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 무야가 킁킁거린 흙에서 트러플이 나왔다
[아무튼, 주말] 소리아 ‘트러플 헌팅’ 현장을 가다
“돈데(Dónde) 무야! 돈데!”
솜사탕 쭉 찢어 펼쳐 놓은 듯한 구름 아래, 떡갈나무가 조례 시간 학생들처럼 열과 행을 맞춰 섰다. 그 사이를 여섯 살 된 돼지 무야가 농장 주인 펠리 산체스(feli sanchez)씨의 응원을 받으며 달려 나갔다. 돈데는 스페인어로 ‘어디’인지를 묻는 말.

무야가 한 나무 아래 고동색 흙에 코를 파묻었다. 산체스씨가 그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함께 조심스레 흙을 파내려갔다. 보물 찾기 하듯 펼친 흙 안에선 딱치지기 구슬보다 조금 더 큰 검은색 동그라미가 나왔다. 푸아그라·캐비어와 함께 ‘세계 3대 진미’이자, 그중에서도 으뜸으로 평가받는다는 트러플은 이렇게 생산한다. 트러플이 동그란 모양인 것도, 검은색인 것도, 자세히 보면 정맥처럼 흰색 선이 흐른다는 것도 이날 처음 알았다. 산체스씨는 트러플을 손바닥에 올려놓는 것만으로도 그 무게와 가치를 정확히 가늠했다. 약 40g으로, 40유로(약 5만5000원) 상당이라고 했다.
◇세계 최대 규모 트러플 농장
스페인은 프랑스·이탈리아와 함께 트러플(송로 버섯)의 주요 생산지다. 트러플은 배수가 잘되는 석회질 토양에 건조하고 더운 기후, 해발 700~1200m라는 까다로운 조건에서 잘 자란다. 이 조건을 두루 갖춘 곳이 카스티야 이 레온 지방의 ‘소리아’다. 세계 최대 규모의 트러플 농장도 이곳에 있다.

산체스씨가 트러플을 캐낸 자리에서 흙을 한 움큼 퍼 올려 냄새를 맡아보라고 했다. 여전히 진한 트러플 냄새가 났다. 트러플이 비싼 건 인공 재배가 불가능하며, 나무의 뿌리에 붙어 흙 속에서 자라는 특이한 버섯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농장에서 활용하는 방법이 잘 숙련된 암퇘지다. 트러플 향이 수컷의 페로몬 향과 같아 발정기의 암퇘지가 이를 잘 찾는다.
그러나 지금 대부분 농장은 암퇘지보다는 개를 이용한다. 돼지는 트러플을 발견하자마자 먹어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 이날 산체스씨도 무야가 트러플을 먹지 않도록 얼른 오렌지를 먹였다.
돼지에 비해 개는 주인에게 충성스럽고 훈련도 잘된다. 생후 2개월부터 탁자 아래 트러플을 숨겨 놓고 찾는 놀이 등을 통해 트러플 헌팅 전문 개로 자란다. 트러플 생산은 11월부터 3월까지 이뤄지지만, 크리스마스 시즌의 트러플을 최상품으로 친다.
◇트러플 리조토에 와인 한 잔
소리아에선 특산품인 트러플을 알리기 위한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올해로 3회째를 맞은 ‘트러플 요리 대회’가 대표적이다. 전세계에서 트러플 요리로 유명한 셰프들이 소리아 지역 음식점과 한 팀을 이뤄 트러플 요리로 자웅을 겨룬다. 지난 3월 5일 열린 대회에선 태국에서 온 안토니 버드 셰프가 송아지 고기를 곁들인 트러플 파스타를 선보여 우승했다. 이 대회의 장점은 대회에 참가한 셰프들이 레시피를 지역 음식점에 전수해, 손님들이 즐길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다. 버드 셰프의 요리는 소리아 지역 식당 ‘라 치스테라(la chistera)’에서 맛볼 수 있다.

라 치스테라 외에도 소리아 지역엔 트러플을 활용한 음식점이 많다. 발루어트(baluart)는 미슐랭 원스타 레스토랑으로, 이 지역 전통 식재료와 트러플을 활용한 요리를 선보인다. 전채와 메인, 디저트로 구성된 코스요리가 67유로(8만8000원)로 트러플 요리가 비싼 한국에 비해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 단품 요리의 경우 15유로(2만원)부터 시작한다. 발루어트의 ‘트러플 리조토’는 이번 트러플 요리 대회에서 3등을 차지한 음식으로, 이 식당을 방문한다면 꼭 먹어볼 것을 권한다.
어느 식당에 들어가도 리베라 델 두에로에서 생산된 고품질의 와인 리스트를 합리적인 가격에 만나볼 수 있다. 라 셀레스티나(LA CELESTINA) 2018을 10유로대에, DOMINIO DE ATAUTA(도미니오 데 아타우타) 2018을 30유로대에 맛볼 수 있다. 트러플이 왜 세계 3대 진미인지, 리베라 델 두에로는 왜 스페인 최고의 와인 산지인지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기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무튼, 주말] “다시 하세요” “다시 하세요”… 이 주임은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 (0) | 2022.03.27 |
---|---|
[아무튼, 주말] 밥만 짓는 삶 싫었던 17세 소녀… 박정희 대통령 휘장 수놓는 명장으로 (0) | 2022.03.27 |
트러플과 와인이 흐르는 도시, 악마도 이 풍경 지나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0) | 2022.03.27 |
[아무튼, 주말] 뱀파이어의 식성은, 선지와 와인 사이? (0) | 2022.03.27 |
[아무튼, 주말] 관저도 미술관처럼? 尹 당선인 부부의 아트피스 인테리어 (0) | 2022.03.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