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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이 지난 지금 보이스피싱은 근절되기는커녕 우리 사회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는 3만982건이었고, 피해액은 7744억 원으로 웬만한 시군의 1년 예산과 맞먹었다. 17분마다 1명이 보이스피싱에 속아 약 2500만 원을 날린다.
이제 보이스피싱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상적 재난에 가깝다. 어르신이나 사회 경험이 부족한 젊은이가 잘 속아 넘어간다는 것도 오해다. 50대 피해자가 가장 많고, 다음이 40대다. 피해 건수는 2018년 이후 3만 건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다. 집안이 풍비박산 나거나 극단적 선택을 하는 피해자들이 끊이지 않는다.
통장 발급 절차를 강화하고, 인출을 지연시켜 수거 통로인 금융계좌를 옥좼더니 전달책이 피해자를 직접 만나 돈을 가로채는 방식으로 수법을 변경했다. 지난해의 경우 피해자의 3분의 2가 이 방식에 당했다. 일자리를 준다는 꼬임에 넘어가 전달책으로 활동하다가 중벌을 받는 젊은이도 적지 않다. 가족 전화번호로 발신한 것처럼 보이게끔 전화를 걸어 납치를 가장하는 수법도 등장했다.
경찰이 ‘공공기관은 전화로 금융정보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백날 홍보해도 소용없다. 역학조사관 사칭 보이스피싱이 활개를 치는데, 실제로 서울 일부 보건소가 ‘재택치료자 물품지원비’를 지급한다며 문자로 통장 사본 등을 보내라고 요구한 사실이 본보 취재로 드러나기도 했다.
중국, 필리핀 등에 있는 보이스피싱 상부 조직이 건재한 상태에서는 피해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경찰이 현지 당국과 공조 속에 해외에서 조직 총책을 검거했다는 소식이 가끔 전해지지만 전체 피해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현지 치안당국이 적극 나서도록 외교적으로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조직원 상당수가 한국인이라는 것도 약점이다. 그러나 조직 총책은 중국 국적이 다수라고 한다. 사기범들이 한국에 머물면서 해마다 수천억 원을 중국인으로부터 가로챈다고 치자. 중국은 진작 ‘다 때려잡으라’고 한국 정부를 압박하지 않았을까.
조종엽 사회부 차장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