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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계에 돌아온 맥시멀리즘(maximalism)이 단색화가 장악한 미술계에도 불어오나 싶다. 거대한 그림 속에 도상이 가득하니 일견 어지러운 것 같다가도, 되돌아보면 새로운 것이 또 튀어나오는 것 같다.
획은 얇고 가늘지만 그 속에 강렬한 에너지가 이글거린다. 수작업으로 쌓여가는 색깔의 층만큼 깊이감이 더해진다. 작품은 일견 기계 내부 설비 장치나 건축 설계도를 연상시킨다. 작가가 주로 채택하는 기호와 도상이 뉴욕과 같은 대도시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세련된 도회미가 뿜어져 나온다.
독특한 개성의 정밀 추상 작가 이상남이 2017년 회고전 성격의 개인전을 연 이후 5년 만에 PKM갤러리에서 4월 16일까지 개인전을 펼친다. 박경미 PKM갤러리 대표는 "작가가 수행하듯 켜켜이 쌓아 그린 그림들 중에서 골라 기획하는 맛이 제대로 있었다"며 "이번에는 대작 중심의 최신작을 위주로 정면 승부를 걸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5년 작품 'The Fortress of Sense(L127)'는 가로 3.8m 대작으로, 세련된 분홍빛 배경에 세밀한 연두와 하얀색이 어우러져 자유로운 리듬감을 만들어낸다. 2013년 작품 'Light+Right M096'이나 M 101이 좀 더 완결된 형태로 정지된 이미지를 드러낸 것과 대조된다.
'청개구리' 같은 성향의 작가는 대부분 나이가 들면서 더 단순화된 그림으로 가는 것과 달리 더 많은 색깔과 도상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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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뉴욕에는 전 세계에서 몰려온 예술가가 너무 많았다. 낯선 것을 새롭게 구성해 신선하지 않으면 시선을 끌어올 수 없다.
작가는 "매혹적인 요소 단 하나만 있어도 성공한 것이라고 본다"며 "마치 초현실주의 영화 '안달루시아의 개'에서 눈동자를 베어내는 강렬한 이미지처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번개 치듯 순간 정지할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그는 "이제 보는 사람들의 시대, 작품도 관람객의 판단에 따라 완성된다"고 강조했다.
작가는 "문명화된 우리가 만들어낸 형상, 이미지가 내 작품의 시작"이라며 "직선과 원을 바탕에 두고 끊임없이 나선형으로 엮어가다 보면 그림이 완성된다"고 말한다.
작가에게 선은 죽음을, 원은 삶을 상징한다. 작가는 이처럼 상충되는 개념들이 병치됐을 때 느낌을 작품에 담았다. 작가 스스로를 '추상을 해체 분해하는, 파편화된 것을 편집 조합하는 작가'라고 정의했다.
뉴요커로서 주변의 음악, 무용, 미술 등 예술 전반을 흡수하면서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해왔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서 세상에 존재할 법한 인류 역사의 모든 도상을 확인했을 뿐 아니라 현대무용의 새 장을 연 피나 바우슈 춤을 보고, 비디오아트 창시자 백남준 선생은 물론 우연성 음악 '4분33초'를 통해 침묵 속 소음을 꺼낸 존 케이지를 만났다. 혼종의 세상에서 완성된 그림은 세계적인 감각을 얻어 폴란드 포즈난 미디에이션 비엔날레, 세비야 국제비엔날레로 뻗어갔고, 포즈난공항 대표 설치작까지 꿰찼다.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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