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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탄의 시대 같이 사는 우리…시로 썼다"

황태자의 사색 2022. 4. 29.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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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탄의 시대 같이 사는 우리…시로 썼다"

14번째 시집 펴낸 김혜순 시인

모친 병상에서 쓴 詩 묶어
`지구가 죽으면 달은…` 출간
상실의 충격 고스란히 담아

"시는 위로·치유가 아니라
홀로 견디는 작업이에요"

스웨덴 시카다상 수상후
해외 독자와 자주 만나

  • 김슬기 기자
  • 입력 : 2022.04.28 17:00:01   수정 : 2022.04.28 17: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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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문학과지성사에서 김혜순 시인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문학과지성사]
죽음을 부르는 병은 시를 탄생시키는 산파(産婆)가 됐다.

김혜순 시인(67·서울예대 문예학부 명예교수)은 지난 3월 코로나19를 앓았다. 작년까지 32년간 근무했던 서울예대를 떠난 뒤 주로 머문 곳은 병원이었다. 엄마의 죽음 이후 자주 아팠고, 상실의 충격으로 응급실도 3번이나 갔다. 그러면서도 시를 놓지 않았다.

"엄마와 내가 작별의 공동체로 보낸 나날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곳을 나는 사막이라고 불렀다. 시간과 나날이 파편화된 그곳으로 우리 둘을 데려갔다."

시를 쓸 때는 늘 사막에 있었다. 간호하는 시간은 치열한 시간이었다. 잠깐 빈 시간을 못 견뎌서, 그래서 시를 썼다. 죽음 곁을 맴돌며 이렇게 써 내려간 비탄의 시들이 책으로 묶여서 나왔다. 14번째 시집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이다. 2019년 6월 '죽음의 자서전'으로 한국인 최초로 캐나다 최고 권위의 그리핀 시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묶은 첫 시집이다. 1부 '지구가 죽으면'에 실린 33편의 시는 시인의 엄마가 병상에 계시다 돌아가신 2019년 무렵 쓰였다. 엄마를 보낸 뒤부터, 자신 또한 죽음의 질병과 싸운 시기까지의 사유를 묶은 '죽음의 시집'인 셈이다.

시인은 "엄마는 나를 두 번 배신했다/ 첫 번째는 세상에 나를 낳아서/ 두 번째는 세상에 나를 두고 가버려서"라고 '엄마란 무엇인가'에 썼고, '죽음의 베이비파우더'에서 "모든 사람이 다 지워져도 작별만은 지울 수 없는 법"이라고 썼다.

28일 문학과지성사에서 기자들과 만난 시인은 "봉쇄 시대를 살았고 죽음이 세계를 지배하면서 뉴욕타임스에 사망자의 이름이 가득 실린 걸 봤다. 우리가 비탄의 시대를 같이 살았고 개인과 이 사건이 만난 기록들을 시로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시집 2부에서는 코로나19라는 전 인류적 재난을 맞이한 시대적 절망을 노래한다. 엄마의 죽음과 자신의 투병을 통해 그는 육체적 고통은 나눌 수 없다는 걸 배웠다. 그는 "엄마는 저의 과거형인데 돌아가심으로 미래가 됐다. 가족이란 내가 겪어보니 작별의 공동체더라"라고 말했다.

김혜순은 지배적 언어에 맞서 몸의 언어로 싸워온 시인이었다. 2021년 12월 스웨덴 시카다상 수상 이후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이 되어 더 큰 울림을 갖게 됐다. 해외 초청이 잇따르면서 최근 김혜순은 덴마크 독자들과 '줌'으로 만났다.

그는 "해외 독자는 고정관념이 하나도 없다. 나이도 묻지 않고, 시집을 몇 권 냈는지도 관심 없다. 시만으로 만나는 건 박물관에서 그림 보듯이 얼굴과 얼굴을 맞댄 대면이랄까, 날것의 충격을 준다"고 말했다.


제목과 표제작에 쓴 지구를 도는 '달'은 어떤 의미일까. "달의 어원은 딸과 같다. 엄마를 보낸 딸은 누굴 돌지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그걸 확장해서 지구에서 일어나는 코로나19와 전쟁의 문제를 다루고 싶기도 했다. 마지막 지구인이 달에서 지구를 보는 광경을 떠올렸다. 장례를 치른 저와 제 딸이 달에서 마지막 지구인인 엄마를 보는 거다. 이 시가 제가 말하고 싶은 걸 대변하는 시가 아닐까 싶었다."

죽음의 시간을 보내고 쓴 시들은 그에게는 치유가 됐을까. 예상외의 답을 돌아왔다. "시가 위로와 치유가 됐으면 매일 썼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 시는 슬픔을 더 슬픔답게, 파괴를 파괴답게 하는 장르다. 누구를 위로하려면 산문으로 쓰는 게 나았을 것이다. 시는 견디는 작업이다."

[김슬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