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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장강 하류 상주(常州)에 사는 노소하는 겉모습만 보기에는 물고기를 잡아 파는 생선장수이자 평범한 뱃사공이다. 강을 오가는 사람을 배에 실어 나르면서 홀로 살아가는 그는 그저 젊은 사내일 뿐이다. 아무도 그가 의뢰를 받아 사람을 죽이는 살수(殺手)라는 사실을 모른다. 노소하의 배 위에서 그에게 목숨을 뺏기기 전까지는.
노소하는 '장강의 귀신'이라 불리며 장강 하류에서 살수로 활동한 이종보의 유일한 제자다. 100년에 한 번 태어날까 말까 한 무재로 불린 이종보는 장강의 흐름을 보고 '구파검법'이라는 일자전승(一者傳承)의 검법을 창시한다. 이종보가 생을 마감한 뒤 누구도 본 적 없고 오직 노소하만이 구사할 수 있다. 물의 흐름에서 비롯된 검법은 물에서 사는 노소하와 상승효과를 내며 더 큰 힘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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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부터 매주 월요일 네이버웹툰에서 연재되며 어느덧 두 번째 시즌의 막바지를 향하고 있는 웹툰 '앵무살수'는 '열혈강호' '용비불패' '군림천하' 등 1990년대를 주름잡았던 무협 만화를 떠오르게 하며 30대와 40대 남성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수준 높은 작화와 깊은 서사, 실타래로 엮인 듯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정통 무협의 진수를 보여주면서 100회 넘는 회차를 이어오고 있다.
'앵무살수'는 노소하가 구파검법의 후계자임을 숨긴 채 진시황이 남긴 비서 '선근경'을 찾아 나서는 여정을 그린 만화다. 만화는 '흑매단'이 소림사에서 선근경을 훔친 항주 장씨 세가 장백수의 집을 급습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끝까지 선근경의 위치를 발설하지 않으려는 장백수는 흑매단의 단주 황사행의 무자비한 고문 끝에 딸 장미려에게 선근경이 있음을 밝히고 죽는다.
쫓기는 신세가 된 장미려와 일행은 장강을 건너던 중 만나게 된 노소하와 인연을 맺게 된다. 그들은 비가 세차게 내리는 탓에 강을 건너지 못하고 노소하의 거처에서 신세를 지게 된다. 장미려를 지키는 노(老)검객 곽부용은 노소하가 이종보의 제자라는 사실을 알아채고 장미려의 호위를 부탁하지만, 이미 장미려의 몸에 선근경이 새겨진 사실을 알게 된 노소하는 그 부탁을 거절한다.
하지만 인간의 정은 만국공통일까. 일행이 떠나고 남은 자리에 장미려가 만들어놓은 전병은 노소하의 마음을 바꾸는 장치로 작용한다. 일행의 뒤를 쫓아 장강까지 온 흑매단 일당과의 싸움에서 노소하는 숨겨놓았던 구파검법을 꺼낸다.
만화를 그린 김성진 작가는 "인간의 욕망, 특히 영원히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무협과 불가분의 관계인 인간의 욕망을 조금 더 차별화된 장치로 표현하기 위해 진시황의 선근경을 떠올리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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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작가는 "무협은 주로 남자들의 이야기이고 그들의 힘겨루기가 중요하다"며 "인물 간의 갈등 구조는 조심하면서 신중하게 만들고 있지만 스스로 가장 한계를 실감하고 있는 부분인 만큼 제 자신과도 타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 완성된 힘과 능력을 가진 주인공이 악당을 무찌른다는 점은 최근 인기 웹툰의 시류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먼치킨'으로 불리는 이 같은 캐릭터의 특성은 이미 구파검법으로 무적의 힘을 가진 노소하를 통해 드러난다. 회차마다 노소하가 다양한 등장인물과 겨루며 최강의 무공으로 거듭나는 과정은 먼치킨과 성장형 캐릭터의 중간 정도에서 노소하의 캐릭터적 완성도를 높인다. 김 작가는 "노소하의 과거사를 궁금해하는 분들도 많고, 과거 회귀를 지루해하는 분들도 있다 보니 그 균형을 맞추기가 쉽지는 않다"며 "3부에서 풀어야 할 숙제와 같다"고 말했다.
이 만화는 지난해 12월 방탄소년단(BTS) 멤버 RM이 언급하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RM은 당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팬들이 최근 즐겨 보는 콘텐츠를 알려달라는 요청에 '앵무살수'를 보고 있다고 언급했다. 당시 김 작가는 유료 미리보기 회차에서 RM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김 작가는 "신기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했다"며 "만화를 봐주시는 모든 독자분들에게 힘을 얻고 있다"고 했다.
김 작가는 2017년 지바 데쓰야 신인만화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일본에서 먼저 데뷔했다. 당시 공모작 '이사(引越し)'는 살인죄로 사형을 선고받은 남자가 형을 집행당하는 순간 자신의 과거 인생이 기록된 서재로 정신이 옮겨지며 참회하는 내용을 담은 만화로 호평받았다. 일본 만화계 거장 지바 데쓰야는 "가난하고 운도 없고 요령도 없는 밑바닥 인생의 청년이 갑자기 인생의 끝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의 충격을 잘 표현한 훌륭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김 작가는 이전까지 입시미술학원 강사로 일하면서 꾸준히 그림을 그렸다. 많은 일본 출판사에 응모한 끝에 지바 데쓰야 공모전 대상으로 만화가의 꿈을 펼칠 수 있게 된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첫 장편 연재작으로 '앵무살수'를 그리기 시작했다.
'앵무살수'는 단행본으로도 출간돼 종이만화로 무협을 즐겨온 만화 팬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지난해 7월 1권이 출간된 이후 지금까지 총 6권까지 나왔다. 무협 장르가 호황이던 1990년대와 비교하면 많이 주춤했지만, '앵무살수'를 통해 다시 무협 만화가 다양해질지 관심이 쏠린다.
김 작가는 "'앵무살수'는 3부로 완결될 예정인데, 결말은 해피엔딩과 새드엔딩의 중간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며 "만화 속 이야기를 세세하게 기억하면서 다른 독자들에게 내용의 이해를 도울 수 있게 해주시는 독자분들이 특히 고맙다"고 말했다.
[박대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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