 때 윈스턴 처칠에 비유될 정도로 전 세계를 감동시키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항전 의지, 일부 러시아군의 한심한 모습을 보면서 현재 우리 군의 정신력, 훈련 태세 등을 걱정하는 분들도 있는데.

“우리 국민과 군은 위기 상황에 직면하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더 강해진다. 다만 평소 정치 지도부와 군사 지휘부가 국민의 의지와 국가적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될 수 있도록 효과적인 국가안보위기 관리체제를 유지하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하루속히 우리 장병들과 국민들의 대적(對敵) 관념을 회복해야 함은 물론이다. 전쟁을 하지 않으려면 전쟁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략적 역설은 진리이고, 평화는 전쟁억제의 다른 표현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힘이 없는 평화의 허구성과 동맹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오직 평화적 수단만으로 평화를 이룬다는 것은 도그마(교조주의)이며 여기에 빠져서는 안 된다.”

-푸틴은 전면 침공 개시와 동시에 핵 사용 위협을 시작해 위협 강도를 높여가고 있는데 정말 핵전쟁으로 비화할 위험은 없는가.

“푸틴은 전면 침공과 동시에 ‘러시아는 최강의 핵국가’라며 첫 핵사용 위협을 한 후 치밀하게 준비된 각본에 따라 위협 및 압박 강도를 단계적으로 높여 가고 있다. 푸틴은 전황이 불리해질수록 우크라이나의 항전을 약화 또는 무력화하기 위한 방책으로 핵카드를 만지작거릴 것이다. 다음 핵 협박의 수순은 벨라루시에 전술핵을 전진 배치하는 조치가 될 가능성이 있다.”

김정은, 핵 보유 필요성 재인식

-우크라이나는 1991년 세계 3대 핵강국이었고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믿었다가 결국 침략을 당했다. 김정은이 이번 사태를 보면서 ‘핵 포기를 절대 해선 안 된다’는 결심을 더욱 굳힐 것 같은데.

“김정은은 자신과 체제 생존을 위해 핵을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고 재인식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체결했지만 결국 침략당했다. 상대국이 군사 모험주의를 추구하는 성향이 강할수록, 외교적 조정력은 쉽게 한계를 드러내기 마련이며 원치 않는 전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한반도에서 남북 화해협력 관계조차 제도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말뿐인 종전선언을 추진하는 것은 우리 안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이번 사태가 어떻게 마무리될 것으로 전망하는가.

“푸틴의 과도한 전쟁 목적, 이에 대해 즉각적인 휴전과 러시아 군대의 철수를 통해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독립을 지키려는 젤렌스키의 응전 목적은 어떤 타협점을 찾기 힘들다고 본다.

푸틴이 서방과 국제사회의 외교·경제제제와 압박을 그럭저럭 버티면서 전쟁 의지를 굽히지 않는 가운데, 우크라이나의 총력 항전 기세와 서방 국가들의 지원이 지속된다면 이번 사태는 쉽게 종식되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 진행 중인 주요 도시 중심의 전투가 우크라이나 전체 영토로 확산되면서 장기화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류제승

1957년 인천에서 태어나 1975년 육군사관학교 35기로 입교한 뒤 독일 육사 유학을 했다. 야전 군인으로는 처음으로 독일에서 박사 학위(루르대 역사학박사)를 땄다. 한미연합사 기획참모부 차장과 11사단장, 국방부 정책기획관, 8군단장, 육군 교육사령관 등을 역임했다. 육군 중장으로 전역한 뒤 국방부 정책실장 재직 시절 주한미군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등의 실무 책임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