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나 경제 대통령 못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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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논설위원
대통령이 되고자 하거나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경제 대통령’이 돼야 한다. 결국 대통령은 국민이 등 따습고 배부르게 해주는 일을 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경제를 다 알 수도, 다 챙길 수도 없다. 긴박한 일도 많고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도 있어서다. 그래서 유능한 경제 참모를 두라는 거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경제를 잘 몰랐다. 하지만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라면서 경제 참모를 잘 써서 한국 경제가 안정적으로 도약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윤석열 당선인 역시 경제 대통령을 자임하고 있다. 자신을 경제 대통령이라고 앞세우지는 않았지만 공약의 방점은 언제나 경제에 찍혀 있었다. 특히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기업의 발목을 잡지 말아야 경제가 선순환한다는 자유 시장경제 관념을 확고히 드러냈다. 지역별로도 차별화 포인트를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부산은 해양·무역도시로 특화하면서 산업은행을 이전시켜 뒷받침하고, 광주에는 복합쇼핑몰을 유치해 상권을 활성화한다는 생각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방점도 경제에 찍혀 있다. 정치인을 마다하고 경제·통상에 밝은 한덕수 전 총리를 새 총리 후보로 낙점한 것도 경제 우선을 보여준다. 윤 당선인은 지난달 26일 인수위 워크숍에서 “가장 중시해야 하는 것은 실용주의이고 국민의 이익”이라며 “제일 중요한 것이 경제이고, 우리 산업구조를 더 첨단화·고도화시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원론적인 얘기에 불과할 수 있다. 더구나 말처럼 성과를 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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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문재인 정부의 잘된 정책은 계승하겠다″고 밝혔다. 역사는 전임 정부의 정책을 무조건 버릴 게 아니라, 잘 활용할 때 더 큰 성공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사진은 지난달 29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첫 회동한 윤석열 당선인과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중요한 건 방향인데, 윤 당선인은 워크숍에서 “현 정부에서 잘못한 것은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잘 판단하고, 계속 계승할 것들은 잘 선별해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틀 뒤 문재인 대통령과의 청와대 회동에서도 “국정은 축적의 산물이다. 잘된 정책은 계승하고 미진한 정책은 개선해 나가겠다”고 거듭 선별적 정책 계승론을 강조했다. 매우 적절한 상황 인식이다. 무조건 버리고 심지어 적폐로 몰아 전임 정부 정책을 깎아내리는 악습은 멈춰야 한다. 버려야 할 일, 계승해야 할 일을 알아보는 것이야말로 성공하는 정부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계승이 왜 중요한지는 역사가 증명한다. 박정희 정부가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해 경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것도 이승만 정부가 뿌린 씨앗이 도움됐다. 초등학교 교육 의무화를 비롯해 농지개혁과 화폐개혁이 없었다면 박정희가 이끈 한강의 기적은 없었거나 지체됐을 가능성이 크다. 포스코와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재원을 댄 한·일 청구권 협상도 이승만 시절 10여 년 협상했던 토대가 있어서 박정희 정부에서 결실을 보았다.
노태우 정부 시절 개최된 서울올림픽 역시 전두환 정부에서 유치했다. 올림픽을 통해 한국은 기업 브랜드 가치가 급상승했다. 2류였던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글로벌 기업으로 떠오른 것도 이 무렵부터다. 경계해야 할 것은 오버스윙이다. 보수와 진보 정책에 대한 차별화를 앞세운 나머지 전임 정부의 정책을 적폐로 몰면 경제 발전의 싹을 자르는 자해 행위가 된다. 문제가 많다는 이유로 문 정부에서 매각에 나섰던 이명박 정부의 해외 자원개발 사업이 그랬다.
윤 당선인은 소득주도성장 등 반(反)시장 정책은 버리되 살릴 건 살려 나가야 한다. 탈원전은 과속이 나빴지 방향은 문제가 아니었다. 특히 신재생에너지와 수소경제 로드맵,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소재·부품·장비 육성은 바통을 이어받아야 한다. 소·부·장은 김대중 정부에서 시작됐지만 정권만 바뀌면 추동력을 잃었다. 경제 대통령으로 성공하려면 보수·진보 가리지 말고 전임 정부의 쓸만한 정책을 계승할 줄 알아야 한다. 경제가 어그러지면 정권을 내주고 만다. 김영삼 정부는 외환위기, 노무현·문재인 정부는 부동산값 폭등 등에 따른 민심 이반이 정권 교체의 도화선이 됐다. 아무나 경제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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