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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품격 강조했던 미셸, 이번엔 이 악물고 트럼프 비판

황태자의 사색 2020. 8. 19.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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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품격 강조했던 미셸, 이번엔 이 악물고 트럼프 비판

[중앙일보] 입력 2020.08.19 00:02 수정 2020.08.19 0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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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영 기자

2016년 7월과 같은 관중의 열렬한 환호와 박수는 없었다. 목소리 톤은 더 낮아졌고, 어조는 훨씬 차분했다. 하지만 메시지는 몇 배 강력했다. 17일(현지시간)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첫날 마지막 연사로 나선 전 영부인 미셸 오바마의 영상 연설 이야기다. 미셸은 “지금과 같은 어려운 시기에 정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이가 많은 것을 잘 안다. 하지만 나는 이 나라를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기에, 많은 이가 다치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이 고통스러워 오늘 밤 나오게 됐다”고 연설을 시작했다.

민주당 전대 마지막 연사로 나서
작심한 듯 센 어조로 트럼프 공격
“코로나 잘못 대응 많은 사람 숨져
재선된다면 미국은 더 큰 고통”
트럼프 “당신 남편은 제대로 일했나”

미셸은 4년 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 때도 연사로 나섰고, 누구보다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특히 그가 강조한 “그들이 저급하게 굴때 우리는 품격 있게 간다(When they go low, we go high)”는 모토는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실제 미셸은 당시 연설에서 도널드 트럼프라는 이름조차 꺼내지 않았다. 트럼프를 직접 공격하기보다는 비유적으로 비판했다. 트럼프의 선거운동 슬로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거론하는 대신 “누구든 당신에게 ‘우리가 다시 위대해져야 한다’고 말하도록 내버려두지 마라. 이 나라는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은 보디랭귀지부터 달랐다. 미소짓기보다는 심각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했고, 연설 도중 이를 악물고 두 주먹을 불끈 쥐기도 했다.

미셸은 “도널드 트럼프는 이 나라에 맞지 않는 대통령”이라고 규정한 뒤 코로나19에 잘못 대응하는 바람에 수많은 미국인이 목숨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그 일(대통령직)을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가졌지만, 분명 자기 능력 밖이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될 수 없다. 어쩔 수 없다(It is what it is)”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초 인터뷰에서 높은 코로나19 사망률에 대해 “어쩔 수 없다”고 해 큰 비판을 받았는데, 똑같은 표현을 써 역공한 것이다.

폭스뉴스 앵커 등 보수진영도 연설 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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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과 2020년 전당대회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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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그의 신조대로 ‘품격’을 잃지는 않았다. 18분27초간 연설하며 트럼프의 이름은 단 한 차례만 언급했다. 대신 트럼프 행정부 4년이 초래한 난맥상에 대한 의견을 엄마가 말하듯 쉬운 언어로 풀어냈다. 특히 정책보다는 트럼프의 인성과 능력에 초점을 맞췄다. “난 요새 공감이란 것에 대해 참 많이 생각한다. 어려운 사람을 보면 손부터 내미는 것, 우리 대부분은 자연스럽게 행동에 옮기는 일이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그것”이라는 식이었다.

미셸은 또 “품격 있게 간다는 것은 사악함, 잔인함에 맞닥뜨렸을 때 미소짓거나 듣기 좋은 말을 하라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가 신의 가호 아래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증오에 맹렬하게 맞서는 것이 품격을 지키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그는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할 경우 미국은 더 큰 고통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도 경고했다. 연설 말미에선 “이것 한 가지만 기억하자. 혹시라도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말해 주고 싶다”고 했다.

 


이어 “우리 삶이 마치 그에게 달린 것처럼 조 바이든(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투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이든에 대해선 품위 있는 사람이자 훌륭한 부통령이며 진실을 말할 것이라고 트럼프와 비교하며 치켜세웠다.

‘VOTE’ 목걸이 착용, 투표 독려 메시지

그는 유권자들을 위한 ‘행동지침’도 빠뜨리지 않았다. 미셸은 “오늘 밤 당장 우편투표 용지를 신청하라. 직접 투표할 경우 편한 운동화를 신고, 밤새도록 줄을 설 수도 있다는 각오를 하고 도시락도 싸들고 가라”고 했다. 미셸의 연설은 보수 진영에서조차 호평을 끌어냈다. 크리스 월리스 폭스뉴스 앵커는 “미셸 오바마가 백악관과 대통령으로부터 나오는 혼돈과 분열, 공감 부족을 언급함으로써 도널드 트럼프를 껍질 벗기고, 얇게 저미고, 깍둑썰기했다”고 평가했다. 이날 미셸은 ‘투표하라(vote)’는 알파벳 네 개로 장식한 목걸이를 착용해 눈길을 끌었다. CNN은 미셸이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보석업체 바이차리(BYCHARI)에서 이를 주문 제작했고, 약 300달러(약 35만원)라고 전했다.

트럼프는 곧바로 트위터로 반격했다. “제발 누가 미셸 오바마에게 ‘당신 남편 오바마가 일을 제대로 했다면 도널드 트럼프가 아름다운 백악관에 들어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좀 해달라. 오바마·바이든 행정부는 역사상 가장 부패했다”면서다. 또 “친절한 이야기 고마워요. 미셸”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4년 전 품격 강조했던 미셸, 이번엔 이 악물고 트럼프 비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