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오디세이] 보디빌딩 ‘월드챔프’ 설기관
경기도 수원에 있는 스포인 피트니스센터에서 몸을 만들고 있는 설기관 선수는 “오른쪽 어깨 수술로 한동안 쉬는 바람에 현재 몸은 전성기의 60% 정도”라고 말했다. 전민규 기자
말 그대로 ‘몸을 만든다’는 의미인 보디빌딩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즐기는 인기 스포츠인 반면, 엘리트 쪽으로 가면 철저히 비인기 종목이 된다.
그래서 소개하려는 선수가 보디빌딩 경량급 ‘월드 챔프’ 설기관(39)이다. 그는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 2, 은 1개를 수확해 스포츠 선수 최고 영예인 국민훈장 청룡장 수상 조건을 채웠다. 청룡장은 박세리(골프)·김연아(피겨)·진종오(사격) 등 당대 세계 최고 선수 또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받았다.
세계선수권 8회 우승에 빛나는 설기관 선수를 그가 운동하고 있는 경기도 수원의 스포인 피트니스클럽에서 만났다. 그는 보디빌딩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유튜브·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SNS 활동을 하고 있다.
도핑 탓 전국체전 시범종목으로 강등
지금 컨디션은 어떠신가요.
“지난 1월에 오른쪽 어깨 수술을 했고 지난달부터 조금씩 다시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몸은 수술 전의 60% 정도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재활 운동은 낮은 무게로 지루한 반복 동작을 해야 하고 근육이 타는 듯한 느낌을 견뎌야 합니다.”
‘동탄 왕팔’로 유명한데요.
“제가 팔이 엄청나게 큰 편은 아니고요. 제 체급이나 신체 대비 팔이 좀 좋다고 생각해서 동탄 왕팔이라는 애칭을 짓게 된 겁니다. 팔 둘레는 48㎝쯤 됩니다. 얼굴이 좀 작은 여성의 머리둘레 정도죠.”
보디빌딩에 입문한 계기는?
“운동을 굉장히 좋아하는 아이였는데 갈비뼈나 등뼈가 드러날 정도로 말랐어요. 마른 체형이 너무 싫어서 중 3때 친구 권유로 헬스장이라는 데를 다니게 됐죠. 해 보니 너무 재미있는 겁니다. 고 2때 처음 대회를 나갔는데 큰 희열을 느꼈어요. 이 운동은 하는 만큼 몸의 변화가 생기고 시간이 쌓일수록 결과가 바로바로 눈에 보인다는 게 가장 큰 매력입니다.”
근육을 하나하나 만들어 가는 분들을 보면 구도자나 수도승 같은 느낌이 듭니다.
“맞습니다. 먹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참아야 하고 또 철저하게 시간을 지켜서 정해진 운동을 해야 하니까요. 가장 힘든 건 시합을 앞두고 식단 조절을 하는 겁니다. 가족과 함께하는 식사 시간을 맞추지 못하거나 한 식탁에 앉아도 저만 다른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보디빌딩 하는 사람들은 자아도취적이다. 주위에 친구가 별로 없다”는 말들도 하잖아요.
“자아도취 때문에 친구가 없다기보다는 내가 원하는 몸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해진 시간에 꼭 먹어야 할 음식을 섭취해야 하거든요. 사적인 모임 참석이 힘들어집니다. 친구나 지인들도 처음에는 이해를 해 주다가 반복이 되면 아예 배제를 하죠. 어쩌면 외톨이가 되는 걸 감내할 정도까지 이 운동의 희열과 성취감이 크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설 선수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가요.
“제가 두상이 좀 작은데 어깨는 상대적으로 넓은 편이어서 무대 위에서 자연미나 밸런스 면에서 조금 우위에 있지 않나 싶어요. 사실 가장 자신 있는 부위는 하체입니다. 등 근육이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고 목도 길고 가는 편이라 약점이 있지만 보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올해 국민훈장 청룡장을 받게 되는데요.
“사실 보디빌딩은 국민 스포츠라고 할 수 있지만 보디빌더는 잘 알려져 있지 않거든요. 내가 사랑하는 운동이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면 좋겠는데, 그러려면 내가 체육 분야 최고 훈장을 받아야겠다는 목표가 있었어요. 그걸 이뤘기에 당장 운동을 그만둬도 후회가 없습니다.”
요즘 세계대회 나가 보면 트렌드가 좀 바뀐 것 같습니까?
“확실히 그렇습니다. 전에는 보디빌딩에 세부 종목이 없었는데 요즘에는 여러 가지 종목들이 생기면서 크고 우락부락한 근육만 보는 게 아니라 아름다운 체형 같은 걸 보는 쪽으로도 발전하고 있습니다. 음악과 댄스가 가미돼 부드러워지고 풍성해졌다는 느낌도 받습니다.”
아마추어 선수들의 대회 출전 문턱도 낮아졌다고 볼 수 있나요?
“그렇죠. 벽이 너무 높아서 감히 올려다보기도 힘들었는데 여러 가지 종목이 생기면서 지금은 한번 해 볼까 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어요. 일반인이 열심히 몸을 만들어 바디 프로필 찍는 게 버킷 리스트가 된 현실인데,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동호인이나 선수들 시합에 참가도 해 보는 거죠.”
좀 어두운 얘기를 해야 할 시간이다. ‘보디빌딩계 약물’ 관련이다. 엘리트 보디빌딩 선수들 사이에서는 유난히 약물 사건이 많았다. 수차례 경고를 했던 대한체육회는 결국 2019년부터 보디빌딩을 전국체전 정식종목에서 시범종목으로 강등했다. 메달을 따도 종합점수에 반영이 안 되도록 한 것이다. 아직도 도핑 시비는 여전하다.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는 선수에 대해 ‘내추럴(약물을 하지 않은 몸)이다, 아니다’ 말들이 끊이지 않는다.
어디까지를 내추럴이라고 봐야 하나요?
“세계반도핑기구(WADA)나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의 금지 목록에 포함된 약물이라면 어떤 걸 섭취하더라도 도핑이라고 봐야죠. 몰래몰래 하는데 안 걸릴 수도 있지만 적발 여부를 떠나서 건강에 치명적이기 때문에 절대 하면 안 되는 겁니다.”
왜 유독 보디빌딩에서 도핑 근절이 안 될까요.
“약물을 해본 적이 없어서 그들의 마음을 100% 이해는 못하지만 어떤 경로든 약물을 한번 사용해본 사람들은 약을 먹지 않으면 자신이 가장 좋았던 몸을 만들어내기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또 ‘저 선수는 분명히 약물을 하는 것 같은데 안 걸린다. 그럼 나만 손해 보는 것 아닌가’ 하는 피해의식도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결국 피해는 선수들에게 돌아가잖아요.
“체전에서 메달을 따도 종합점수에 반영이 안 되니 체전을 위해 실업팀을 운영하던 지자체들이 팀을 없앴죠. 당장 생계가 어렵게 된 선수들이 운동을 그만두는 경우도 많고요. 먹고살기 위해 다른 일을 하는 바람에 운동에 전념하지 못하고 경기력이 떨어지는 악순환에 빠진 선수도 많습니다.”
초보자들은 전문가 도움 받으면 좋아
2021년 세계보디빌딩선수권대회 175㎝급 우승 당시 설기관 선수의 멋진 포즈. [사진 설기관]
본인은 어떻습니까.
“저도 직장을 잃으면서 당장 아내와 쌍둥이 아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현실에 접했습니다. 사실 실업팀이 없어질 거라고 예상은 오래 전부터 했죠. 약물이 근절되지 않으니 보디빌딩이 체전 정식종목에서 언제 제외돼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거든요. 그걸 대비해 초보자들이 안전하고 즐겁게 운동할 수 있는 유튜브 영상을 조금씩 만들어 왔어요. 대면 레슨은 잘 하지 않는 편입니다. 제 운동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았거든요.”
피트니스 센터에 오시는 분들은 어떤 마음과 목표를 갖고 있을까요.
“빈약한 사람은 근육을 만들고 싶고, 비만인 사람은 체지방을 줄이고 싶은 마음이죠. 오신 목적은 조금씩 달라도 이 운동에 빠지게 되면 ‘멋있고 예쁜 몸을 갖고 싶다’는 쪽으로 목표가 같아지더라고요. 모두가 설기관이 되려고 하는 건 아니고, 각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몸을 향해 나아가는 거죠.”
여성과 시니어 분들은 어떤 점을 유념해야 할까요.
“이 분들은 상대적으로 근력 수준이 낮은 상태이기 때문에 너무 무겁게 들려고 하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무리하게 잘못된 자세로 운동을 진행하는 것도 해가 될 수 있습니다. 운동 잘 하는 분들의 자세를 따라 하는 것도 좋고, 초기에 비용이 좀 들더라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혼자서 오래 운동하기 위한 투자가 될 것 같습니다.”
닭가슴살만 섭취? 식단 중요하지만 부담 가질 필요 없어
예전에는 근육질 남자를 보면 “징그럽다”고 말하는 여성들이 꽤 있었다. 남자들 사이에서도 ‘근육이 너무 크면 생활하는 데 불편한 점이 있을 텐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다. 보디빌더는 어디까지 몸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삼는지 궁금했다.
설기관 선수는 “사람 욕심은 끝이 없잖아요. 좋은 몸을 만들었다고 해도 또 부족한 부분이 계속 보이거든요. 같은 크기의 근육이라도 잘 구분이 지어지고 세세하게 갈라진 모양을 갖는 게 최상입니다. 벌크(크기)와 데피니션(선명도)이 조화를 이룬 몸을 만드는 게 보디빌더의 목표죠”라고 설명해줬다.
또 한 가지 궁금증. 그런 몸을 만들려면 꼭 단백질 보충제에 닭가슴살만 먹어야 하는 건가. 여기에 대해서도 설 선수가 명쾌한 정의를 내려줬다.
“몸을 만드는 데는 식단을 지켜 나가는 게 운동만큼 중요합니다. 다만 처음부터 너무 식단에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일주일에 두세 번 가볍게 운동을 하면서 몸이 달라지는 걸 보고 재미를 느끼면 식단에 대해서도 생각이 달라지게 됩니다. 인스턴트나 정크 푸드 대신에 몸에 좋은 음식을 찾게 되죠. 한식에는 영양 성분이 골고루 들어 있지만 약간 부족한 게 단백질이니까 그걸 단백질 보충제로 채우는 거죠.”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UCN 대표 jerr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