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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화의 아웃룩] 코로나 시대 '마음 방역'을 부탁해

황태자의 사색 2020. 8. 19.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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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화의 아웃룩] 코로나 시대 '마음 방역'을 부탁해

조선일보

  • 하정화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입력 2020.08.19 03:10

3월 초만 해도 금방 끝날 것 같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와 싸움이 장기화하고 있다. 학교에 가서 종일 마스크를 쓴 채 지내야 하고, 밥을 먹으면서도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는 초등학생 아이들 말을 듣고 있으면 친구들과 사귀는 즐거움을 누리기 전에 거리 두는 방법부터 배우게 된 아이들이 안쓰럽다. 더구나 2차 대유행까지 목전에 두고 있어 이런 침울한 일상에 대한 아쉬움은 더 깊어진다.

학자들이야 코로나 이후 '뉴노멀'이나 '비대면 사회' 등 패러다임 전환에 대해 토론하지만, 많은 보통 사람들은 하루라도 빨리 예전 삶으로 돌아가고 싶은 게 가장 간절한 바람일 것이다. 학교 다니는 자녀들 등교 스케줄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식당이나 가게는 예전처럼 손님들이 북적이고, 경로당이나 복지관을 자유롭게 드나들게 되는 것과 같은 일상 말이다.

 

1차뿐 아니라 2차 스트레스 확산

그동안 바이러스 위협에 맞선 우리나라 대응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 'K방역'이란 이름으로 다른 나라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그렇지만 코로나의 사회적·정서적 파급 효과에 대해서는 아직 진단과 대처가 미흡한 편이다.

사회학자 렌 펄린(Pearlin)은 '스트레스 과정(stress process)'과 '확산(stress proliferation)'이란 개념을 통해 어떤 스트레스가 다른 영역 스트레스로 확산하는 과정과 이런 과정이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했다. 그는 주로 치매 환자, 후천성 면역결핍증 환자 등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의 '가족(caregiver)'을 연구했다. 이들은 돌봄 자체도 스트레스이지만 이 스트레스가 다른 영역으로 확산하면 '돌봄의 포로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돌봄 외 사회적 관계와 여가, 그리고 일에서의 어려움' 같은 추가적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이런 후속 스트레스는 돌봄 자체에서 오는 스트레스보다 더 강력하게 작용할 수 있다.

하정화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코로나 국면에서도 이런 통찰력을 활용할 수 있다. 코로나는 '감염의 위험'을 넘어서 여러 영역에서 사람들을 2차 스트레스에 노출시킨다. 예를 들어 요양원에 거주하는 노인이라면 1차 스트레스(집단감염 위험)에 노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가족 방문이 뜸해지고 돌봄 인력도 줄면서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이라는 사회적·정신적 2차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또 각종 사회복지 서비스가 중단되면서 발달 장애인 등 일상생활에서 도움이 필요한 가정들도 돌봄 부담을 온전히 떠안으며 2차 스트레스가 증폭하는 환경에 놓이게 된다. 최근 이런 상황을 버티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가족들 사연이 종종 들려오는데, 이는 2차 스트레스가 당사자 정신 건강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를 잘 보여준다. 펄린은 이런 스트레스 확산 과정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기제로 개인 내적 자원, 사회적 자원, 그리고 스트레스 대처 능력 세 가지를 꼽았다.

개인 자원은 자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자아존중감, 자신과 주변 환경을 통제할 수 있고, 주변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아통제감을 말한다. 사회적 자원은 주변 사람들의 정서적·물질적 도움이나 일상생활에서의 도움을 총칭한다. 그러나 이런 요소들도 개개인이 처한 현실에 영향을 받는다. 코로나를 비롯한 많은 스트레스원(源)은 사회에서 가장 취약하고, 적절하게 대처할 자원이나 내적 기제를 충분히 가지지 않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코로나가 많이 발생한 곳이 선박이나 요양 병원처럼 밀폐되고, 열이 나도 휴가를 낼 여건이 안 되는 환경이었다는 것을 떠올려 보자. 일용직 근로자나 경제적 취약 계층은 실직 위험과 경제적 위험에 더 크게 노출되기 때문에, 코로나를 이유로 생업을 쉴 수가 없다. 장애인도, 그들을 돌보는 가족들도, 위생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요양원이나 정신병원 입소자들도, 학대 피해 위험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방위적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

'정신적 방역' 매뉴얼 필요

이런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매뉴얼이 필요하다. 물리적 질병에 대해서 방역 매뉴얼이 있다면, 마음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정신적 매뉴얼이다.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코로나 전후로 행복의 궤적은 연령, 성별, 성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중년 이상은 상황을 재해석해서 더 긍정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고 대처하는 '인지적 재해석', 젊은 층은 취미 같은 '새로운 활동'을 시도하는 게 코로나를 대하는 중요한 회복 기제였다. 결국 코로나로 인해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지원도 연령별·성별이나 심리적 특성에 따라 달라져야 함을 시사한다. 정책 입안자들이나 학자들은 경제적 여건이나 돌봄 부담, 사회적 고립, 신체적 제약 등 여러 영역에서 어려움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이 겪는 이중·삼중고가 뭔지,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게 뭔지 파악하고, 정책을 시행할 때 그 효과를 정확히 측정할 수 있도록 평가 지표를 마련해야 한다.

개인 차원에서도 보건 수칙을 지키는 것뿐 아니라 '코로나 스트레스'를 예방하기 위해 신체 적 건강, 영양 상태, 숙면, 운동 등을 챙기는 것도 중요하다. 물리적 거리 두기는 하더라도, 서로의 안부를 묻고 기운을 북돋워주자. 우울감이나 불안이 극도로 힘들게 한다면 정신건강복지센터나 위기 상담 전화 등을 통해 도움을 받자. 손 씻기를 생활화하는 것처럼 매일 마음을 돌아보자. 인간은 누구나 회복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기억하고, 나 자신을 믿어주자.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8/18/202008180515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