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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랜드' 도입부인 줄…영화와 닮은 일상을 포착하다

황태자의 사색 2022. 3. 12.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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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랜드' 도입부인 줄…영화와 닮은 일상을 포착하다

알렉스 프레거 개인전 `BIG WEST`

美 LA출신 여성 작가
독학으로 사진 배워
군중 속 고독 등 표현

"모두가 영화 같은 인생
당신도 무대 위 주인공"

잠실 롯데뮤지엄서
6월 6일까지 개최

  • 이한나 기자
  • 입력 : 2022.03.11 16:52:30   수정 : 2022.03.11 19:2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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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 발레리나의 눈빛이 불안하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완벽하게 안무를 소화하고 있지만, 관중들의 차가운 눈빛에 춤추는 팔마저 떨릴 정도다. 관중 속에서 그녀를 째려보던 중년 여성이 파트너 대신 함께 공포스러운 2인무를 추게 되는 환상 장면으로 전환된다. 발레리나는 마치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공포 영화 속 주인공 같다.

그런데 클로즈업된 그녀의 얼굴을 볼수록 불안한 정서가 나에게로 옮겨온 듯 내 마음마저 불편하게 휘젓는다.

미국 LA 출신 여성 작가 알렉스 프레거(사진)의 2016년 영상 'La Grande Sortie(거대한 출구)'이다. 무대 공포증과 싸우는 발레리나 이야기는 파리 오페라 발레단 의뢰로 바스티유 극장에서 촬영된 작품이다. 춤을 매개로 발레리나와 관객의 시선이 얽히고 둘의 역할에 대한 경계가 흐려지는 연출 방식을 통해서 작가는 아티스트와 관람객 사이의 관계에 대해 질문한다. 관객을 무대로 초대해 우리가 일상에서 연기하는 배우 같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듯싶다. 셰익스피어가 희곡 'As you like it(뜻대로 하세요)'에서 '세상은 무대, 모든 사람은 태어나서 배우로서 삶을 연기한다(All the world's a stage And all the men and women merely players)'고 읊었던 것처럼.


2016년작 `Etoiles`,
프레거의 국내 최대 규모 개인전 'BIG WEST'가 서울 잠실 롯데뮤지엄에서 오는 6월 6일까지 개최된다. 초기작부터 신작까지 사진과 영화 총 100여 점이 펼쳐졌다.

작가는 스물한 살 때인 2001년 LA 게티뮤지엄에서 컬러 사진의 대가 윌리엄 이글스턴(83)에 깊은 감동을 받아 카메라를 구입하고 독학으로 예술가의 삶을 시작했다.

2010년 뉴욕현대미술관(MoMA) 그룹전 'New Photography'에 참여하고, 뉴욕타임스 매거진 협업 13부작 영화 'Touch of Evil'로 2012년 에미상을 수상하면서 주목받았다. 사진을 시작한 지 12년 만인 2013년 게티뮤지엄 그룹전에 참여할 정도로 폭풍 성장했다. 작가는 영화산업 중심지이자 놀이공원이 가득한 LA에서 자란 덕분에 영화적 감수성을 발산하는 사진들을 자연스럽게 표현했다. 특히 할리우드 영화배우였던 할머니 친구로부터 선물받은 1950~1960년대 촬영용 의상과 가발이 든 상자에서 영감을 받아 사진 작업에 활용했다고 한다. 미국이 가장 풍요롭고 영화산업도 흥했던 그 시절의 정서는 최근 명품 패션계 등에서 유행하는 레트로풍 이미지와 닮아 있다. 그의 '더 빅 밸리' 연작 사진이 서울 용산구 한남동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 외벽에 깔린 점이 인기를 보여준다.

대표작인 2008년 'Susie and Friends(수지와 친구들)'처럼 캘리포니아 풀 파티 장면은 세심하게 연출된 일상 장면 속에서 주인공(수지)과 주변인들의 엇갈린 시선을 통해 현실과 허구의 엇갈림을 드러낸다. 이는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진행한 'Face in the Crowd(군중 속 얼굴)' 연작으로 이어진다. 이 작품들은 터미널이나 영화관 등 공공 장소에서 인파 사이에 다소 이질적인 인물이 끼여 있는 모습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점으로 찍어 '군중 속 고독'을 도드라지게 한다.


2019년작 `Speed Limit`. [사진 제공 = 롯데뮤지엄]
2012년 'Compulsion(강요)' 연작은 연출된 화재나 교통사고 등 재난 상황 옆에 그것을 관찰하는 눈 사진을 함께 배치해 24시간 생방송 뉴스가 방영되는 현대사회에서 사건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사람의 심리를 자극한다. 2019년작 'Play the Wind' 연작에선 LA 곳곳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다루는데, 특히 'Speed Limit(제한속도)'는 러시아워에 갇힌 고속도로 장면을 이탈리아 영화감독 페데리코 펠리니의 '8과 1/2'에서 차용해 표현했다. 젊은 층에게는 영화 '라라랜드' 도입부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 대규모 군중 장면 연출이 힘들어져서인지 작가는 'Part1: The Mountain' 연작을 통해 산을 오르거나 고행을 이겨내고 쓰러지는 장면을 서부극 등 미국적 이미지로 내면의 혼란을 담았다. 기존에 팽팽한 긴장감이 여러 인물들 사이에서 느껴졌다면 이 연작에서는 무언가 폭발하는 느낌이 전달된다.


사진 연작과 영상을 보고 나서 마지막 전시실에 도달하면 그간 쌓아온 감정의 소용돌이가 해소되는 느낌이다. 관람객은 사방에서 열렬한 환호를 받아 무대 위 주인공이 된 듯 느낀다. 고달픈 우리 삶을 계속 연기할 힘을 얻어갈 듯싶다.

전시장 관람 내내 반복적으로 둥둥 울리는 배경 음악이 관람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해준다. 이 음악은 뮤지션 mq와 재즈 피아니스트 전용준이 이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했다. 프레거의 작품에서 수많은 군중의 내러티브가 교차하는 순간과 기묘하고 다양한 사건의 연속에서 오는 긴장감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됐다고 한다. 반복되는 셔터음이 미묘한 불안감을 표현하고 기타 소리는 LA 특유의 낭만과 시대를 초월한 향수를 담고 있다.

[이한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