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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의 외교·안보 전략, 소진의 합종책에서 배워라 [열국지로 보는 사람경영]
- 장박원
- 입력 : 2022.04.23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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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진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주한미국상공회의소 주최로 열린 국내 기업환경 세미나에 참석해 있다./사진=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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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세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21일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있는 서울 종로구 남북회담본부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중국 전국시대 종횡가의 거두 소진의 합종책에서 우리는 다층적 외교·안보 전략의 영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소진은 가난한 집안 출신입니다. 그는 출세를 위해 귀곡선생 문하에 들어가 유세술을 배웁니다. 공부를 끝내고 고향인 주나라에서 뜻을 펼치려고 했지만 사정이 여의찮아 진(秦)나라로 향합니다. 당시 진나라 군주는 혜문왕이었는데 외국에서 온 유세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선대 군주인 진효공 때 강력한 개혁을 추진했던 상앙은 외국에서 온 유세객이었습니다. 그는 혜문왕의 스승들이 법을 어기자 예외 없이 처벌했고 그 일로 혜문왕은 상앙을 싫어했습니다. 혜문왕은 권좌에 오른 뒤 상앙을 반역죄로 몰아 극형에 처했습니다. 그러니 소진이 아무리 기발한 전략을 제시한들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겠지요. 그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소진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진나라에서 높은 벼슬을 할 것이라고 큰소리치고 떠났다가 거지꼴로 돌아온 소진을 보고 가족들은 비웃었습니다. 농사는 짓지 않고 허황된 꿈을 꾸고 있는 게으름뱅이로 보았습니다. 가족들의 홀대에 소진은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습니다. "내 한 몸이 빈천해지니 아내도 나를 남편으로 생각하지 않고 형수도 나를 시동생으로 생각하지 않고 어머니도 나를 아들로 생각하지 않는구나! 이 모든 게 나의 죄다." 그는 절망 속에 책 상자를 뒤지다가 태공이 썼다고 하는 '음부편'을 발견합니다. 귀곡선생이 뜻이 풀리지 않을 때 읽어보라고 한 그 책입니다. 그는 밤낮으로 쉬지 않고 음부편을 연구했습니다. 잠이 오면 송곳으로 허벅다리를 찔러 피가 흘러내릴 정도로 공부에 매달렸습니다. 그렇게 1년 동안 정진한 결과 천하의 정세가 한눈에 들어올 만큼 큰 깨달음을 얻게 됐습니다. 그는 진나라를 통해 패업을 달성하는 게 가장 빠른 길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진왕이 자신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대안을 찾습니다. '합종책'이 나오게 된 배경입니다.
그는 합종에 참여할 첫 국가로 연나라를 선택합니다. 하지만 연나라에서도 인맥이 없어 1년 넘게 고생합니다. 돈이 다 떨어져 객점 주인에게 100전을 빌리기도 합니다. 그는 최후의 수단으로 궁궐 밖에서 무작정 문공을 기다립니다. 문공의 행차를 막고 엎드려 간절하게 알현을 청합니다. 소진이 자신이 누구인지 소개하자 문공은 깜짝 놀랍니다. 그는 소진이 진나라에서 유세했고 부국강명을 위해 10만자가 되는 책을 써서 진왕에게 올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문공은 소진을 조정으로 불러 국정을 의논합니다. 소진의 머릿속에만 있던 합종책이 드디어 현실에서 펼쳐지는 계기가 마련된 것입니다.
소진은 문공에게 연나라가 처한 지정학적 특징과 병력 수준 등 객관적 사실을 나열하고 조, 위, 한, 제, 초 등 다섯 나라와 협력해 진나라의 팽창 정책을 억제하는 합종책을 제시합니다. 문공에게 소진이 제안한 전략은 매력적이었습니다. 연나라가 진나라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는 현명한 외교·안보 정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소진의 합종책이 성사될 수 있도록 적극 후원합니다. 소진은 연문공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 합종책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조나라로 향합니다. 그곳에서도 똑같은 논리로 합종의 장점을 설파합니다. 조나라 군주도 소진의 계책에 찬성하고 합종에 필요한 재원을 아낌없이 제공합니다. 소진에게 합종책의 최고책임자인 '종약장' 벼슬도 줍니다.
그런데 이때 합종책을 위협하는 변수가 생깁니다. 진나라가 막강한 군사력으로 위나라를 압박하며 강화를 요청했던 것입니다. 위나라와 진나라가 강화를 맺으면 조나라를 공격할 것이라는 첩보도 들어왔습니다. 이대로 진행되면 합종책은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와해될 게 분명했습니다. 고심하던 소진은 은밀한 전략을 쓰기로 했습니다. 귀곡선생 밑에서 동문수학했던 장의를 이용해 진나라 공격을 막으려고 한 것입니다. 물밑 외교 전략을 가동했던 겁니다.
당시 장의는 처량한 신세였습니다. 초나라에서 출세의 기회를 잡으려고 했지만 도둑으로 몰려 곤욕을 당하는 일을 겪었습니다. 초나라 권력자인 소양의 빈객으로 있다가 '화씨지벽'이라는 보물을 훔쳤다는 혐의로 죽도록 매를 맞고 쫓겨났던 겁니다. 피투성이가 돼 집에 돌아온 그를 보고 아내가 눈물을 흘리며 농사나 짓자고 하자 장의는 입을 크게 벌려 보여주며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내 혓바닥이 아직 남아있소?" 아내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렇다고 답하자 그는 말합니다. "혀가 남아 있다면 본전은 건진 셈이오. 우리의 곤궁은 언젠가는 풀릴 것이오." 세 치 혀로 천하를 움직일 수 있다는 장의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는 말입니다.
그는 소진이 출세했다는 소식을 듣고 조나라로 갑니다. 장의에 대한 정보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던 소진은 물밑 외교를 위한 포석을 깔아놓습니다. 먼저 장의가 찾아오자 일부러 모욕을 줍니다. 그러면서 다른 한 편으로 비밀리에 측근인 가사인을 시켜 장의가 출세하도록 돕습니다. 장의가 진나라에서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지원했던 것입니다. 소진이 쓴 각본대로 모든 계획이 이루어지자 가사인은 장의에게 진실을 털어놓습니다. 장의는 비록 속임수였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왔던 소진의 요구를 받아들입니다. 진나라 왕을 설득해 침략 전쟁을 중단하도록 한 것입니다. 여섯 나라가 합종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실익이 없다는 논리로 유세를 펼친 것입니다. 소진은 이렇게 물밑 외교로 안전장치를 마련한 뒤 합종책을 완성합니다. 그는 여섯 나라를 총괄하는 재상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가 종약장으로 있었던 10여년간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우리 외교·안보 정책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더해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국가들의 복잡한 이해관계로 입체적인 전략이 필요합니다. 치밀한 계획에 따라 공식 외교와 물밑 외교를 동시에 구사한 소진의 합종책은 새 정부 외교·안보팀에 많은 영감을 줄 것입니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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