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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알이백을 어쩌시려구요?

황태자의 사색 2022. 2. 11.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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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알이백을 어쩌시려구요?

중앙일보

입력 2022.02.11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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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상 기자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구독

우크라이나 사태를 두고 유럽의 리더 국가인 독일이 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프랑스가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며 전면에 나서고 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오른쪽)이 7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을 찾아 푸틴 대통령과 일대일 대화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요즘 독일 체면이 말이 아니다. 우크라이나를 두고 러시아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 사이에서 자세가 어정쩡하다. 올라프 숄츠 총리의 실종 사태라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급기야 흑역사까지 소환됐다. 독일로부터 군사 지원을 거절당한 우크라이나가 "나치 점령으로 800만 명의 목숨을 잃은 우크라이나 민족에 대해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직격했다. 부랴부랴 약속한 것이 군용 헬멧 5000개. "다음엔 베개를 보내줄 거냐"는 조롱이 쏟아졌다. 10여 년 전 남유럽 재정위기 때 EU 열등생들을 세차게 몰아붙이던 리더 국가의 면모는 온데간데없다.

독일이 망설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에너지다. 독일은 천연가스 수요의 절반 이상을 러시아로부터 수입한다. 절대적으로 러시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가스관 밸브에 손만 얹어도 독일은 긴장한다. 발트해를 통해 러시아와 연결된 가스관 ‘노르트스트림’은 독일 경제의 생명줄이다. 생명줄 확대를 위해 ‘노르트스트림2’를 새로 깔았지만 개통을 앞두고 미국이 제동을 걸었다.

곤혹스러운 상황의 이면에는 재생에너지의 딜레마가 있다. 독일 발전량의 45%는 재생에너지에서 나온다. 탈원전·탈석탄 정책으로 의존율이 20년 사이 7배 이상 높아졌다. 올해 말까지 남은 원전 3기도 모두 폐쇄한다. 그러나 그만큼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목을 매게 됐다. 실제로 러시아는 수틀리면 에너지를 무기화한다. 인근 국가에 가스 가격 인상을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거부하면 밸브를 잠근다. 지난해 말에는 벨라루스와 폴란드를 거쳐 독일로 연결되는 ‘야말-유럽 가스관’을 틀어막아 가스값 폭등 사태를 유발했다. 미국이 유럽에 대한 액화천연가스 수출을 늘리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우리 정부는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을 60~70% 수준으로 올리겠다는 시나리오를 발표했다. 재생에너지의 최대 약점은 간헐성(날씨에 따른 들쭉날쭉한 발전량)이다. 날씨가 좋지 않거나 갑자기 전력 사용이 늘어나면 석탄발전이나 가스발전으로 부족분을 메워야 한다. 석탄 사용을 줄이겠다니 결국 가스를 더 쓸 수밖에 없다. 수소에너지 사용도 늘린다지만 이 역시 수입해야 한다. 이래저래 해외 에너지에 더 기대야 할 처지다. 정부는 장기적으로 중국·러시아와 연계한 동북아 그리드(전력망)를 깔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이들로부터 공급받는 전력이 혹시 볼모가 될 가능성은 없는지, 지금 유럽 정세가 묻고 있다.

대선후보 1차 TV토론에서 '알이백(RE 100)'이 화제가 됐다. 뜻밖의 시사상식 겨루기가 낯선 용어를 대중화(?)했지만, 정작 중요한 질문과 답은 없다. 이게 정말 가능한가.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인가. "2050년까지 기업이 쓰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자는 캠페인"이라고 정확하게 알았던들 뭐가 달라지는 걸까.

'RE 100'을 에너지 전환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로 보는 건 과잉이다. 이 캠페인에 참여하는 기업 349곳의 대부분은 유럽과 미국 국적이다. 비제조업이 80%를 넘는다. 그래서 제조업에서 벗어난 서구 기업의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비판도 나온다. 캠페인은 캠페인일 뿐, 재생에너지 100%는 불가능하다. 세계 곳곳에 배치된 데이터센터에 7일 24시간 안정적 전력 공급이 필요한 구글은 목표를 'CF 100'(카본 프리, 탄소 0)으로 틀었다.

'RE 100'이 친환경을 빙자한 은근한 무역 장벽이란 의심은 들지만, 그렇다고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이 마냥 무시하기도 힘들다. 계산해야 할 변수가 많은 복잡한 방정식이다. 국토가 좁고 바람과 햇빛이 약한 한국은 재생에너지에 유리한 환경이 아니다. 고립된 '에너지 섬'이라는 지정학과 에너지 안보도 계산에 넣어야 한다. 무조건 "재생에너지 확대"를 외칠 수도, "이딴 건 몰라도 돼" 하며 외면할 수도 없다.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알이백을 어쩌시려고요?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leehs@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