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취임사처럼 정치하면 실패할 일 없어요”
노태우부터 이명박까지 취임식 담당 정현규 前 행안부 의정담당관, 비화 담은 ‘대통령 취임史’ 펴내
“1988년 2월 25일 제13대 노태우 대통령 취임식은 의미가 깊었습니다. 1971년 이후 17년 만에 직선제 대통령이 나와 취임식을 제대로 치를 수 있었던 거죠. 그런데 당시에 전두환 대통령 측에서 ‘군대에서도 사단장 이·취임식을 같이 한다. 떠나는 사단장이 먼저 한마디 하고, 오는 사단장이 그다음 한다. 우리도 그렇게 하자’고 주장하는 바람에 엄청 당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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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전연구소 정현규(68ㆍ전 행정안전부 의정담당관) 소장이 털어놓은 대통령 취임식 비화(秘話) 중 하나다. 그는 34년간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총무처 시절부터 18년을 정부 의전 관련 업무에 종사하다 2012년 퇴직했다. 특히 13대(노태우)에서 17대(이명박)까지 대통령 취임식에 직접 참여한 경험을 토대로 최근 ‘대한민국 대통령 취임사(史)’를 펴냈다. 950쪽 분량이다. 초대(이승만)부터 19대(문재인)까지 있었던 취임식을 중심으로 각종 기록을 뒤지고 개인 체험을 보태 ‘취임식을 통해 본 한국의 현대사’를 집대성했다. 그래서 ‘현대판 의궤(儀軌)’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전 대통령을 어떻게 달랬을까. “노 당선자 측에선 ‘이게 무슨 사단장 이·취임식에 비교할 일이냐’고 반발했고, 전 대통령 측은 ‘우루과이가 그렇게 한다’면서 뜻을 꺾지 않았습니다. 이에 김윤환 비서실장 등이 중재에 나서 전 대통령의 이임사(離任辭)는 안 하는 방향으로 겨우 매듭을 짓고, 대신 퇴임 만찬을 힐튼호텔에서 성대하게 해드렸죠. 그때부터 ‘이임 환송 만찬’을 하고, 취임식은 새 대통령 위주로 거행하는 관례가 정착됐어요.”
13대 취임식 관례는 지금까지도 많은 부분이 전범(典範)으로 남아 있다. 우선 행사 장소가 중앙청(이승만·박정희), 장충체육관(박정희·최규하), 잠실실내체육관(전두환)에서 국회의사당 앞마당으로 굳어졌다. “민의(民意)의 전당이란 상징성을 감안한 거였죠.” 그사이 취임사도 달라졌다. 전에는 시작을 ‘나는’(이승만·윤보선·박정희), ‘본인은’(최규하·전두환)으로 했지만 이때부터 ‘저는’으로 바뀌었다. “권위주의 문화를 청산하고 국민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을 보여준 것”이라는 설명이다. ‘(대통령) 각하’라는 단어도 사라졌다.
당시만 해도 요즘처럼 행사 전문 용역회사 같은 게 없어 참석자들이 앉을 의자 2만5000여 개를 구하는 일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취임사 후 1000마리 넘는 비둘기가 상공을 나는 연출도 이때 도입했다. “행사 3~4일 전부터 서울시청 옥상이나 서울대공원 등에서 기르던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면서 관리하다가 큰 새장에 넣어 가져갔어요. 나중에 동물 학대 논란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 16대 때부터 없앴습니다.”
정 소장은 이 밖에도 취임식에 얽힌 온갖 일화들을 소개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김일성 ‘주석’이란 호칭을 처음 사용했고,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는 팝 황제 마이클 잭슨이 참석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잭슨이 피부가 햇빛에 민감하다 해서 행사가 치러지는 동안 양산 사용을 예외적으로 허용했다고 한다. 취임식 대통령 복장은 초대(이승만·한복)를 제외하곤 모두 양복을 입었다. 한복을 다시 검토했던 당선인(김대중·이명박)도 있었으나 국제 행사라는 점을 고려해 양복으로 최종 결정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식 전날 사전 점검 회의를 가졌습니다. 전직 대통령, 외국 정상 등 좌석을 일일이 확인하는 등 건설회사 현장 돌아보는 느낌으로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꼼꼼하게 챙기더군요.”
20대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은 오는 5월 10일. 정 소장은 “취임식은 국민 통합을 이루는 중요한 출발”이라면서 “새 대통령이 오른손을 들고 선서하는 순간, 국민은 마음속으로 ‘저 사람이 우리 대통령이구나’라는 마음으로 그 장면을 지켜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더 중요한 건 취임식 이후다. “취임사를 보면 그 정부가 나아갈 비전과 방향이 보입니다. 그 내용은 국민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죠. 취임사 쓰기 위해 연설 담당자들이 엄청난 공을 들입니다. 취임사를 할 때 초심(初心)을 임기 내내 유지한다면 퇴임 후에도 국민에게 존경과 사랑을 계속 받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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