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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시각장애인의 눈이 될 ‘착한 태블릿’ 미국 교육부에도 납품해요”

황태자의 사색 2022. 3. 31.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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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시각장애인의 눈이 될 ‘착한 태블릿’ 미국 교육부에도 납품해요”

[헬로, 프런티어] ‘닷 패드’ 개발 소꿉친구, 김주윤·성기광

입력 2022.03.31 03:00
 
 
 
 
 

“전 세계에서 보조기기가 필요한 시각장애인이 1억명 정도 됩니다. 그들에게 모두 ‘닷 패드’ 한 대씩 보급하는 게 저희 목표예요.”

25일 서울 금천구에 있는 ‘닷’ 본사에서 만난 김주윤(32)·성기광(32) 공동대표는 “닷의 목표가 뭐냐”는 물음에 “시각 장애인에게 ‘매킨토시’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며 이렇게 말했다. 맥북으로 잘 알려진 애플의 PC 브랜드 매킨토시처럼 시각 장애인에게 필수품 같은 보조기기를 공급하고 싶다는 뜻이다.

25일 서울 금천구의 스타트업 '닷' 본사에서 김주윤(왼쪽)·성기광 공동대표가 아이패드와 자체 개발한 시각장애인용 태블릿 PC '닷 패드'를 들고 있다. 아이패드 메모장에 쓰인 '사랑해요'라는 문구가 닷 패드에 양각으로 표현돼 있다. 김·성 대표는 "전 세계 시각장애인에게 닷 패드를 보급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이기우 기자

닷은 2017년 세계 최초로 점자 스마트워치인 ‘닷 워치’를 출시해 화제가 된 회사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때는 점자로 각종 정보를 제공하는 ‘배리어프리(Barrier-Free)’ 키오스크를 선보였다. 이번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태블릿 PC ‘닷 패드’를 출시했다. 하반기부터 시범 판매할 예정인데 이미 미국 교육부와 300억원가량 납품 계약도 맺었다.

스타트업 '닷'이 개발한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을 음성으로 안내해주는 것은 물론 대략적인 형상을 손으로 만져서 느껴볼 수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닷 패드는 각종 그림이나 그래프를 화면을 만져 확인할 수 있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버튼을 눌러 조작하면 화면을 빼곡하게 채운 돌기 중 일부가 튀어나와 꽃, 토끼 등 다양한 그림을 표현한다. 애플의 아이폰·아이패드와 연동된다. 애플 기기에는 시각장애인이 앱 아이콘을 터치하면 이름과 기능을 음성으로 설명해주는 ‘보이스 오버(voice over)’ 기능이 있다. 이 때문에 많은 시각장애인이 애플 스마트폰을 사용하는데 사진이나 그래프까지는 묘사해줄 수 없다. 닷 패드는 블루투스로 아이폰·아이패드와 연결하면 아이콘과 그림·그래픽까지 표현해 준다. 주식 앱을 켜면 주식 그래프 추이도 손으로 만져 파악할 수 있다. 닷이 2020년부터 애플과 공동 연구를 거쳐 개발한 기능이다.

스타트업 '닷'이 개발한 시각장애인용 태블릿PC '닷 패드'. 점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2차함수 그래프를 손으로 만져 이해할 수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김주윤·성기광 두 창업자는 1990년생 동갑내기 소꿉친구다. 어려서부터 창업을 꿈꾸던 김 대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 세 차례 창업했다. 세 번째 창업 때 미국 유학 중이던 성 대표와 함께 차량 공유 스타트업 우버의 트럭 버전인 웨건(Wagon)을 시작했다. 김 대표는 “딱히 트럭에 대해 열정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 창업만 하면 어떻게든 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일종의 ‘창업 중독’이 아니었나 싶다”고 했다.

 

창업에 대한 회의감에 빠진 두 사람이 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교회를 갔다가 시각 장애인을 위한 점자 성경을 본 게 닷을 창업하게 된 계기가 됐다. 비장애인들은 주머니에 넣어 다니기도 하는 성경이지만, 시각장애인 성경은 어지간한 성인 남성의 몸집만큼 부피가 컸기 때문이다. ‘이게 말이 되나’라는 의문이 닷의 출발이 됐다. 한국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2014년 6월 닷을 창업했고, 시각장애인 100여 명을 인터뷰하며 그들의 고충을 들었다. 또 기존에 시각장애인들이 이용하던 점자 입·출력 기기의 단점을 보완하는 방법을 궁리했다. 기존 기기에 사용되는 점자 돌기는 주로 도자기로 만들어져 부피가 크고 가격도 비쌌다. 공학을 전공한 성 대표는 닷 연구진과 숱한 시행착오를 거쳐 돌기의 재료를 자석으로 바꾸고 크기를 소형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닷 패드는 한 화면에 점자 돌기 2400개가 들어간다. 300여 글자를 한 번에 표현할 수 있다.

한국의 시각장애인은 2020년 말 기준으로 약 25만명이다. 유럽에서만 닷 패드 같은 시각장애인 보조기기 수요가 약 3000만명으로 추산된다. 김 대표는 “미국에선 장애인이 공공장소에서 충분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할 경우 소송을 제기하기도 한다”면서 “장애인들의 고충을 없앤다는 취지와 함께 앞으로 시장 성장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