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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소통] 윤두서의 자화상이 던진 질문 '리더 당신은 누구인가'

황태자의 사색 2022. 4. 23.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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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소통] 윤두서의 자화상이 던진 질문 '리더 당신은 누구인가'

조선의 다빈치형 인재 윤두서
솔직한 나 드러낸 자화상 남겨

나와 대면하는 일 쉽진 않지만
리더는 본인 직시할 줄 알아야

  • 입력 : 2022.04.23 00: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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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출장 업무를 마친 뒤 해남의 고산 윤선도 유적지에 들렀다. 나의 관심사는 윤선도가 아닌 그의 증손자인 공재 윤두서, 17세기 말과 18세기 초에 활동했던 문인 화가로 때마침 그곳에서 특별기획전이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윤두서는 섬세한 동물 묘사가 돋보인 청설모와 견마 그림, 일하는 사람들과 기술을 소재로 한 '나물 캐는 두 여인'이나 '짚신 삼는 노인' 그림들로 조선 후기 풍속화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조선 시대 양반 출신으로 평민들의 일상과 도구를 담은 풍경화를 그린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내가 특히 보고 싶었던 것은 국보 제240호로 지정된 그의 자화상이다. 가로 20.5㎝, 세로 38.5㎝로 책과 도록을 통해 상상했던 것보다 크기가 작았지만 부릅뜬 두 눈의 강렬함은 마치 화면을 뚫고 나올 듯한 기세였으며 전시실 전체를 압도했다. 뮌헨의 알테피나코테크에서 만났던 알브레히트 뒤러의 자화상 이후 처음 느껴보는 오라였다. 주인공의 수염까지 세밀하게 묘사한 뛰어난 입체적 솜씨, 의상도 보이지 않고 오직 중년 남자의 얼굴만 가득 메우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다.

윤두서, 그는 왜 이처럼 독특한 자화상을 그린 것일까. 그는 효종의 사부였던 윤선도를 비롯한 숱한 리더를 배출한 남도의 명문가 출신이며, 그의 외증손자는 다산 정약용이었다. 그 역시 중앙의 정계에 진출하기 위해 노력했던 선비이지만, 당쟁의 혼란과 파벌 싸움에 좌절하고 낙향했다.

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글과 그림뿐 아니라 병법, 천문, 음악, 수학, 지리, 의학 등 다양한 면에서 재능을 발휘했던 만능인이다. 중국에서 가져온 도록을 통해 관찰하고 모사하며 혼자서 그림을 익혔다고 한다. "옥이 흙에 묻혀 길가에 버려진 것 같았다"는 본인의 시처럼 이 자화상은 현실에서의 좌절감과 시대의 분노가 뒤섞인 리더의 자기 표현이다.

선비의 수염을 그리기 위해서는 동물의 털 가운데 가장 가늘고 빳빳한 쥐 수염으로 만든 서수필(鼠鬚筆)을 사용해야 하며, 붓을 세우는 기필(起筆)의 힘이 좋지 않으면 애당초 불가능하다고 한다. 여기에 한 가지 조건이 더 있다.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볼 도구 즉 거울의 존재다. 그가 자화상을 그릴 때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백동경도 함께 전시 중인데, 17세기 후반 일본에서 제작된 거울이란 설명이다. 서양미술에서 본격적인 자화상 시대를 연 것은 르네상스 시대 이후, 인간을 중시하는 인본주의라는 시대정신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거울의 발명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 시대가 스마트폰의 발명 덕분에 쉴 틈 없이 셀카를 찍고 소셜미디어에 공유해 나르시시즘의 시대가 된 것처럼, 거울은 예술가가 자기 자신을 마주 보게 만들었다. 렘브란트가 자화상으로 늙어 가는 모습을 마치 자서전처럼 그렸던 것이나 빈센트 반 고흐가 열성적으로 자기 자신을 모델로 그린 것은 좋은 거울 덕분이다.

거울은 정직할 뿐 아니라 때로는 잔인하다. 이를 정면에서 다룬 작품이 그림동화의 '백설공주' 이야기다. 공주의 의붓엄마인 왕비는 신비한 거울 앞에서 "온 나라에서 누가 가장 이쁘니?"라고 묻고는 했다. "여기서는 왕비님이 제일 예쁘시지만, 백설공주가 왕비님보다 천 배는 더 예쁘다"는 거울의 솔직한 답변이 질투와 잔인한 복수로 이어졌다는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다.

윤두서는 조선 시대에 색다른 유형의 지식인이다. 그는 그림을 사실주의적으로 그렸을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마주한 매우 드문 화가였다. 작가와 리더는 다른 이들과 소통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과도 소통해야 한다. 솔직하게 만나야 한다. 해남에서 만난 윤두서의 자화상은 마치 이렇게 묻는 듯하다.

"나는 윤두서다, 내 앞에 서 있는 리더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손관승 '리더를 위한 하멜 오디세이아'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