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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데스크] 맥도널드 떠난 러시아, 고립된 푸틴
냉전종식 상징 맥도널드
러 경제고립 상징으로 변해
예스맨에 둘러싸인 푸틴
미래세대에 큰 짐 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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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널드는 정치 이론까지 만들어냈다. 미국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저서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맥도널드 로고를 딴 '분쟁 예방에 관한 황금 아치 이론(Golden Arches Theory of Conflict Prevention)'을 주장했다. 맥도널드가 진출한 나라 사이에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가설이다. 맥도널드가 진출하려면 미국의 적대국이 아니어야 하고, 맥도널드 햄버거를 사먹을 수 있을 정도의 구매력을 갖춘 중산층이 두꺼워야 한다. 전쟁을 통해 얻을 것보다 잃을 게 많은 중산층이 늘어나면 전쟁을 피하려는 여론이 강해지기 때문에 맥도널드 진출국끼리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프리드먼은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이후 이 이론을 글로벌 공급망의 일부인 두 나라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분쟁 예방에 관한 델 이론(Dell Theory of Conflict Prevention)'으로 업데이트했지만 이 이론 역시 유효하지 않음이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다시 한번 드러났다. '황금 아치' 이론은 인간이 경제적이고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는 경제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그는 옛 소련 제국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서라면 햄버거쯤은 포기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2022년 겨울 러시아인들은 맥도널드 앞에 다시 줄을 섰다. 마지막 '해피밀'을 주문하며 역사의 한 장면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을 광고에 등장시켰던 피자헛과 이미 러시아 중산층 생활의 일부가 된 스타벅스, 아이폰, 이케아도 러시아를 떠났다. 맥도널드 햄버거를 먹고, 이케아 가구를 사고, 아이폰을 업그레이드하려던 러시안들은 계획을 변경해야 했다.
단순히 소비 패턴을 바꾸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러시아 경제·금융망은 세계와 단절됐다. 러시아산 석유·가스 금수조치가 이어졌고, 루블화 가치는 폭락했다. 러시아인들은 현금인출기(ATM) 앞에 줄을 서야 했고, 소금과 설탕마저 사재기하고 있다. 이미 큰 타격을 받은 경제 회복을 위해서는 다음 세대의 희생이 필요할 것이다. 국제금융협회(IIF)는 올해 러시아 경제성장률이 -15%로 추락하고, 러시아 경제가 15년 전 수준으로 후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럽부흥개발은행(EBRD)도 전쟁이 끝나고 제재가 풀리더라도 침체는 장기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경제를 희생한 대가로 벌인 전쟁에서 승전고가 울려퍼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월등한 전력에도 불구하고 빠른 승리를 거두지 못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도시들을 포위해 민간인을 공격하고 있다. 개전 이후 지난달 말까지 목숨을 잃은 민간인은 1000명이 넘고, 다친 사람도 2000명에 육박한다.
러시아군은 지쳤고, 물자도 부족하다. 슬라브족과의 동족상잔을 예상하지 못했던 러시아인들마저 반전시위에 나서고 있다. 세계 여론도 우크라이나 편이다.
더 큰 문제는 푸틴이 이런 상황을 제대로 보고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푸틴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고립을 자처했고, 역사에 몰두하며 전쟁을 준비했다. 개전 후에도 그는 '예스맨'들에 둘러싸여 있다고 미국 정보당국은 분석했다. 쿠데타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상황에서 푸틴은 아무도 쉽게 믿을 수 없을 것이고, 고립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맥도널드의 러시아 철수는 고립된 푸틴을 기다리는 또 다른 암울한 전쟁의 신호탄일지 모른다.
[이은아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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