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위기?… 영화에 갇히지 마라, K콘텐츠 지평은 무한대”
[2022 컬처 체인저] [3] ‘1000만 영화’ 세 편 만든 제작자 원동연
“그게 돼? 가능해? 그런 모든 의심을 이겨내고, 누군가 한번은 보여줘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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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배우도 아닌 내가 이래도 되겠냐’며 쑥스러워하더니, 카메라 앞에 서자 그의 표정이 사뭇 결연해졌다. 영화 ‘신과함께’의 저승사자 강림(하정우)의 옷을 입고 해원맥(주지훈)의 칼을 든 뒤였다. ‘광해, 왕이 된 남자’ 1232만명, ‘신과 함께’ 1편 1441만명, 2편 1227만명. 원동연(58)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는 합계 관객 4000만에 육박하는 천만 영화 3편을 만들어낸 한국의 유일무이한 영화 제작자다. 모두가 코로나에 발 묶이고 OTT에 포위된 ‘영화의 위기’를 말하는데, 원 대표는 “지금이 필름 메이커들에게 어마어마한 기회”라고 했다. “오징어게임이 영화도 못 해본 세계 1위를 하며 글로벌 자본이 한국 시장으로 흘러들고 있습니다. 콘텐츠와 비즈니스를 결합시킬 전략가들, 산업적 성공 가능성을 확신하는 인재들도 모여듭니다. 드라마, 가상인간, 메타버스, NFT, 블록체인…, K콘텐츠가 뻗어갈 지평은 무한대로 넓습니다.”
◇'파워 IP’ 확장에 길이 있다
“우리나라는 웹툰과 웹소설 시장이 견고하고 영향력도 세계적인 데다, 조 단위 매출의 게임 회사를 다수 갖고 있어요. ‘파워 IP(지식재산권)’의 산업적 확장에 최적화된 환경이죠.” 원 대표의 영화사는 코로나 사태 속에도 작년 3월 게임사 스마일게이트와 합작투자사를 설립했다. 스마일게이트는 단일 게임 매출 1조원을 돌파한 ‘크로스파이어’로 글로벌 사용자 10억명 기록을 보유한 한국 대표 게임 기업. 두 회사는 합작투자사를 통해 ‘신과함께’ 시즌제 드라마의 기획 단계부터 함께 일하며 파워 IP 확장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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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대표는 “스마일게이트는 게임과 메타버스 등 콘텐츠의 미래를 바꿔줄 기술을 아주 오래전부터, 밥 먹고 그것만 연구해온 파트너”라고 했다. “드라마 내용을 어떻게 게임과 연계할지, 게임에서 저승을 관통하는 스테이지는 어떻게 할 것인지 함께 고민하죠. 드라마의 귀여운 신규 캐릭터인 돼지 ‘꽃순이’ 등으로 어떤 굿즈를 만들 수 있을까, 어떤 ‘가상인간(virtual human)’이 가능하고 메타버스로는 어떻게 넓혀갈 수 있을까…. 협업의 영역도 무궁무진합니다.” 원 대표는 “쉬운 말로, 오징어게임이 기획 단계에서 굿즈 판매를 염두에 뒀다면 드라마 흥행 뒤 파생 상품으로 중국 업체들만 돈 버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웃었다. “비공개 장면이 많은 영화·드라마 특성을 활용하면 팬들을 위한 ‘소장형 NFT’로 시장을 키우는 데도 ‘찰떡 궁합’이에요. 게다가 요즘은 집집마다 70인치 넘는 대형 디지털 TV가 들어가잖아요. 극장 흥행에만 목을 매던 관행을 벗어나, 복제 불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배급 경로를 개척할 수도 있습니다.”
◇바이오·2차전지보다 콘텐츠에 투자하도록
사실 영화의 위기는 원 대표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다. 그는 “나 역시 소지섭·김윤진 배우 주연으로 이미 완성한 영화 ‘자백’을 개봉 못 하고 있다”고 했다. 태풍이 불 땐 바짝 엎드려 지나가길 기다리는 게 사업가의 불문율. 하지만 원 대표는 오히려 새로운 도전으로 이 위기를 돌파하려 한다. 그는 천만영화 ‘신과 함께’ 1·2편을 동시에 찍었을 때를 떠올렸다. “제작비가 400억이 넘었어요. 1편 망하면 2편도 같이 망하는 거라고 주변에서 뜯어말렸죠. 이러다 잘못되면 너 하나가 아니라 영화산업 전체가 흔들린다고, 영화계 동료들에게 누를 끼치는 거라고.” 하지만 원 대표는 여봐란듯 두 편을 연속 흥행시켰다. 그 뒤 ‘외계+인’ 1·2편(CJ ENM), ‘한산’·'노량’(롯데컬처웍스) 등 대작 영화의 두 편 동시 제작이 이어졌다. “먼저 시장의 혜택을 받은 선배로서 후배들과 똑같이 ‘관객 땅따먹기’를 하는 게 아니라, 전략적 사고로 콘텐츠 비즈니스의 외연을 넓혀가고 싶어요.”
IP 확장은 의심 많고 보수적인 투자자들을 향해 K콘텐츠의 매력을 뿜어낼 전략이기도 하다. “콘텐츠는 ‘모 아니면 도’라는 선입견을 깨고 싶어요. 다양한 IP 확장으로 위험을 방지(hedging)해서 콘텐츠도 꾸준한 ‘우상향’ 투자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거죠. 바이오나 2차전지보다 콘텐츠가 더 매력적 투자처가 되도록.”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최고 대우를”
그는 평소 “영화 제작자의 애국은 돈 많이 벌어서 세금 많이 내는 것” “원동연과 일하는 사람들이 최고 대우를 받게 해주는 게 내 목표이자 자부심”이라고 말한다. 시나리오 표준계약서를 준비하며 작가 인센티브 의무화를 주장하는 등 가장 제작 인력 친화적인 제작자로 첫손 꼽힌다. 영화판에 보기 드물게 스스로 ‘보수’임을 밝힌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으면 “블랙리스트” 시절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를 지지하던 어떤 영화인도 ‘블랙리스트’ 상황이 온다면 모든 것을 걸고 싸울 것” 같은 말로 소신을 밝히면 한바탕 논쟁이 벌어진다. 그는 “‘큰 정부’의 개입보다 민간과 시장의 자율을 신봉하고, 서로 달라도 각자의 소신은 그대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뿐”이라고 했다. “우리 회사에 직원이 11명인데 나 빼고 10명이 다 나와 정치 지향이 달라요. 내가 할 수 있는 보복은 점심 메뉴를 내 맘대로 고르는 것뿐이죠, 하하. 농담인 거 아시죠?”
흥행 대작을 잇따라 만든 그의 콘텐츠를 보는 기준은 뭘까. 그는 “단 한 가지를 꼽으라면 ‘위로’라고 했다. “제 영화의 주인공은 늘 ‘언더 도그’(상대적 약자)예요. 콘텐츠 만드는 사람이 ‘세상은, 삶은, 정의는 이런 거야’라고 가르치려 들면 안 돼죠. 당신은 그만하면 괜찮은 사람이라고, 상념과 번민은 잊고 2시간을 즐기라고 말하고 싶어요. 이게 내 전략이고 생각이고 철학이고 콘텐츠를 대하는 자세예요.”
원 대표는 “우리 콘텐츠판에는 미래를 이끌 ‘밀리언 달러 베이비’들이 차고 넘친다”고도 했다. “영화인들은 ‘그동안 영화를 만든다’는 것에 갇혀 있었어요. 호구지책이자 자긍심이었죠. 하지만 영화의 산업적 성공 가능성을 확신하고 돈 벌러 오는 젊은 세대가 늘고 있습니다. 한국 영화에 정말 좋은 일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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