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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손맛도 작품이 되고…미술관 뛰쳐나온 예술까지…

황태자의 사색 2022. 4. 23.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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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손맛도 작품이 되고…미술관 뛰쳐나온 예술까지…

아트선재센터, 24일까지 덴마크 공동기획 전시

관람객 만두요리법도 전시
창고서 직접 박스 선택하면
조형물·목걸이 등 들어있어
빛에 투과해보며 관찰도

작가가 만든 맥주·아이스크림
미술관 인근 바에서 맛봐

  • 이한나 기자
  • 입력 : 2022.04.22 17:02:05   수정 : 2022.04.22 17: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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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페르 헤셀비에르의 얼음 위에 초코칩 해삼 소프트아이스크림 (2019). [사진 제공 = 아트선재센터, 이규섭]
전시장에 들어서자 정치 슬로건이 가득한 거대한 기념품숍 같은 공간이 펼쳐진다. 중앙 모니터에서는 공공 비밀조직이라고 공언하는 '뉴레드오더(NRO)' 지도자가 회원을 모집하는 방송을 계속 틀어준다. 화면 중간중간 토착민 억압의 역사가 콜라주처럼 섞여 나온다. 실제 북미 토착원주민 혈통의 애덤 칼릴과 잭 칼릴 형제, 알래스카 부족 출신 잭슨 폴리스가 팀을 이뤄 기존에 인종차별 성격 단체가 회원을 모집하듯 NRO 단원을 모으는 쇼를 보여준다. 토착민과 아닌 사람들을 가르는 정치를 풍자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곳에는 단체의 슬로건을 담은 티셔츠와 우산 등 기념품도 전시돼 있다. 또 운이 좋으면 마니아층이 형성된 놀이 겐다마(나무 기구로 다양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게임) 묘기를 즐기는 이들의 퍼포먼스를 접할 수도 있다.

안쪽으로 들어가자 요리 교실 같은 공간이 나타나고 영상을 통해 만두 요리 제조법을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관람객들이 제시하는 다양한 만두 조리법을 모아 진열해두는 공간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다양한 문화권에 있는 만두를 주제로 디자이너와 작가로 구성된 덤플링클럽(마르흐릿 크란스, 뤼카 마선, 피트 호 칭 펑)이 워크숍을 열고 다양한 레시피를 개발하고 관객이 함께 즐기도록 했다. 음식과 정체성 사이 관계와 이민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 경험을 나누려는 의도다.

시각은 물론 촉각, 후각 등 온갖 감각을 총동원해서 우리의 익숙한 일상이 현대예술로 변화하는 현장을 체험할 수 있는 전시가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펼쳐졌다. 덴마크 쿤스트할오르후스와 공동 기획한 전시 '미니멀리즘-맥시멀리즘-메커니즈즈즘' 2부(3·4막)다. 앞서 1부에서도 입장한 관객이 전시장 바닥을 밟는 순간 부서지는 장치로 색다름을 안겨준 것처럼 다양한 형식 실험으로 미술을 새롭게 받아들이게 했다면 2부는 미술관 형식을 파괴하고 체험 공간의 성격이 강해졌다.

2017년께부터 다양한 교류를 통해 시작된 기획전으로 서울에서 24일까지 전시를 마치면, 이후 덴마크로 넘어가서 더 큰 규모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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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조각의 상관관계를 연구해온 덴마크 작가 카스페르 헤셀비에르는 홍합을 담은 귀 모양 도자기 그릇, 시리얼로 만든 알파벳 등 다양한 실험을 해왔는데 이번 전시에서 초콜릿 칩 해삼을 갈아 토핑으로 얹은 아이스크림을 출품했다. 작가가 영감을 얻은 동물과 대중문화 등 이미지를 모은 콜라주 11점은 지도 같은 역할을 한다.


특히 위층에 마련된 4막 공간에 관람객이 도달하면 창고형 마트 같은 진열대가 늘어서 있고 가득 쌓인 박스를 아무것이나 서너 개 들고 카트로 옮기게 했다. 박스를 열어보면 작가들 소품이 들어 있는데 온전한 작품이라기보다는 다양한 물성을 가진 소재에 가깝다. 이 작품들을 파란빛에 투과해 보는 등 과학자처럼 관찰하는 공간이 마련돼 있고, 이 장면은 실시간으로 영사실로 전달돼 다른 관람객이 지켜보게 된다. 한국의 이슬기 작가와 토베 스트로크(덴마크), 롤라 달스(벨기에), 스튜디오싱킹핸드 등이 참여했다. 박스를 열어보면 곰팡이나 이끼를 채집한 판이나 다양한 금속 조형물, 돌멩이 모양 비누, 낙타 뼈로 만든 목걸이 등이 하나씩만 들어 있다. 전시를 다 둘러보고 나면 미술관 큐레이터가 하는 일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야콥 파브리시우스 아트허브코펜하겐 디렉터는 "한국과 유럽 등 다양한 작가의 여러 실험이 함께 모여 있어 관람객들이 미술 작업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 여러 번 생각할 수 있게끔 했다"고 밝혔다.

코로나19 방역 상황과 미술관 관련 규제 때문에 작가들이 기획한 대로 구현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 하지만 미술관 인근 바(종로구 공간)에서 작가(카스페르 헤셀비에르)가 원하는 형태로 만든 해삼 아이스크림을 맛볼 수 있고, 덴마크 작가 그룹인 슈퍼플렉스의 오픈 소스 레시피와 디자인 기반 맥주 브랜드 '프리비어'도 서대문구 펍(서대문구 브루어리304)이나 식당(종로구 더레스토랑)에서 경험할 수 있다. '덤플링클럽'의 만두는 식당(강남구 파인앤코)에서 즐길 수 있다.

[이한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