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인연이 깊은 두 분의 사업가가 있다. 한 분은 어린 나무를 길러 목재를 만들고 다른 한 분은 늙고 지친 나무를 옮겨와 가꾼다. 한 분은 나무가 곧게 클수록, 다른 한 분은 나무가 굽어질수록 가치가 올라간다.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과 현승훈 화승그룹 회장. 연고지가 부산으로 같고 고등학교(경기고)도 2년 선후배지간인 데다 중견기업 오너들이라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만날 기회가 많았을 것 같지만 평소 교류가 있었던 사이는 아니다.
두 분은 보면 볼수록 참 닮은 점이 많다는 생각을 한다. 박 회장의 나무에 대한 집념, 현 회장의 고무에 대한 집념. 그리고 이걸 뿌리로 창호의 세계적 브랜드를 일군 이건과 신발 제조로 세계를 정복했던 화승. 그리고 성공적으로 가업을 승계한 패밀리 비즈니스의 모델. 이런 건 그냥 기업 소개서만 보면 알 수 있는 거다. 이 두 사업가에겐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공통된 기운이 있다. 손에 잡히진 않지만 누구라도 만나면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그 무엇.
공채 1기 직원을 본인과 같은 반열인 회장까지 올렸다. 그 월급쟁이 회장이 몹쓸 병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았는데 병 낫게 해달라고 매일 백팔배를 올린 현 회장. 정말 기적처럼 병이 나았다. 남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현지법인에서 일하는 조림 책임자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그 소식을 접한 박 회장은 앰뷸런스 비행기를 띄워 현지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 호주 브리즈번 병원으로 아슬아슬 숨이 붙어 있는 직원을 후송했다. 그렇게 해서 기적처럼 목숨을 구했다. 그건 기업의 밑천은 직원이며 그 직원들의 행복을 위해 회사를 운영한다는 인본(人本)의 정신이 없고서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나무를 알고 나무를 사랑해서 그런지 자연을 좋아하고 자연을 아낀다. 이 두 사업가의 인본경영은 다름 아닌 나무에서 출발한다.
현 회장에겐 40년 가까이 가꿔온 정원이 있다. 화승원이다. 4년 전 화보집을 내면서 고등학교 1학년 때 국어를 가르친 고(故) 이어령 선생에게 서문을 부탁했으나 극구 고사했던 그 정원. 서문은 현 회장의 몫이지 자신이 가로챌 게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밑줄 긋기'란 제목으로 에필로그를 올렸다.
화승원 뒷쪽에 난 대나무 숲길을 거닐고 있다. 바람 소리가 시원하다.
화승원엔 현 회장이 성철 스님을 위해 마련해 준 암자가 있다. 스님께선 찬바람 불면 해인사 백련암에서 내려와 이곳 고불원(古佛院)에서 4년을 보냈다. 그곳이 좁고 누추해 새로 지어 모신 곳이 겁외사(劫外寺). 성철 스님은 3년 겨울을 이곳에서 지내면서 영원하고 무한한 시간의 밖에 있는 절이라는 뜻으로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성철 스님을 기리기 위해 생가가 있는 경남 산청에 따님인 불필 스님이 이름 붙인 사찰도 겁외사다.
누구에게 자랑하거나 재산 축적을 목적으로 시작한 정원이 아니다. 그냥 나무 가꾸는 일이 생명을 사랑하는 일이라 여겨 스스로 길을 내고 나무를 심었다. 그 나무라는 것도 주인이 도시로 이사 가면서 팔게 된 나무,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베어내야 할 나무, 비바람 맞으며 외롭게 서 있던 나무들이 대부분이다. 측은한 마음으로 이곳 화승원으로 데려왔다. 그러고는 어디다 심으면 죽지 않고 잘 자랄까라는 기준으로 나무 위치를 정했다. 전문 조경사의 눈으로 보면 세련미가 턱없이 부족할지 모르나 그건 외관이 아닌 생명의 영역이었다.
현 회장이 20대의 청년이었던 1960년대 말 자주 낚시를 갔던 회동지 인근 언덕을 보곤 언젠가 돈을 벌면 그곳 땅을 사서 나무를 심어보겠다는 꿈을 키운다. 현 회장이 화승원 프로젝트를 시작한 건 그로부터 10년 정도 지난 1978년. 1만평 정도 땅을 산다. 그렇게 해서 탄생된 정원이다.
청년 현승훈이 나무 정원을 가꾸겠다는 꿈을 키울 때 청년 박영주는 장인이 설립한 광명목재에 입사한다. 그렇게 둘은 청년부터 나무와 엮이게 된다. 현 회장이 화승원에서 첫 삽을 뜬 1978년 박 회장은 당시 경영난을 겪고 있던 이건산업을 인수해 오늘날 이건의 토대를 일구게 된다. 이때 박 회장은 나무 씨앗을 채취해 묘목을 만들고 그걸 나무로 키워 제품을 생산하고 다 쓴 폐목재는 재생하는 수직계열화를 꿈꿨다. 그래서 찾은 곳이 솔로몬 군도. 수년간의 현지조사 끝에 약 11억평에 달하는 초이셀 섬의 산림 단독개발권을 획득한다. 그게 출발이었다.
나는 현 회장에게 정중히 요청했다. "외부에 극도로 공개를 꺼리는 정원인 줄은 알지만 그곳을 방문해 회장으로부터 경영에 대한 고견을 들을 기회를 주면 고맙겠다"고. 그리고 "그 자리에 아마도 회장과 가장 어울릴 만한 박영주 회장을 모셔 대담을 나누면 어떻겠냐"고. 현 회장의 답이 온 건 그로부터 약 1주일 후. "꽃 피는 봄에 한번 날을 잡아 오라"고. 그리고 "대담은 무슨 대담. 그냥 도시락에 차나 한잔 마시고 정원 산책이나 하자"고.
그렇게 해서 이뤄진 두 기업가의 만남. 봄빛이 완연한 4월 15일. 두 기업가는 화승원을 거닐며 기업경영과 나무에 대해, 보다 넓게는 인간과 자연에 대해 마치 오랜 친구처럼 대화를 나눴다.
◆ 리더십의 요체, 경청과 불천노
두 기업 모두 가장 앞서 내세우는 게 인화(人和)고 직원들의 행복과 성공을 중시한다는 평을 듣고 있다. 말이 쉽지 행동으로 옮기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두 회장께 물었다. "기업 하면서 화낼 일이 하루에도 여러 차례 있을 텐데 이를 꾹꾹 눌러 밖으로는 결코 드러내는 법이 없다고 한다. 직원들에게 물어 보면 늘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고 한다. 그 비법이 무엇이냐"고.
현 회장이 바로 답한다. "화를 안 내긴 하루에도 몇 번은 속에서 불이 올라오는데. 참는 거죠." 한 템포 쉬고 말문을 연다. "언젠가 공장을 둘러보는데 직원 한 명이 '회장님 오늘 표정이 좀 어둡습니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내 표정이 일하는 데 왜 중요한데'라고 되물었죠. 그랬더니 회장님 표정 하나가 임원들 일과를 좌우하고 그 임원들의 심기를 읽는 직원들이 영향을 받는 건 당연하지 않냐고 반문하는 겁니다. 그래서 아랫사람이 윗사람 눈치보고 분위기 파악하느라 긴장하면 인화는 무슨 인화겠느냐는 생각이 든 겁니다. 불천노(不遷怒)라고 화를 남에게 옮기지 말자는 결심을 하게 된 거죠. 화난 얼굴은 주위에 담을 쌓고 사람을 멀리 쫓아낸다는 현 회장. "느는 건 원수요 주름뿐"이라고 한다.
그 말을 들은 박 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의사결정을 하고 나서 후회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왜 그때 그런 결정을 했을까라고요. 그런 일이 언제 생기느냐 곰곰이 생각해 보면 화가 났을 때입니다. 화가 난다고 그 순간 표현해 버리면 문제는 해결 안되고 서로 감정만 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래서 저는 심호흡을 하고 충분한 시간을 갖습니다."
박 회장은 말을 이어간다.
"화를 내지 않으려면 먼저 남의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결코 쉽지 않아요. 훈련이고 습관입니다. 기본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존경심이 없으면 경청은 안됩니다. 내 회사니까 기업에 대해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하지요. 무조건 내 뜻을 관철하려고 하지요. 그러나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잘 모릅니다. 직원들의 판단이 중요합니다. 그걸 안 듣고 내 말만 하면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게 됩니다. 최고경영자가 범하기 쉬운 실수는 스스로는 직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고 하지만 그건 그들의 주장일 뿐이라는 겁니다. 직원들은 최고경영자가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는 것 같지도 않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화승원 내 동백나무 아래에서 동쪽 끝 호두술산을 바라보면서 말을 나누고 있다.
현 회장은 "종업원들은 다르게 생각할지 모르나 적어도 내 맘으로는 내가 종업원을 모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렇게 마음먹게 된 계기는 '절'이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현 회장이 성철 스님을 이곳 화승원에 모시고자 할 때 성철 스님은 "내가 불심이 없는 곳엔 안 간다"며 "정 나를 모시겠다면 하루에 삼천배를 하라"고 했다고 한다. 말이 삼천배지 보통의 인내로선 불가능한 과업이었다. 그걸 이겨낸 현 회장이다. 그러면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절을 한다는 건 자신을 낮추는 겁니다. 큰 스님은 저에게 그걸 가르치려고 한 겁니다"라고.
막상 화승원으로 들어오면 고요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귀를 기울이면 자연의 소리로 가득하다. 새소리 풀벌레소리, 바람소리,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 그건 귀를 열어야 들린다. 현 회장은 "여기 있다 보면 귀를 여는 습관이 몸에 밴다"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박 회장 또한 오랫동안 음악을 곁에 두어서인지 귀가 밝다.
◆ 나무와 경영은 기다림이다
나무는 기다림이다. 현 회장이 화승원을 40년 가꿨다면 박 회장은 솔로몬 섬 나무 숲을 40년 가꿨다. 화승원의 10만배나 되는 11억평의 땅에 유칼립투스 데그룹타라는 수종을 심었다. 그 사이에 간벌재로 유로그란데스라는 나무도 같이 심는다. 빗방울 맞으면 머리가 깨질 것 같은 소나기라도 내리는 날이면 하루에 2㎝씩 자라는 나무다.
그는 1960년대 원목을 구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밀림을 돌아다녔다. 그곳에서 박 회장은 원주민의 슬픔과 마주한다. 원목사업자들은 지방정부로부터 벌채권을 얻으면 최단 시일 내에 정벌을 해간다. 남은 원주민들에게 남는 건 가난의 대물림과 산사태였다. 그는 결심한다. 자연친화적 사업을 하겠다고.
솔로몬으로부터 산림 벌초허가를 받았다. 그는 나무를 자르지 않았다. 대신 이건파운데이션을 설립한다. 남녀 모두 발가벗고 사는 나라에 의료시설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래서 무료 의료클리닉부터 시작한다. 그러고 나서 학교. 원주민들에게 임업 농업 교육을 했다. 그 학교가 지금은 솔로몬 최고의 학교가 됐다. 주민들이 여기 들어가려고 위장전입까지 한다고 한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려 원주민들의 마음을 얻은 뒤에야 벌목을 진행했다.
화승원 내 현승훈 회장의 호를 따서 지은 장천루 문지방에 걸터앉아 정겨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여기 쓰인 창호가 이건창호다.
화승원 내 현승훈 회장의 호를 따서 지은 장천루 문지방에 걸터앉아 정겨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여기 쓰인 창호가 이건창호다.
1997년 솔로몬에서 특별한 사건이 발생한다. 카누를 타고 정글을 누비던 영국인 한 명이 이건에 SOS를 쳤다. 이건은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를 도와준다. 음식은 물론 숙소를 마련해주고 안내인을 붙이고 차량까지 제공했다. 그가 영국 자연사박물관 소속의 나비학자 존 태넌 박사였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 태넌 박사는 지상 40미터 높이에 서식하는 신종 나비를 발견한다. 그는 이건의 도움에 보답하는 의미로 이 나비가 신종 나비로 판정나면 그 이름을 '이건나비'로 짓겠다고 약속한다. 3년 후 학명에 기업 이름이 등록되는 전무후무한 일이 벌어졌다. 지금도 영국 자연사박물관에 이 나비는 '이건'이란 이름표를 달고 보관돼 있다.
◆ 향나무 사리와 홍단풍
화승원을 들어서면 바로 오른쪽에 겁외사가 있다. 그 마당에서 현회장이 겁외향을 가르키면서 향나무에 얽힌 얘기를 하고 있다.
화승원엔 향나무가 가장 많다. 겁외사 앞마당에 있는 나무도 향나무다. 불심 가득한 성철 스님조차 그 나무엔 욕심이 있었나 보다. "저 나무 백련암에 갖다놓고 싶다"며 나무의 이름을 겁외향이라 지었다. 향나무는 소나무와는 달리 물을 많이 먹는다. 예로부터 우물가에 향나무가 많은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물이 없으면 향나무는 자신의 신체 일부를 죽여 생명을 유지한다. 그 부분은 하얗게 변한다. 그걸 사리라고 하고 나머지 부분을 수관이라고 한다. 현 회장의 향나무에 대한 성찰은 심오하다.
"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에 향을 묻혀줍니다. 향을 묻혀주는 게 아니라 아예 자신을 찍어 넘어뜨리는 그 도끼의 자루가 되고 도끼날을 만드는 쇠를 녹이는 숯이 됩니다. 나무는 죽어서도 썩지 않고 사람 사는 집 기둥이 되고 살림도구가 되었다가 땔감으로 불타 재가 됩니다. 재는 다시 대지로 돌아가 새 생명을 키웁니다."
현 회장의 말을 유심히 듣던 박 회장은 화승이 외환위기 때 경영상 어려움에 처했던 때를 기억해낸 것 같다. 그러고는 약간 에둘러서 말을 꺼낸다. 그는 "기업경영을 하다보면 죽지 않고서는 다시 살아날 수 없는 이치를 깨닫게 된다"며 "향나무가 소중한 지혜를 준다"고 말한다. 현 회장이 그 말을 받는다. "그때는 정말 눈물을 머금고 직원들 많이 내보냈지요. 그런데 나와 가까운 사람부터 그만두게 했습니다. 내 형제 내 친척부터"라고.
현승훈 화승 회장(왼쪽)과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이 부산 화승원 내 겁외사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뒤에 보이는 나무가 성철 스님이 생전에 가장 아꼈던 향나무로 겁외향이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불행하게도 두 번의 태풍을 맞고 2년 전 고사해 온몸이 하얗게 변해버렸다. 그걸 사리라고 한다. [사진 제공 = 심일욱 화승 선임]
겁외사에 있는 향나무는 재작년 태풍을 맞아 쓰러졌다. 그걸 다시 일으켜 간신히 살려놨는데 두 번째 태풍에 그만 수명을 다했다. 고사한 향나무지만 기품은 여전하다.
화승원에 들어서면 몇 발짝 안가 빨갛게 물든 단풍이 있다. "아니 봄에 무슨 단풍"이란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단풍이 들 때까지 모든 나뭇잎은 초록색이지만 이 동그랗게 단장한 나무는 봄에 가을 색깔을 띤다. 홍단풍이란 나무다. 길을 따라가다보면 이 나무와 쌍둥이 같은 나무가 하나 더 있는데 그건 초록색이다. 현 회장이 먼저 말한다. "저게 청단풍"이라며 "가을 되면 잎이 빨갛게 변하고 아까 본 홍단풍은 가을이 되면 푸르게 잎이 변한다"고. 현 회장은 "홍단풍을 보면 내 안에 편견과 고정관념이 있나 다시 되돌아보게 된다"면서 "경영에 있어 늘 하던 일을 되풀이하기보단 뒤집어보고 돌려보는 습관을 익히게 한다"고 말한다.
시인 장석주가 '대추 한 알'에서 "저 안에 태풍 몇 개~"라고 한 것처럼 나무에도 아주 오래전의 천둥과 번개, 햇빛과 바람이 배어 있다. 현 회장은 이곳을 '고목 전시장'이라 한다. 아주 오랫동안 비바람을 견디고 그걸 몸에 새긴 나무들로 가득하다. 나무에 갈라진 틈과 거북등 같은 껍질. 그건 시간을 기다려야만 얻을 수 있는 노목의 품격이다.
사보에 이런 글을 썼다. "지금 잠시 수화기를 들고 부모님께 전화를 거십시오. 부끄러워 못했던 말.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십시오"라고. 그는 병고에 시달리는 이어령 선생에게 매일같이 토종닭을 보냈다. 음식만 보면 화를 내던 마지막 시기에도 현 회장이 보낸 거라면 몇 숟갈 삼키려고 애쓰셨던 선생이다. 현 회장은 "나무로부터 세상 사는 법을 배운다"고 한다. 그래서 화승원은 단순한 정원이 아니라 직원들에게 효(孝)와 덕(德)을 가르치는, 아니 스스로 깨닫게 하는 학당이다.
화승원을 나오면서 새삼 깨달았다. 들어올 때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작은 대문. 그리고 주차장이 없다. 외부로 공개하지 않고 스스로를 낮추는 정원. 외지인이라면 무심코 지나쳤을 곳이다. 그 안에 이런 어마어마한 정원이 있을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