代이은 한국사랑… ‘전쟁영웅’ 웨버대령 손녀 6 ·25기념사업 앞장
“美의 진정한 동맹” 代 이은 한국 사랑
“아버지는 한국을 미국의 진정한 동맹(ally)이라고 생각하셨어요. 한국의 발전을 자신의 일인 것처럼 자랑스러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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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현지 시각) 별세한 6·25 전쟁 영웅 윌리엄 웨버(97) 미 예비역 육군 대령의 딸 배스 웨버씨는 10일 본지 전화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한국을 다시 찾고 싶어 했다. 그만큼 한국을 진심으로 사랑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미 공수부대 대위로 6·25전쟁에 참전한 웨버 대령은 1951년 중공군의 수류탄과 박격포 공격에 팔과 다리를 잃어가며 원주 북쪽 324고지 전투를 이끌었다. 퇴역 후에는 6·25전쟁과 참전 군인의 무공을 미국 사회에 널리 알리는 데 평생을 바쳐 전쟁 영웅으로 불린다.
배스씨는 “아버지의 업적과 활동은 나뿐만 아니라 나머지 가족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며 “한국에 대해 더 잘 아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웨버 대령의 손녀인 데인 웨버(32)씨는 5세 때인 1995년 할아버지를 따라 워싱턴 DC의 한국전 참전 용사 기념비 제막식에 참석했다. 호주에서 열린 6·25 행사에도 함께했다. 대학생이 된 후에는 6·25전쟁 참전 용사 후손들의 봉사 모임인 ‘한국전 참전 용사 청년봉사단’(KWV Youth Corps) 회장으로 활동했다. 데인씨는 과거 본지 인터뷰에서 “할아버지는 ‘팔과 다리를 잃었지만 내가 믿는 것을 위해 싸웠고, 그 노력이 헛되지 않았기 때문에 참전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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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관련 자료를 발굴하고 참전 용사 후손들의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도 했다. 지난 2월에는 한미 동맹과 관련된 행사에 참석해 “미국의 젊은 세대에게 6·25전쟁을 널리 알리는 활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웨버 대령의 ‘한국 사랑’이 3대(代)째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딸 배스씨는 전화 통화에서 “아버지는 정말 건강하셨다. 지금도 떠나신 게 믿기지 않는다”며 “97세 고령에도 올여름에 한국을 방문할 계획을 짜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는 바뀐 한국의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어 했다”며 “마지막까지 한국을 생각하신 것”이라고 울먹였다.
웨버 대령은 지난해 6월 기자와 세 차례 화상과 전화로 인터뷰했을 때 자신이 부상했던 ‘원주 전투’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했다. 그는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 70년 전의 상황을 이같이 묘사했다. “1951년 2월 전략적 요충지인 원주 고지를 지키기 위해 매복했다. 이튿날 새벽 중공군이 호각과 나팔 소리를 울리며 진격해왔다. 기습 공격으로 한 차례 중공군을 격퇴했지만, 수백명의 중공군이 끊임없이 몰려왔다. 그러던 중 참호에 중공군 수류탄이 날아들었다. 급히 오른손으로 잡아 밖으로 던지려 했을 때 수류탄이 폭발했다. 오른쪽 팔이 날아갔지만, 계속 전투를 지휘했다. 다음 날 참호에 박격포탄이 떨어져 오른쪽 다리도 부상당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혹한(酷寒)은 흐르던 피가 얼어서 굳어버릴 정도로 끔찍했다.” 이 전투에서 중대원 42명이 전사하고 64명이 다쳤다. 그의 부대는 사흘간 방어 끝에 중공군을 몰아냈다. 미국으로 후송된 그는 1년여 입원했고, 1군 사령부 부관으로 복귀했다. 이후 베트남전에도 자원해 참전했다.
1980년 전역한 웨버 대령은 이후 한국전 참전 용사 기념재단 회장을 맡아 미국에서 ‘잊힌 전쟁’ 취급을 받던 6·25전쟁을 알리는 활동을 해왔다. 딸 배스씨는 “아버지는 상이군인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모든 이의 공적을 알리는 데 전력을 다했다”고 했다. 웨버 대령은 작년 인터뷰 당시 “미국인들은 6·25전쟁을 더는 ‘중요한 역사’로 보지 않는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내 동료는 이미 거의 모두 세상을 떠났다”며 “남아 있는 내가 한국전쟁을 더 알려야 한다”고 했다. 그는 “북한과 중국은 부정하겠지만, 북한이 남한을 침범했고 이를 중국이 도왔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자 간단한 진실”이라고 했다. 웨버씨 장례식은 이달 말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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