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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만들어내는 일

황태자의 사색 2022. 4. 7.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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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만들어내는 일

중앙일보

입력 2022.04.06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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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

다독(多讀)하는 사람 중엔 다작(多作)하는 이가 꽤 있고, 그들 중 일부는 점점 ‘걸작’을 생산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들은 얼마 전까지 우리와 같은 축에 서 있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이젠 책에서만 만날 수 있고, 그 책은 소비자로서야 쉽게 구하지만 어쩐지 그는 좀 멀게 느껴진다. 내가 목격한 두 작가는 산문에서 시로 나아갔고, 음악곡을 쓰기도 하며, 누구보다 기후위기에 목소리를 내 존경심까지 품게 한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람들은 삶의 밀도를 만드는데, 때로 다독과 다작은 ‘무늬’ 있는 삶으로 가는 디딤돌이 된다.

시간을 쓰는 방식에서 흔들림 없는 사람들은 아름답다. 『시와 산책』에서 한정원 작가는 시간, 과정, 우정, 총합, ‘나 아닌 나’에 대해서 말한다. 또 벌레, 고양이, 소리를 가장 다정하게 드러낸다. 그가 삶과 불화하고 화해하면서 오래 웅크리고 수집해온 것이 작은 책에 담기자 시간의 압력은 폭발하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자신이 인터뷰하는 음악인을 10년 이상 만나며 네 말이 내 말이 되고, 네 마음이 내 마음이 되는 과정을 거쳐 책 한 권을 겨우 써낸 이지영 작가가 떠올랐는데 둘은 ‘시간’을 자기편으로 만든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곧 도잠(陶潛)이 생각났다.

세월의 무늬를 담는 한정원 작가
수십년간 농사지은 시인 도연명
시간에 쫓기며 살아가는 현대인

전원시의 개창자인 도연명의 시가 세상에서 큰 호응을 얻자 후대인은 앞다퉈 그를 따라 했다. 중국의 문인 샤리쥔은 도연명의 추종자 왕유, 맹호연, 위응물의 시를 읽곤 뛰어날지언정 그들은 그저 “시골 일을 얘기”한 것에 불과하다고 평가한다. 도연명은 시골에서 은거하며 수십 년 농사지은 경력이 있어 남달랐다. 시골에 가서 산다 해도 농사를 짓지 않는다면 땅과 바람과 벌레는 물론 홰나무와 느릅나무, 참죽나무가 잎이 두 개씩 늘어나는 이유를 알지 못할 것이다. 소설가 옌롄커는 늘 자기 작품이 고향 땅에 빚졌다고 말하는데, 중편 ‘연월일(年月日)’은 제목 자체가 고향에서 농부들의 잡담, 쌀과 땔깜에 대한 염려, 기름과 소금에 대한 집착, 허리를 못 펴는 노동 속에서 태어난 것임을 입증한다. 대가뭄에 직면해서도 햇볕을 50년쯤은 받고 농사지은 작품 속 셴 할아버지 정도는 되어야 “염병할 날씨”라는 감각을 얻고 피울음을 울 수 있다.

앞서 다독가를 좋은 부류처럼 얘기했지만, 만약 시간을 해치우듯 읽으면 좋지 못한 부류로 옮겨간다. 신간을 다루는 기자들이 가끔 서두르는 독서 탓에 서평 기자 된 걸 후회한다며 토로하는데, 그 말을 얼마 전 실감했다. 나는 한 곳의 신간 추천 위원이 되어 지난 주말 다섯 권의 책을 해치우듯 읽어 불행했고, 독서는 속도와는 견원지간임을 깨달았다. 도연명이 시를 쓰며 비도구성을 실현할 수 있었던 것은 자연 속에 살며 시간에 대한 각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도구성과 존재의 깊이 사이에는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그러니 목적과 도구성을 띠는 독서가의 시간은 빈곤하다.

그렇다면 문제의 원인은 ‘빠르게’이고, 성장이다. 그걸 다들 알지만 속도 내지 않으면 출판사도 작가도 살아남지 못하며, 독자 역시 게으르다는 취급을 받는다. 편집자들끼리 “아직 그것도 안 봤어?”라는 말을 종종 한다. 신간이나 베스트셀러 얘기가 아니다. 넷플릭스 화제의 드라마를 가리킨다. 특히 어떤 소설이나 웹툰이 그 원작이라면 편집자는 책을 빨리 읽고 만드는 와중에 관련 영상물도 검토해서 비교 평가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 흐름을 타다가 시간에 쫓기자 나는 요즘 주제와 상관없이 어떤 책이든 ‘시간’의 관점에서 읽어봤다. 그러자 책의 메시지들이 뇌를 울린다.

룰루 밀러는 역사 속에서 “식물의 학명을 파악하고 다니는 사람은 시간을 길에 흘리고 다니는 사람 취급을 받았다”고 한탄하면서 일부 과학자가 동시대인의 한숨을 견디며 기록을 쌓은 방식을 상찬한다. “그 시간에 감자 하나를 더 캐면 좋을걸”이라고 말하는 주변 사람들 말을 귓등으로 넘긴 덕택이다. 클라우디오 마그리스는 “시간과 순간순간을 살아낼 줄 모른다는 것”은 “완화된 형식의 자살”이라고 말한다. 한병철은 시간을 ‘흐름’으로 인식해 삶에서 지속성을 빼앗기는 근대인의 시간 소비 방식을 비판한다.

그러니 자신의 미래에 먼저 당도해 지금의 시간을 되새김질하며 살아보자. 우리의 시간이 인류의 감정과 기억을 연장해주는 방식으로 쓰인다면 낙엽은 몇 계절만 지나면 잎으로 태어날 것이다. 작가들은 시간을 늘리는 작업을 하는 사람이 될 테고, 보통의 독자도 내 시간을 써서 타인의 감정과 세상 사물들의 시간을 연장해주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