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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의 공습…금융 대긴축 온다]풀린 돈 많고 보복소비 급증…정부 2%대 물가 관리 빨간불

황태자의 사색 2022. 2. 19.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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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의 공습…금융 대긴축 온다]풀린 돈 많고 보복소비 급증…정부 2%대 물가 관리 빨간불

중앙선데이

입력 2022.02.19 00:20

업데이트 2022.02.19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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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시민들이 쇼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0월 나온 미국의 올해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 전망치는 3.4%였다. 그런데 이 전망치는 불과 3개월이 지난 올 1월 들어 4.8%로 대폭 상향 조정됐다. 영국(3.3→4.6%)과 유로존(2.0→3.1%)도 마찬가지다(이상 영국 컨센서스이코노믹스 집계). 그만큼 인플레이션 국면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미국의 올 1월 CPI 상승률은 7.5%로 40년 만에 최고치였다. 한국도 물가 상승 압력이 거세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올 1월 CPI 상승률은 3.6%로 4개월 연속 3%대를 기록했다. 정부가 지난해 말에 제시했던 올해 목표치인 2.2% 달성이 어려운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연초부터 나오는 이유다.

홍남기 “물가 금방 잡히기 어려울 것”

정부도 상황을 심상찮게 보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8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물가가 상반기에 비교적 높고 하반기엔 완화된 기조로 가지 않겠냐는 게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대한 대체적 전망”이라며 상반기 물가 오름세를 경계하고 있다고 밝혔다. 홍 부총리는 “하반기엔 (CPI 상승률이) 2%대로 내려와 연간 정부 목표가 달성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면서도 “대외 여건을 보면 3월까진 (물가가) 금방 잡히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내부가 아닌 외부 요인에 의해 인플레이션이 심화되고 있어서 정부가 컨트롤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달 “저희가 봤던 것보다 물가 상승 압력이 상당히 세고 범위도 상당히 넓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국내 거시경제 컨트롤타워가 이구동성으로 강조할 만큼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거세진 배경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에서부터 살펴볼 수 있다. 당시 세계는 ‘얼마나 심각할지, 언제까지 지속될지’ 짐작조차 안 되는 팬데믹 공포에 휩싸이면서 봉쇄 조치와 함께 증시 폭락 등 경제 위기 징후와 맞닥뜨렸다. 팬데믹 시작 4개월 만에 미국 내 일자리 6000만 개가 없어지면서 ‘신(新) 대공황’이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이에 각국 정부는 긴급히 돈 풀기에 나섰다. 글로벌 공급망 붕괴 속에 기업들의 피해 최소화와 고용 수준 유지, 금융 불안 완화를 통한 가계 안정 등을 위해선 결국 유동성 공급이 사실상 유일한 해결책이어서다.

더구나 1910년대 스페인독감 이후 최악의 팬데믹이라 경기 부양을 위해선 그만큼 많은 유동성을 필요로 했다. 이에 미국 정부는 2020년에만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20%에 달하는 4조 달러(약 4800조원)의 재정을 네 차례 경기 부양책을 통해 지출했다. 그해 미국의 M1(협의통화·시중에 풀린 현금 또는 현금화가 바로 가능한 돈)은 단기간 35%대나 증가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미국의 M1 증가율이 16%대였음을 고려하면 유례가 없을 만큼 많은 돈이 풀린 것이다. 다른 주요국도 코로나19 관련 대규모 재정 지출에 가세하면서 2020년 세계적으로 풀린 돈은 13조 달러(약 1경5600조원)를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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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지난해 상반기에도 각국은 추가적인 재정 지출로 경기 위축을 억제했다. 하지만 그사이 코로나19 백신이 보급되고, 접종률이 높아지면서 팬데믹도 다소 누그러지자 각국 정부가 예상했던 것보다 경기 회복세가 두드러졌다. 유동성 파티가 이끈 부동산·암호화폐 등 자산 가치 폭등, 2020년 억눌렸던 소비가 한꺼번에 분출된 ‘보복소비’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하반기 들어 이런 흐름이 빨라지면서 2020년 -3.49%였던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5.7%로 37년 만에 최대 폭으로 성장했다. 그러는 동안 수요 급증과 공급 부족(공급망 대란)에 따른 주요 원자재 값 급등세가 동반됐다.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갈등 같은 지정학적 위기도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원자재의 값이 상승하면 그걸로 만드는 제품 값도 오를 수밖에 없다. 지금 같은 전방위적 인플레이션 국면이 나타난 배경이다. 이런 세계적 흐름은 한국으로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한은에 따르면 국내에서 전체 품목 458개 가운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년 동기 대비 2%를 웃돈 품목은 올 1월 239개로 절반이 넘었다. 1년 전인 지난해 1월엔 132개에 그친 바 있다. 특히 계절의 영향을 많이 받는 농산물이나 일시적 이슈로 가격이 급변하는 석유류 등을 제외하고 환경에 민감하지 않은 품목을 대상으로 산출하는 ‘근원물가’의 상승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올 1월에 3.0%가 올라 2012년 1월(3.1%) 이후 10년 만에 3%대로 올라섰다.

한은, 24일 CPI 상승률 전망 수정 발표

이 같은 근원물가 상승은 설령 공급망 문제 등 외부 변수가 개선되더라도 경기 회복세 등의 수요 측 요인에 따라 인플레이션 압력이 유지될 수 있음을 나타낸다. 이러다보니 정부가 난색을 표한 것 이상으로 올해 인플레이션 억제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고개를 든다. 한국개발연구원이 올 1월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경제 전문가 18명은 올해 국내 CPI가 2.7%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10월 설문조사 때와 비교해 0.6%포인트 오른 전망치다. 2011년 이후 11년 만의 3%대 상승을 점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메리츠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지난해 말 제시한 2.6%보다 높은 2.9~3.0%의 전망치를 내놨다.

이승훈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12월 가정했던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고 가정하고 올 1월 물가 상승분을 반영할 경우 연간 CPI 상승률이 2.9~3.0%에 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은이 오는 24일 올해 CPI 상승률 전망치를 수정해서 발표할 예정인 가운데 한은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관련 보고서를 낸 오강현 한은 조사국 물가동향팀 과장은 “최근 물가 상승 확산세는 과거 물가 급등기 수준을 상회하고 있다”며 “물가 상승률이 계속해서 목표 수준을 웃돌 경우 ‘기대 인플레이션’(기업과 가계 등 경제주체들이 현재의 정보를 바탕으로 예상하는 미래 물가 상승률)이 오르면서 추가 물가 상승 압력을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물가 안정에 힘쓰는 한편,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까지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나서야 하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오 과장은 특히 외식 물가 상승세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전체 39개 외식 품목 중 커피를 제외한 38개 품목의 가격이 1년 전보다 올랐고, 올 1월엔 커피 값도 오르면서 34개 품목 가격이 3% 이상 인상됐다. 이렇게 나온 올 1월 외식 물가의 평균 상승률은 전월 대비 1.0%로 1998년 이후 최고치였다. 외식 물가는 근원물가에 영향을 많이 주는데, 최근 수요 회복과 재료비 인상 등에 따른 추가 상승 압력이 세고 하방 경직성도 커서 올해 오름세가 이어질 공산이 크다고 오 과장은 덧붙였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