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두 개의 수식어만으로도 많은 인터넷 이용자들이 어떤 곳을 가리키는지 눈치를 챌 것이다. 더 강력한 힌트는 '모든 지식을 무료로 볼 수 있다'는 것. 그렇다. 바로 위키백과다.세계 최대 검색 사이트 '구글'도 위키백과의 지식을 적극 이용하고 있다. 구글에 검색어를 입력하면 화면 오른쪽에 이에 대한 위키백과 설명이 나온다. 지식재산에 권리가 붙고 기술과 결합한 투자상품이 되는 시대에서 위키백과는 세계 시민들이 여전히 무료로 접근하고 지식을 생산해 공유하는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지식 생산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 방식 때문에 위키백과가 앞으로 생존할 수 있을지 물음표를 던지는 이들도 있다.
매일경제는 이 거대한 지식 플랫폼에 매료돼 한국어 위키백과를 이끌고 있는 주역들을 만났다. 이들을 통해 위키백과가 이용자들에게 제공하는 가치와 미래 모습을 조망해봤다.
◆ "중학생 때부터 위키백과 문서를 편집했죠"
위키백과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누구나 자유롭게 문서를 만들거나 편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방증하기라도 하듯, 위키백과 홈페이지의 가장 위에는 '우리 모두가 만들어가는 자유백과사전'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매일경제가 만난 3명의 편집자 모두 위키백과를 만든다는 이유만으로 위키미디어재단으로부터 별다른 대가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이범수 한국위키미디어협회 이사의 본업은 프리랜서 번역가다. 이 이사는 중학생이던 2009년부터 위키백과 문서를 자발적으로 편집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본인이 관심 있는 분야인 지진과 유럽에 관한 문서를 주로 편집하다가 점차 위키미디어 운동에 관심을 갖게 돼 적극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고영진 위키미디어재단 운동전략 및 거버넌스 촉진자 또한 비슷한 시기에 위키백과 활동을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 위키미디어재단에서 근무하며 위키백과 내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분쟁을 조정하고 있다. 고 촉진자는 "미국에 있는 일부 직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원격근무를 하고 있다"며 "급여는 원화가 아닌 달러로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구은애 한국위키미디어협회 사무국장은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의 영향을 받아 대학생이던 2007년부터 위키백과 활동을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 스타트업에서 일하다가, 한국위키미디어협회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창립준비위원회 시절부터 이곳에서 활동했다. 구 사무국장은 "2013년 협회가 창설된 이래로 계속해서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며 "당시에 협회 창설을 주도한 협회장도 함께하고 있다"고 말했다.
◆ 참여형 지식혁명 20년…"상업활동 No! 기부는 OK"
위키백과는 2001년 미국 시카고옵션거래소에서 일하던 지미 웨일스가 만들었다. 웨일스 창업자는 대학에서 재무를 전공했지만, 컴퓨터에 관심이 많아 취미로 프로그래밍을 하던 도중 닷컴버블의 영향을 받아 인터넷 사업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성인물 검색 사이트인 '보미스'를 만들었다가, 이내 사업을 정리하고 인터넷 백과사전인 '누피디아'를 만들었다. 누피디아는 원래 지정된 전문가만 문서를 만들고 편집할 수 있었지만, 동업자인 래리 싱어의 조언으로 이름을 위키피디아로 바꾸고 누구나 편집할 수 있게 만들었다.
2002년에는 한국어 위키백과가 만들어졌다. 현재 한국어 위키백과에는 약 58만개의 문서가 있어, 전 세계 위키백과 중 23위를 기록하고 있다. 위키미디어 통계에 따르면 2022년 3월 한 달간 한국어 위키백과 편집을 한 사람은 9006명에 이른다.
운영에 필요한 비용은 주로 기부로 충당된다. 위키미디어 홈페이지에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한 해 위키미디어재단에 기부한 사람은 770만명, 이들이 기부한 액수는 총 1억5000만달러(약 1900억원)에 달한다.
기부자 대부분은 1만~2만원 정도를 기부하는 평범한 일반인이지만, 간혹 기관이나 단체에서 고액을 기부하는 경우도 있다. 위키미디어 홈페이지에 공개된 기부자 명단에 따르면 애플·구글·매스웍스가 5만달러(약 6200만원) 이상을, 어도비·시스코·넷플릭스가 1만5000달러(약 1900만원) 이상을 기부하는 등 전 세계 정보기술(IT)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구 사무국장은"한국위키미디어협회도 대부분의 활동비를 기부에 의존하고 있다"며 "다만 송금 절차상의 문제로 국내에서 미국 위키미디어재단으로 직접 기부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 위키백과 논란은 북한 이슈…'중립적 시각'과 충돌
고영진 위키미디어재단 운동전략 및 거버넌스 촉진자, 구은애 한국위키미디어협회 사무국장, 이범수 한국위키미디어협회 이사(오른쪽부터)가 한국 위키백과를 설명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위키백과 특유의 문화는 간혹 우리나라의 법·정서와 충돌을 일으키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북한에 관한 사안이다. 한국어 위키백과에는 '북한' 문서가 없고, 대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문서만 있다. 해당 문서에 따르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1948년 건국된 한반도 북부의 국가로,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우리나라 법과 정서와는 상반된다. 그런데도 위키백과가 굳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명칭을 고집하고, 이를 독립된 국가로 인정하는 이유는 이들의 '중립적 시각' 정책 때문이다. 위키백과의 '중립적 시각' 문서에 따르면 위키백과에 올라오는 문서의 제목·내용은 한국 등 일부 국가의 시각을 일방적으로 대변해서는 안 되고, 유엔 등이 표준적으로 인정하는 대로 남한과 북한을 모두 국가로 서술해야 한다. 다만 이러한 정책은 시간이 지나면서 외부 상황의 변화와 위키백과 편집자 간 토론에 따라 유연하게 변동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우크라이나 수도인 키이우를 표기하는 문제다.
한국어 위키백과는 원래 우크라이나 수도를 러시아식 발음인 '키예프'로 표기해 왔으나, 전쟁 발발 이후 우크라이나 정부의 요청으로 국내 언론의 표기가 변화함에 따라 이를 키이우로 변경했다. 고 촉진자는 "전쟁이 발발하기 전부터 소수의 이용자가 '키이우' 표기를 주장했으나 토론 과정에서 기각당했다"며 "이후 외부 상황이 변화하면서 다시 토론이 벌어져 최종적으로 표기를 변경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위키백과의 내용을 둘러싸고 정치적 분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문재인·이재명 북한 사건'은 법적 문제로까지 비화한 대표적인 사례다. 2017년 한 50대 남성이 위키백과의 '문재인' 문서의 첫 문장을 '문재인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이다'로 고쳤다가 벌금형을 선고받은 것.
이들은 인터넷 지식혁명의 전환점이 됐던 위키백과의 미래가 여전히 밝다고 자부한다. 전 세계적으로 ESG(환경·책임·투명경영)가 주목받기 훨씬 전부터 위키백과는 '다양성'의 가치에 중점을 두고 인종·성별에 따른 차별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인터넷 사용 환경이 변화한 것도 위키백과에는 호재다.
구 사무국장은 "내부 통계를 보면, 10대 사용자들이 휴대폰으로 접속해 문서를 만들거나 수정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고 촉진자는 "앞으로도 '자율적인 지식 공유'라는 위키백과의 대원칙하에 위키미디어 정신과 운동을 활성화할 것"이라고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