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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의 도시 이야기] 정치의 무대는 광장이 아니라 의사당이다

황태자의 사색 2022. 4. 8.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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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의 도시 이야기] 정치의 무대는 광장이 아니라 의사당이다

입력 2022.04.08 03:00
 
 
 
 
 

고대에는 부족 간 전쟁이 많았다. 문명이 발생하면서 전쟁은 스포츠로 대체된다. 그리스의 다양한 공동체는 전쟁 대신 올림픽 축제를 만들고 살인 대신 정해진 규칙을 가진 스포츠로 승자와 패자를 가렸다. 그런 스포츠에는 대표적인 라이벌들이 있다. 1990년대 NBA 농구에는 시카고 불스와 뉴욕 닉스가 있었고, 메이저리그 야구에서는 보스턴 레드삭스와 뉴욕 양키스가 라이벌이다. 축구에서는 레알 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가 대표적 라이벌이다. 라이벌 팀들은 승리하기 위해 엄청난 돈과 노력을 들인다. 바르셀로나에서 메시가 활약하자, 마드리드는 호날두를 영입했다. 메시는 축구 최고의 영예인 발롱도르상을 가장 많이 받았고, 호날두는 역사상 최고 득점 기록을 세웠다. 라이벌을 이기기 위해 자신을 연마한다. 라이벌이 실력 향상의 동기 부여가 되는 것이다.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도 그랬다. 선수들은 선의의 경쟁을 하고 팬들은 라이벌 대결에 열광한다. 이것은 선순환하는 라이벌 구도다.

일러스트=백형선

‘다이내믹 코리아’ 대선 결과로도 나타나

대한민국은 둘로 나뉘어 싸우고 있다. 스포츠게임으로 치면 완전 백중세다. 3월 9일 대선은 0.7%포인트 차이 박빙 승부였다. 농구로 치면 97대96, 한 점 차 승부라 할 수 있다. 개표 결과가 새벽에 나왔으니 막판 버저비터로 승부가 나는 수준의 게임이었다. 아깝게 승부가 날수록 패자는 그만큼 비통하고 결과에 승복하기도 어렵다. 승자는 패자의 그런 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열심히 응원한 사람들에게 이런 승부는 심리적 타격이 크다. 축구 한일전에서 졌을 때 기분을 상상해보라. 정치 선거도 그렇다. 과거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은 앨 고어가 공화당의 조지 부시에게 아깝게 패배하자 오랫동안 상처와 앙금을 가졌다.

이번 대선의 박빙 승부는 긍정적으로 보자면 대한민국에 에너지가 넘친다고 말할 수 있다. 북한은 김정은이 독재하고, 중국은 시진핑이 독주하고, 일본은 자민당이 압도하는 정치 구도다. 대한민국은 극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역동적인 정치 판도를 가진 나라다. 명실상부 ‘다이내믹 코리아’다. 이러한 에너지가 제대로 쓰인다면 나라가 놀랍게 발전할 것이다. 반대로 분열에 쓰인다면 망할 수 있다. 스포츠에서는 피 튀기게 경기를 하다가도 승부가 나면 악수를 하고 마무리를 짓는다. 그게 스포츠맨십이다. 그런데 승부가 경기장 밖까지 나가면 훌리건이 된다. 훌리건은 스포츠 경기장 밖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관중과 팬들을 말한다. 경기장이라는 공간 안의 정정당당한 경쟁은 스포츠지만 경기장 밖에서 심판 없이 휘두르는 힘은 훌리건이다. 스포츠에서 두 세력의 충돌이 아름다우려면 경기장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마찬가지로 정치적 충돌이 건전해지려면 힘의 대결은 제한된 공간에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이런 공간이 운동선수들에게는 농구장, 야구장, 축구장 등 경기장이다. 정치가들에게 경기장 같은 제한된 공간은 어디인가? 선거 기간에는 모든 국토이지만 선거가 끝나면 국회의사당이다. 그곳이 우리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모여서 경쟁하는 경기장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치는 SNS 공간과 길거리 광장이 주 무대인 듯하다. SNS 공간과 광장은 우리의 일상과 화합이 있어야 하는 공간이지 정치를 위한 경기장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치의 최전선은 SNS와 광장에 있다. 게다가 ‘정치는 삶 그 자체’라는 미명 아래 온 국민을 그 전쟁터로 끌어들이고 있다. 정치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최근 뉴스를 보면 양극단의 무리들이 댓글로 마녀사냥을 하는 모양새다. 누구는 친(親)중국적인 모습을 보이고, 누구는 친야당적인 발언을 했다고 무차별 공격을 한다. 경기장 밖의 훌리건 같다. 정치는 국회에서 치열하게 하고 국민은 일상에 집중하는 나라를 보고 싶다.

야외 정치 집회도 차선책이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 이후 대학 캠퍼스 데모나 광장 집회로 민주주의를 상당 부분 성취해왔다. 하나의 방법으로 성공을 하면 자칫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느끼기 쉽다. 그게 꼰대다. 이제는 제한된 정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토론과 타협의 정치로 진화해야 한다. 일상의 공간에서 국민들은 공통의 추억을 만들고 화합을 해야 한다. 전쟁을 피하기 위해 스포츠 경기를 만들었듯, 아무 데서나 싸우지 말라고 투표와 토론이라는 정치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국민 갈등 이용하는 정치 풍토 바꿔야

스포츠에서 라이벌 구도가 생기면 이득을 보는 사람은 구단주들이다. 치열한 경쟁은 상대방에 대한 증오를 기반으로 팬덤을 형성한다. 열성 팬들은 티셔츠와 머그잔과 비싼 경기장 티켓을 구매한다. 높은 TV 시청률은 구단주에게 높은 광고비를 벌어준다. 마찬가지로 국민이 치열하게 대결할수록 이득은 정치가들이 챙긴다. 좌우의 극단적 미디어들도 이득을 본다. 국민은 분열하는 만큼 정치가와 극단적 미디어는 팬덤으로 자기 밥그릇을 철밥통으로 만든다. 국민들 간에 갈등이 심할수록 그들은 뒤에서 웃는다. 열광하는 팬들에게 둘러싸여 뛰고 있는 스타플레이어가 된다. 일반인이라도 자극적, 폭력적 댓글을 쓰면 이들과 함께 뛰는 주전 선수가 될 수 있다. 이들은 관중석의 박수 대신 댓글에 달린 좋아요 클릭 수에 힘입어 쉬지 않고 거친 태클과 반칙을 한다. 지나친 정치적 국론 분열은 정치가에게는 이득이지만 국민에게는 손해다. 국민들은 이런 직업 정치인이나 극단적 미디어에 이용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