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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명저를 찾아서] 정조의 화성행차와 '원행을묘정리의궤'
1795년 정조의 화성행차
즉위 20년·어머니 회갑맞아
위업과시와 민심결집 위해
단행된 8일의 정치 이벤트
서적 `원행을묘정리의궤`
밥상 장식한 꽃의 숫자 등
행사 과정 꼼꼼히 정리해
후대에게 당시 현장 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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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5년의 화성 행차는 정조가 그동안 이룩했던 자신의 위업을 과시하고 신하와 백성들을 결집시키는 정치적 이벤트이기도 했다. 부모에 대한 효심을 표현하는 한편 자신이 추진하는 개혁에 더욱 박차를 기하기 위한 행사였다.
정조가 단행했던 8일간 행사의 전말은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라는 책으로 정리됐다. 현륭원에 행차했다고 해 '원행', 1795년이 을묘년이어서 '을묘', 정리자(整理字)라는 활자로 인쇄해서 '정리'라는 명칭이 책의 제목으로 붙여졌다. '원행을묘정리의궤'에는 7박8일의 공식 일정과 함께 당시 생활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내용들이 자세하게 기록돼 있다. 행렬의 모습을 담은 반차도에 나타난 인원만도 1779명이다. 현지에 미리 간 인원, 도로변에 대기하며 근무한 자를 포함하면 6000여 명에 달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새벽에 창덕궁을 출발한 일행은 노량진을 통해 배다리를 건너 노량행궁에서 점심을 먹었고, 저녁에 시흥행궁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휴식 시간에 간식을 먹거나 식사할 때 음식의 그릇 수, 들어간 재료와 음식의 높이, 밥상을 장식한 꽃의 숫자까지 기록했다.
둘째 날에는 시흥을 출발해 청천평에서 휴식을 취했고, 사근참행궁에서 점심을 먹었다. 장안문을 들어갈 때 정조는 갑옷 차림이었고, 이날 저녁 화성행궁에 도착했다. 셋째 날 아침 화성향교 대성전에 가서 공자에게 참배를 한 후 낙남헌으로 돌아와 화성 인근의 거주자를 대상으로 문과와 무과 별시를 거행했다. 문과 5인, 무과 56인을 선발했음이 기록으로 나타난다. 넷째 날 아침에 정조는 어머니와 함께 현륭원 참배에 나섰다. 남편의 무덤을 처음 방문한 어머니가 오열하는 모습을 정조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지켜봤다. 오후에 정조는 화성의 지휘 본부가 있는 서장대에 올라가 주간 및 야간 군사 훈련을 주관했는데, 5000명의 친위 부대가 동원됐다.
다섯째 날은 행차에서 가장 큰 의미를 띠고 있는 어머니의 회갑연이 거행됐다. '장수를 받는 전당'이라는 이름의 '봉수당(奉壽堂)'에서 거행된 잔치에서는 궁중 무용인 선유락(船遊樂)이 공연됐고 의식 절차, 잔치에 참가한 여자 손님 13명과 남자 손님 69명의 명단, 잔치에 쓰일 춤과 음악, 손님에게 제공된 상의 숫자와 음식까지 낱낱이 기록했다. 여섯째 날에는 화성의 백성들에게 쌀을 나눠주고, 오전에는 낙남헌에서 양로연(養老宴)을 베풀었다. 양로연에는 384명의 노인이 참가했는데, 정조는 노인들과 똑같은 밥상을 받았고, 지팡이를 선물로 내렸다.
공식 행사가 끝난 다음 정조는 화성 일대를 둘러봤다. 낮에는 화성에서 가장 경치가 뛰어났던 방화수류정을 살펴보고, 오후에는 득중정에서 활쏘기 시범을 보였다. 다음 날 정조는 오던 길을 돌아서 시흥에 도착해 하룻밤을 묵은 후, 마지막 날 노량을 거쳐 서울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정조는 아버지의 묘소가 마지막으로 보이는 고갯길에서 계속 걸음을 멈추며 부친과의 이별을 아쉬워했다고 한다. '지지대(遲遲臺·걸음이 느려지는 고개)'라고 불리는 이 고개 이름은 정조의 효심을 널리 기억하고 있다.
정조는 1795년에 단행한 화성 행차를 가장 장엄하게 추진하며 그동안 자신을 짓눌러오던 '죄인의 아들'이라는 굴레에서 확실히 벗어나는 한편, 화성 건설 및 개혁정치를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갔다.
당시 행차의 전 과정을 기록과 그림으로 철저하게 정리한 '원행을묘정리의궤'로 인해 우리는 그날의 현장에 직접 초대를 받은 것과 같은 행운을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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