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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부 격차, 사회불안 커진 아테네
솔론은 기원전 7세기 후반 아테네의 위기가 불러낸 정치인이었다. 이 무렵 아테네를 포함한 아티카 지역의 소농층은 몇 해 동안의 기근과 인구 증가로 인한 토지 부족 때문에 파산 상태였다. 소수 부자들의 상황은 정반대였다. 이들은 늘어나는 해상무역과 상거래 등에 힘입어 부를 축적했다. 새로 도입된 화폐 역시 부의 유동성을 높임으로써 빈부 격차를 심화시켰다. 많은 사람이 빚을 갚지 못해 노예 신세로 전락하거나 외국의 노예로 팔려나갔다. 아들과 딸을 팔아넘기는 부모들도 생겨났다. 소농층의 불만은 폭발 직전이었고 귀족들마저 위기의 심각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솔론이 남긴 시에는 당시의 위기 상황이 이렇게 그려져 있다. “수호여신 아테네가 높은 곳에서 두 손을 펼치신다. 하지만 시민들 자신이 돈에 마음을 빼앗겨 어리석음으로 위대한 도시를 망치려 한다. 대중의 지도자들도 생각이 부정하니, 이들은 커다란 오만이 낳을 온갖 고통을 피할 길 없구나. … 피할 수 없는 상처가 벌써 온 도시에 퍼졌다. 도시는 순식간에 끔찍한 노예 상태에 떨어지고 혈육 간의 불화와 잠든 전쟁을 깨워 일으켜 많은 이들의 소중한 삶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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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첫 조치는 부채 탕감이었다. 농민에게 빼앗긴 자유를 되찾아주는 일만큼 시급한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 몸을 담보로 해서 돈을 빌릴 수 없게 만들었다. 농민들 자신뿐만 아니라 저당 잡힌 농토도 해방되었다. “저당 잡힌 땅에서 곳곳에 박힌 경계석들을 치워버렸다. 지난날 노예였지만 지금은 자유다.” ‘땅의 해방자’ 솔론은 개혁의 성취를 이렇게 자랑했다. 큰 잘못 없이 벼락거지가 된 사람들의 가산(家産)에 붙은 차압 딱지를 모두 제거한 조치였다.
부채 탕감, 참여정치 확대 ‘개혁’
솔론이 단행한 개혁은 그 밖에도 수없이 많다. 피해의 당사자가 아닌 제3자도 타인이 입은 피해를 고발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한 것도 그중 하나이다. 모든 시민이 하나의 공동체 정신을 갖도록 하기 위한 제도였다. 여성의 권익 보호를 위한 법도 도입했다. 결혼 지참금을 없애고 신부가 옷 세 벌과 약간의 세간 외에 다른 것을 가져오지 못하게 한 법이 한 가지 사례이다.
솔론은 또 시민들에게 “중용을 소중히 하라”고 권고하면서도 도시의 내분 상황에서 무기를 들어 양쪽 중 어디에도 가담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불명예를 주거나 국가의 공직에 참여하지 못하게 했다. 얼핏 보면 이 요구는 솔론 자신이 강조한 중용의 정신에 어긋나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강조한 중용이 적당한 타협이나 거리 두기가 아니라 가능한 것들 가운데 최선의 선택을 강제하는 덕목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솔론의 개혁’은 당시 아테네인들에게 환영을 받았을까? 물론 우리는 대답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가난한 사람들과 부자들 모두 그의 개혁에 불만을 토로했다. 대중은 그가 모든 것을 재분배하기를 원했고, 부자들은 개혁이 지나치다고 불평하면서 옛 질서로 돌아가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솔론의 부채 탕감 조처를 비난하는 뒷소문도 떠돌았다. 탕감 계획에 대한 정보를 미리 입수한 그의 몇몇 친구가 다른 사람들에게 빚을 내어 엄청난 땅을 사들여 부동산 이익을 보았다는 소문이었다.
하지만 후대 정치인들이나 철학자들에게 솔론은 개혁의 아이콘이자 민주정의 아버지로서 추앙받았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의 정체’에서 ‘솔론의 개혁’이 갖는 민주적 측면을 세 가지로 꼽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몸을 담보로 돈을 빌리지 못하게 한 것, 둘째는 억울한 사람들을 위해 원하는 사람이 구제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한 것, 셋째는 배심원 재판에서 상소심 재판을 하게 함으로써 대중의 힘을 강화한 것이다.
‘선한 개혁’이 ‘선한 평가’ 받았나
솔론의 시대나 지금이나 사회적 위기의 양상이나 위기 극복을 위한 개혁의 본질은 다르지 않다. 개혁 정책에 대한 대중의 반응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솔론은 권력의 자리를 떠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그들은 한때 내게 엄청난 기대를 걸더니, 지금은 화가 나서 나를 원수처럼 노려본다.” 전체 시민의 기대 속에 선출된 정치가의 운명이 그랬으니, 절반가량의 지지를 받고 선출된 새 대통령의 5년 뒤 운명은 어떨까? 솔론을 불러내어 조언을 구한다면, 그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무슨 말을 할까? 지혜로운 솔론은 새로운 정치를 위한 장황한 조언 따위는 하지 않을 것 같다. 좋은 정치와 올바른 개혁의 길은 그의 행동이 이미 보여주었으니까. 게다가 솔론의 개혁은 우리가 현실 정치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과 정치가들이 대중에게서 예상해야 할 것을 모두 보여준 셈이 아닌가. 지나친 기대와 열광이 아니라 냉정한 현실 인식과 분별이 덜 실망스러운 정치, 더 나은 정치를 낳는 힘이 아닐까?
조대호 연세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