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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역사

황태자의 사색 2006. 8. 18.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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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4 2007-02-20
언제나 그렇듯 폴 존슨의 열정과 근면함은 경이로울 뿐이다.
   오선용님, 안녕하십니까?  
  해외 사업을 하다 보면 유대인들과 만나게 되지요. 세계는 유대상인과 중국상인들처럼
상거래에서 걸출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 가운데 유독 유대인들은
박해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4천년이란 긴 세월동안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조직적인 박해를 받아왔습니다. 최근에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의 일부
내용이 문제가 된 것도 그들이 얼마나 그런 문제에 민감한 가를 드러낸 한 가지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가능한 편견을 없애려고 무척 노력합니다. 우연한 기회에 큰 아이와 대화를 나누면서
유대인 문제에 대해서 아빠 생각과 다른 관점을 갖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함께 읽자고 요청하였던 책이 바로 폴 존슨(Paul Johnson)의 <유대인의 역사>
1,2,3권입니다. 1928년생인 폴 존슨의 저술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어쩌면 이렇게
해박할 수 있을까라는 부러움입니다. 그동안 여러 책들을 읽었지 폴 존슨의 유대인에
대한 책은 압권에 해당합니다. 책의 말미에 가면 그의 메니페스토라고 할 정도로
열정적인 웅변에 계속됩니다.

무지는 편견을 낳게 되지요. 편견의 대상이 경제력을 가졌거나 우수한 집단인 경우에는
더더욱 질투와 시기심을 갖게 됩니다. 유대인에 대해서 올바른 시각을 갖는 것도
나라의 일을 담당하는 사람들이나 사업을 하거나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언젠 시간이 나시면 폴 존슨의 저서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대인들이 세계를 정복한다는 내용을 담은 <시온의정서>와
같은 음모를 담은 책들이 국내에서도 많이 팔리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점에서 올바른
책을 읽고 바른 시각을 갖고 살아가는 점이 중요할 것입니다. 폴 존슨의 책은 마지막
부분에 도달하면 그의 웅변 수준으로 바뀌게 됩니다. 아마도 이 노학자가 유대인의
역사를 쓰면서 마지막에는 어쩌면 이렇게 한 민족을 조직적으로 박해할 수 있을까라는
부분에 대해 울분을 느낀 것처럼 보입니다. 우선 여러분 결론 부분을 발췌해서
보내드립니다.

1. 유대인의 역사는 한편으로는 격변의 연속이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끈질긴 연구의
연속이었다. 행복이 잠잠할 때에는 슬픔이 그 목소리를 내었다. 역사가들은 이것을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유대인들은 4천 년이 넘도록 운명에 적응하면서 자신들의
역사를 만들었던 위대한 생존자였을 뿐만 아니라 인류에게 지식을 수집하여 제공해 주는
데 있어 엄청난 기술을 지닌 민족이었다.

그 어떤 민족도 가난함을 부유함으로 바꾸거나, 불운을 창조적인 이야기로 바꾸는 데
그들만큼 독창적이지 못했다. 이 능력은 1천 년의 세월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던 견고
하고도 정교한 윤리적인 철학에서 샘솟고 있다.
유대인들은 언제가 유대교의 멍에
아래에서 신음했다. 그러나 그들은 한번도 그 짐을 버린 적이 없었는데, 왜냐하면 그
멍에가 자신들을 유지하게 해 준다는 것을 마음 속 깊이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이방세계에 대한 빛이 되어야 한다는 명령을 받았으며,
그렇게 창조되었다고 믿었다. 종교적인 측면에서 고려되든 세속적인 측면에서 고려되든
간에 그 결과들은 주목할 만하다. 유대인을은 윤리적인 유일신론을 세상에 알렸는데,
이는 하나님에 대한 이성의 적용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보다 더 세속적인
시대에 이르자 그들은 합리성의 원칙을 인류에 적용시켰다.


이처럼 그들이 비추었던 빛은 세상을 밝게 비춘 동시에 혼란을 가져왔다.
왜냐하면그 빛은 인간의 정신은 고양시킬 수 있는 수단이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
정신에 관한 고통스러운 진리 또한 밝혀주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위대한 진리의
선포자였으며, 이것이 바로 그들의 그토록 미움을 받았던 이유 중 하나였다.
예언자란 두려움의 대상이자 존경의 대상이지만 때로는 배척의 받기도 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예언자는 어느 상황에서도 예언을 해야 하며, 유대인들은 그 진리가 어디로
이끌든지 계속 나아가야 했다. 유대인의 역사는 인류에게 하나의 목적이 주어졌다는
점과 짐승처럼 살다가 죽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가르쳐 준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허락한 삶의 의미를 추구하면서 <여후수아> 1자에 수록되어
세 차례에 걸쳐 반복되고 있는 고귀한 명령으로부터 위안을 얻게 될 것이다.

"내가 너에게 굳세고 용감하라고 명하지 않았느야! 너는 두려워하거나 낙담하지 말아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의 주, 나 하나님이 함께 있었다."
-출처: 폴 존슨, <유대인의 역사 3>, 김한성 역, 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