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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정영학, 방대한 녹취록에 다 담았다

황태자의 사색 2022. 3. 3.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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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정영학, 방대한 녹취록에 다 담았다

중앙일보

입력 2022.03.03 00:37

업데이트 2022.03.03 00:54

지면보기지면 정보
오병상 기자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구독

녹취록으로 본 대장동 사건

오병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대장동 관련 녹취록이 도대체 뭐길래… 대선 막판까지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을까?

대장동 의혹이 표심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의미다. 유권자 입장에선 혼란스럽다. 녹취록을 객관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정영학은 왜 녹취록 만들었나

오병상의 퍼스펙티브

녹취록을 만든 사람은 정영학(54) 회계사다. 대장동 핵심공범이다. 다른 핵심공범 3명은 화천대유 대주주인 김만배(56) 전 머니투데이 기자, 화천대유4호 소유주 남욱(49)변호사, 그리고 이재명의 측근으로 알려진 유동규(53)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이들이 녹취록의 등장인물이다.

그럼 정영학씨는 왜 녹취록을 만들었을까. 가장 억울해하고, 가장 불안에 떨었던 당사자이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공범들도 놀란 엄청난 수익
분배갈등이 공범간 싸움 초래
살아 남으려고 녹취한 정영학
대선 이후라도 진상 규명해야

녹취록 곳곳에서 정영학씨는 그 바닥에선 소문난 ‘최고의 기술자’라 인정받는다. 김만배씨와 남욱씨는 서로 정영학씨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애를 쓰며, 구체적인 사업추진 방식을 일일이 자문한다.

그런데 정영학씨는 이익분배 과정에서 본인이 ‘가장 손해 봤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지분을 뺏기고 비용을 억울하게 부담한다. 김만배씨는 정영학을 위로하면서 다독거린다. 대신 두 사람은 남욱씨를 욕한다.

또 정영학씨는 기술자답게 성격이 꼼꼼하고 소극적이다. 몸을 사려 잘 나서려 하지 않는다. 골프도 치지 않고 술자리에도 잘 어울리지 않는다. 처벌에 대한 걱정이 많아 손해를 감수한다. 반면 김만배, 남욱, 유동규씨 등은 말투가 거칠고 공격적이다. ‘같이 감방 가자’는 식이다.

대장동 주요 타이밍 담은 녹취록

정영학씨가 지난해 9월 대장동 사건이 터지자마자 검찰에 제출한 녹취록은 방대하다. 직접 메모한 노트 6권과 사건요약 도표, 녹음기 3대, 파일을 담은 USB까지. 전체 녹음파일이 130개, 약 150시간 분량.

2013년, 2014년 녹취가 대부분이다. 2019년, 2020년 녹취도 꽤 있다. 두 시점은 대장동 사건에서 결정적인 순간들이다.

2013년은 남욱·정영학씨가 위례신도시 개발사업을 마무리하면서 신사업(대장동) 로비를 한창 벌이던 무렵이다. 이들은 위례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상황에서, 진짜 대박(대장동)에 몰두한다. 남욱씨가 유동규씨를 자주 만나 술을 산다. 그리고 전날 밤 로비 결과를 다음날 정영학씨에게 설명해주면서 ‘이렇게 맞춰 사업계획을 짜달라’고 당부한다.

2014년 이재명 시장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사업의 윤곽이 거의 다 정해졌다. 그래서 남욱씨가 2014년 11월 5일자 녹취록에서 “4000억 도둑질 완벽하게 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남욱씨는 “이거 문제 되면 게이트 수준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도배할 거다”라고 말한다.

2019년, 2020년 녹취는 정영학씨가 불안을 느끼면서 시작됐다. 2019년부터 비용부담 문제로 남욱씨와 김만배씨가 다투기 시작했다. 소문이 점점 퍼지기 시작했다. 중간에 불안해진 건 정영학씨다. 사건이 터지자 곧바로 검찰을 찾아가 녹취를 내놓는다. 덕분에 핵심공범 4명 중 유일하게 구속되지 않았다.

대장동 사건 종합판, 노래방 녹취록

녹취록 중 종합판은 2020년 10월 30일 성남 노래방 3자(김만배, 유동규, 정영학) 대면이다.

김만배씨와 남욱씨 사이에서 공통비용 분담을 두고 다툼이 심각해지자 유동규씨가 중재에 나선 상황이다. 유동규씨는 남욱씨와 먼저 만나 입장을 듣고 왔다. 정영학씨는 김만배 편으로 동석했다. 유동규씨가 이것저것 물어보고 김만배씨가 전후 사정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대장동 사건의 윤곽이 드러난다.

대장동 총수익 5300억원. 화천대유 직원 16명에 입막음용으로 280억원 지급 예정. 그중 곽상도 전의원 아들에게 50억원 지급 예정. 곽상도 외 5명에게 50억원씩 줘야 한다며 세칭 ‘50억 클럽’ 언급.

김만배씨는 “천화동인 1호 내 것이 아니다. 남들은 다 네(유동규) 걸로 안다”고 말한다. 김만배씨는 유동규씨에게 “700억원 챙겨준다”고 얘기하면서 정영학씨와 “안전한 전달 방법”을 협의한다. 그중 하나가 유동규씨가 만든 회사의 비상장주식을 비싸게 사주는 방식. 실제로 유동규씨는 ‘유원홀딩스’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이재명은 어떻게 연관됐나

대장동 의혹이 당시 성남시장 이재명 후보와 연관됐다는 얘기는 오래전부터 나왔다. 그러다 지난해 10월 녹취록에서 김만배씨가 얘기한 ‘그분’이란 표현이 이재명 후보를 지칭한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추측이 난무했다.

그러나 녹취록에 이재명 후보가 직접 등장하진 않는다. 유동규씨가 얘기한 것을 남욱씨가 전달하는 과정에서 언급된다. 대표적인 예가 2013년 4월 17일 녹취록. 유동규씨가 “시장님(이재명)이 그림까지 그려주며… 천억만 있으면 되잖아… 그러면 대장동이든 뭐든 관심 없어. 니가 알아서 해”라고 말했다는 대목이다. 그러니까 유동규씨가 “천억원을 만들어주면 대장동 사업의 편의를 다 봐줄 수 있다”고 남욱씨에게 제안한 셈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개발이익 공공환수 차원’이라고 반박했다.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개발업자들이 맘대로 하도록 돕겠다’는 말이 안 된다.

실제로 노래방 녹취록에서 유동규씨가 “너무 많이 남은 거 아닌가”라고 묻자 김만배씨는 “얘(정영학)가 많이 남겼지. 내가 이렇게 남기면 안 된다고…”라고 말한다. 공범들끼리 ‘과잉 수익’을 걱정할 정도다.

이재명 시장이 2013년 ‘1천억’을 얘기했는데, 2014년 남욱씨는 ‘4000억 도둑질’이라고 말했고, 2020년 노래방에서 정영학씨는 ‘5300억 남았다’고 말했다. 물론 화천대유가 시행을 맡아 분양할 아파트에서 나올 수익은 계산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이런 천문학적 이익이 가능했던 것은 성남도시개발공사(사장대행 유동규)가 화천대유에 여러 차례 특혜를 주었기 때문이다. 땅을 헐값에 수용해줬고, 분양가상한제도 적용하지 않았고, 초과이익환수도 하지 않았고, 택지를 싸게 수의계약해주었다.

결과적으로 유동규씨 얘기가 맞아떨어진다. 그러나 이재명 후보를 수사하려면 ‘인의 장벽’을 두 번 넘어야 한다. 하나는 유동규. 다른 하나는 정진상 민주당선대위 부실장(당시 성남시 정책실장)이다. 남욱씨 진술에 따르면, 김만배씨는 물론 유동규씨도 정진상씨를 통해 시장과 소통했기 때문이다.

윤석열은 어떻게 연관됐나

윤석열 후보는 김만배씨와 연관돼 논란이 되고 있다. 오랜 검찰출입기자 김만배씨가 몇 차례 윤석열 후보를 ‘잘 안다’며 언급했다.

지난 1월 유튜버 열린공감TV가 “(김만배씨가) 윤석열은 내가 가지고 있는 카드면 죽어. 지금은 아니지만”이라고 말한 녹취록을 공개했다. 김만배씨가 정영학씨에게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는 대목에서 나온다. 카드가 뭔지는 얘기하지 않는다.

이어 2월 20일 민주당 우상호 총괄선대본부장이 “(김만배씨가) 영장 들어오면 윤석열은 죽어”라고 말한 녹취록을 공개했다. 전후 맥락을 보면, 윤석열 후보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구속해 판사들이 싫어하며, 그래서 법원에 영장 신청하면 구속된다는 얘기다. 대장동과 직결되는 내용은 아닌 셈이다.

윤석열 관련으로 많이 나온 얘기는 부산저축은행수사 봐주기 의혹이다. JTBC는 2월 21일 남욱씨의 검찰 진술 내용을 인용해 문제를 제기했다. 2011년 부산저축은행 불법대출 관련자 조모씨가 검찰에 수사받으러 갈 당시 김만배씨가 “커피 한잔 마시고 오면 된다”고 말했는데, 실제로 주임검사(윤석열)가 커피 타줬고, 대장동 질문은 없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윤석열은 관훈토론에서 장시간 설명했다. 당시 조모씨는 뇌물 심부름한 단순 참고인이었고, 대장동 사업은 시작도 안 된 시점이었기에 물어볼 것도 없었다는 주장이다.

녹취록 얼마나 믿을만하나

녹취록의 대부분은 김만배·남욱씨가 정영학씨에게 설명해주는 내용이다. 당연히 김만배·남욱씨의 주관이 들어가 있다. 특히 김만배씨는 자신의 영향력(검찰과 성남시 상대 로비)을 과시해 지분을 더 챙겨야 하는 입장이다. 과장이 많아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하지만 정영학씨는 녹취록을 제출한 이후 조사과정에서 복잡한 전후 맥락과 수십 명 등장인물을 소상히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범계 법무부장관이 지난달 법사위에서 “대장동 관련 사법처리의 기초는 녹취록”이라고 밝힐 정도다.

대장동 사건은 공범들 스스로 “게이트 수준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도배할 사건”(남욱), “불꽃 한번 터지면 누구도 못 막는다”(유동규)고 걱정할 정도의 초대형 범죄다. 녹취록 자체가 진실은 아니지만, 진실을 밝히는데 충분할 정도로 방대하다. 대선 이후라도 진상 규명은 가능하며 불가피하다.

오병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