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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달러·디지털 유로… 미·중·EU, CBDC 속도 낸다

황태자의 사색 2022. 3. 3.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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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달러·디지털 유로… 미·중·EU, CBDC 속도 낸다

[김기훈 전문기자의 Special Report]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

입력 2022.03.03 03:00
 
 
 
 
 

미국·중국·유럽연합(EU) 등 전세계 중앙은행들의 디지털 화폐(CBDC)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종이와 동전으로 발행되는 현재의 화폐 형태에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디지털 법정 화폐를 추가하려는 움직임이다. 미국은 오랜 연구 끝에 최근 ‘디지털 달러’에 관한 보고서를 냈고, 중국은 ‘디지털 위안’의 시범 실시 지역을 확대중이다. EU(유럽연합)도 지난해 본격 연구에 착수해 내년에 도입 여부를 결정할 전망이다. 신흥국 중에는 벌써 디지털 화폐를 법정화폐로 도입하는 국가들이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는 개인 금융거래 정보의 중앙은행 집중, 민간은행 역할 위축, 달러 중심 체제의 재편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논란도 벌어지고 있다.

디지털화 흐름 탄 CBDC

현재의 화폐 시스템은 중앙은행이 지폐나 동전을 발행해 민간은행에 주면 민간은행들이 그것을 금융소비자에게 대출해 주는 방식이다. 이에 반해 CBDC 방식은 개인들이 스마트폰이나 PC에 중앙은행의 디지털지갑 앱을 깔고 중앙은행에 계좌를 트면 중앙은행이 직접 그 곳에 디지털 화폐를 입출금 시키는 개념이다.

CBDC 논의는 2015년쯤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시작됐다. 2017년 이후 캐나다, 네덜란드, 영국 등의 중앙은행들이 기술 실험을 하기는 했으나 도입에는 신중한 편이었다. 그러던 중 2019년에 페이스북(현 메타플랫폼즈)이 글로벌 거래가 가능한 스테이블코인(달러에 연동된 암호화폐) 발행 계획을 발표하고, 2020년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디지털 위안’의 시범 운영에 들어가면서 논의가 급진전되고 있다.

속도 높이는 각국 중앙은행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지난 1월 20일 CBDC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디지털 달러’ 발행을 향한 첫 걸음을 내디뎠다. 연준은 보고서에서 은행 등을 통해 디지털 달러를 중개하는 것을 포함해 여러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다. 또한 보스턴 연방준비은행과 MIT(메사추세츠공대)는 2월 초에 1초당 170만건의 거래를 처리할 수 있는 CBDC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공개하면서, 디지털 달러를 시행할 수 있는 기술 토대는 미국에 이미 충분히 깔려 있다고 밝혔다.

중국 인민은행은 CBDC에서 가장 앞서가고 있다. 2020년 10월 이후 선전·쑤저우·베이징·홍콩 등에서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CBDC 공개 시범 운영을 실시중이다. 지난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는 세계 각국 참가자들을 상대로 홍보 작업에 열을 올렸다. 주요 국가 중 최초로 2022년 중 도입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도 지난해 7월에 2년 기한으로 ‘디지털 유로’ 프로젝트에 공식 착수했다. 이 검토 결과를 토대로 2023년에 디지털 유로의 도입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스웨덴은 지난해부터 가상환경에서 디지털 화폐인 ‘e-크로나’ 테스트 작업을 하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달 암호화폐 채굴을 금지하면서 동시에 CBDC 실험에 들어갔고, 인도는 2023년까지 정부가 허가한 전자지갑에서 CBDC를 유통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신흥국들은 더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바하마(2020년 10월), 동카리브(2021년 3월), 나이지리아(2021년 10월)는 이미 CBDC를 도입해 사용중이다.

국제 송금이 쉬워진다

중앙은행들이 디지털 화폐 발행에 나서는 이유는 ①현금 이용이 감소하면서 대안 화폐가 필요하고 ②민간 암호화폐 기업들이 넘쳐나면서 사기와 파산 피해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또 ③알리페이와 텐센트 같은 빅테크 기업들이 민간 화폐시장을 독점하면서 부작용이 우려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의 생각은 제각각이다. 금융 인프라가 낙후된 신흥국들은 더 많은 국민들이 금융계좌를 갖고 금융 서비스를 받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반면, 선진국들은 디지털 화폐를 도입하면 국제 송금의 시간을 단축하고 수수료를 대폭 낮출 수 있기 때문에 자국 통화의 국제적 위상을 공고히 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이주노동자 비중이 높은 소말리아, 엘살바도르, 네팔, 우즈베키스탄, 파키스탄의 경우 GDP(국내총생산) 대비 본국 송금액 비중이 9.9~35.3%에 이르는데, 은행을 통할 경우 송금액의 10%를 수수료로 내야 한다. 따라서 디지털 달러가 보편화되면 달러 사용이 늘어나고 심지어 일부 신흥국 통화를 대체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 투자은행인 코웬의 재럿 시버그 애널리스트는 “디지털 달러가 도입되면 달러가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반해 중국은 유라시아 지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 등을 통해 디지털 위안 사용이 확대되면 위안화 기축통화 만들기 작업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개인 사생활 침해 우려

CBDC는 현재의 화폐 체계를 대개혁하는 만큼 문제점도 안고 있다. 첫째, 사람들이 민간은행보다는 안전한 중앙은행에 예금하려고 하기 때문에 민간은행의 영역이 위축된다. 둘째, 금융거래 정보가 중앙은행에 집결되면서 자금세탁이나 불법거래 가능성은 줄어들지만, 정부가 개인들의 금융 사생활까지 모두 파악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금융전문가들은 CBDC가 시행되더라도 현금 사용을 병행해야 사생활 보호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한국은행은 “금융 사생활 보호를 위해 무기명 선불카드와 유사한 오프라인 CBDC를 발행하는 방안, 개인들이 별도의 CBDC 전용 아이디를 사용하는 방안, 금융거래 데이터를 중앙은행 외의 제 3자가 별도로 관리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다”고 말했다.

“현금 사용 병행해야 금융 프라이버시 보호”

최공필 온더 디지털금융연구소장

CBDC(중앙은행 디지털 화폐) 전문연구기관인 ‘온더’의 최공필<사진> 디지털금융연구소장은 ‘디지털 원화’가 도입되더라도 현금 사용과 민간은행의 역할이 유지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최 소장은 “CBDC는 경제의 디지털화 흐름에 비추어 볼 때 중앙은행이 갈 수밖에 없는 길”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최공필 온더 디지털금융연구소장

최 소장은 “CBDC가 도입되면 개개인들이 모바일이나 PC로 중앙은행에 은행계좌를 열고 직접 거래할 수 있게 된다”며 “개인들의 금융거래 정보가 중앙은행에 집중되면서 프라이버시(사생활) 보호 문제가 등장하게 된다”고 말했다. 프라이버시 보호뿐 아니라, 디지털 시스템 접근이 원활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서도 현금 사용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소장은 또 민간은행들이 갖고 있는 금융서비스의 효율성도 유지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사람들이 중앙은행과 직접 거래를 하게 되면 민간은행보다 더 안전한 중앙은행을 이용하려고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때문에 민간은행의 예금액이 줄어 은행들의 다양한 대출 서비스 기능도 위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 소장은 “현재 민간은행들은 고객 서비스와 대출 부문에서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기 때문에 가계나 중소기업과 밀착된 부문에서는 중앙은행과 민간은행이 손잡고 함께 가면서 민간은행의 혁신 능력을 유지하는 디지털 원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가 특히 위력을 발휘하는 대목은 국제 송금 부문이라고 강조했다. 송금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단축할 수 있고, 많은 사람이 인터넷을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통일된 하나의 블록체인망을 쓰면 전 세계 송금이 훨씬 간단해지지만 각 중앙은행들의 생각이 모두 달라 각개약진하는 양상”이라며 “각 중앙은행 시스템 간에 호환이 가능해져 완전한 형태의 글로벌 디지털 통화 체제가 갖춰지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중앙은행이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활용해 발행하는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형태의 디지털 화폐. 민간인들이 중앙은행 앱에서 디지털 지갑과 계좌를 만든 뒤 중앙은행과 직접 거래할 때 사용된다. 2015년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이 발행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이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