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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신비함과 마주하는 순간

황태자의 사색 2020. 8. 19.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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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산책] 삶의 신비함과 마주하는 순간

[중앙일보] 입력 2020.08.19 00:23 |

혜민 스님 마음치유학교 교장

어둑어둑해지는 저녁 시간이 되자 거리는 금방 비라도 내릴 것처럼 쌀쌀함이 엄습했다. 몇 년 전 낯선 런던 거리를 나 홀로 걸으며 앞으로 일주일간 예정된 일정들을 잘 소화할 수 있을지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었다. 책을 출간한 영국 출판사에서 준비해 준 일정에는 여러 강연과 BBC 라디오 인터뷰 4개, 그리고 토요일 오전 생방송 TV 프로그램이 포함되어 있었다.

우연의 일치라는 놀라운 경험
숨겨진 질서로 연결된 우주가
나에게로 보낸 메시지 일수도

생방송 중에 혹시라도 스코틀랜드나 코크니 식 영어 발음을 알아듣지 못해 당황스러운 상황이 오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다. 우리말로 하는 생방송도 긴장되는 일인데,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영국에서의 일이니 말이다.

그런 걱정과 두려움이 내 마음에서 슬금슬금 올라왔을 때 나는 귀에 이어폰을 꽂고 트래펄가 광장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때마침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노래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Bridge Over Troubled Water)’가 흘러나왔다. 무작위로 재생되는 핸드폰 음악 가운데 우연히 흘러나오는 이 곡을 듣고 있으니 이상하게도 위로가 되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면서 한 생각이 나도 모르게 올라왔다. “그래, 영국인 단 한 명에게라도 내 부족한 글이 험한 세상 다리가 될 수가 있다면 참 고마운 일이겠지. 초심으로 돌아가 주어진 일정을 하나씩 차분하게 소화하면 될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자.”

그런데 그 순간, 내 귓가에 들리는 아트 가펑클의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끝나갈 무렵, 정말 믿기지 않는 광경과 마주하게 되었다. 바로 내 눈앞에 ‘가펑클(Garfunkel)’이라고 또렷하게 쓰인 레스토랑 간판이 떡하니 보이는 것이 아닌가! 단순한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놀라웠다. 마치 내 불안한 마음을 보고 이 우주가 내가 혼자가 아니라고, 항상 보호하면서 도움을 주고 있다는 사인을 음악과 간판 이름을 통해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감사한 생각이 들면서 혼자가 아니라는 따뜻한 느낌 속에서 그다음 날 일정을 잘 준비할 수 있었다.

20세기 물리학자 데이비드 봄은 우주는 서로 분리된 조각들이 모여 구성된 것이 아닌, 나뉠 수 없는 하나로서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즉, 우주의 만물은 서로 껴안고 있는 연결된 상태로 존재하는데, 데이비드 봄은 이를 우주의 ‘숨겨진 질서’라고 이름하였다. 인간의 감각 기관을 통해 알 수 있는 우주는 너무나도 작아서 깊이 연결되어 있는 숨겨진 질서를 못 보기에, 마치 세상 만물이 각자 독립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더불어 하나의 입자가 둘로 나뉘어 백만 광년이라는 엄청난 거리로 떨어져 있어도 그중 하나의 입자에 변화가 생기면 나머지 입자도 그 변화를 감지한다고 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의 연결감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이론이 참으로 놀라웠다.

 


그런데 데이비드 봄의 이론을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과학과는 전혀 다른 분야지만 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로라 잭슨이라는 유명 심령가 강연을 인터넷으로 접하게 되었다. 그녀는 돌아가신 분들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강연 중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가르쳐주었다. 그녀는 사랑하는 내 가족이 세상을 떠났다 하더라도 나와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돌아가신 분은 저 세상에서 항상 우리를 느낄 수 있고 더불어 우리에게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주려고 한다는 것이다.

덧붙여서 그녀는 돌아가신 가족과 소통하는 간단한 방법 하나를 알려주었다. 바로 그분과 나만이 아는 어떤 특정 사인을 정해서 마음속으로 기도하듯 돌아가신 분에게 그 사인을 나의 일상 속에서 보여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그러면 머지않은 시간에 그 특별한 사인을 보여주실 것이라고 말이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갑자기 돌아가신 할머니가 보고 싶은 마음에 기도하듯 속삭였다. “할머니 그곳에서 편안하게 계시나요? 할머니께서 정화수 떠 놓으시고 항상 기도하셨던 북두칠성을 보여 주세요.”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후 나는 길을 걸으며 별생각 없이 지인에게 최근에 알게 된 로라 잭슨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런데 그 순간, 정말 믿기지 않게도 내 앞에 북두칠성 별들이 그려진 그림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혹자는 우연의 일치에 많은 의미를 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왠지 할머니가 저 세상에서 잘 계시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더불어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할머니와 계속해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깊이 감사했다.

혜민 스님 마음치유학교 교장



[출처: 중앙일보] [마음 산책] 삶의 신비함과 마주하는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