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4월 13일 조선이 겪은 최대 국난인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왜구가 침범해 왔다. 이보다 먼저 일본 적추(賊酋) 평수길(平秀吉)이 관백(關白)이 되어 여러 나라를 병탄하고 잔혹하고 포악함이 날로 심했다. 그는 항상 중국이 조공을 허락하지 않은 것에 대해 앙심을 품고 일찍이 중 현소 등을 파견하여 요동을 침범하려 하니 길을 빌려 달라고 청했다. 우리나라에서 준엄하게 거절하자 적은 드디어 온 나라의 군사를 총동원하여 대대적으로 침입해왔다"고 '선조실록'은 기록하고 있다. 일본의 파상공세 속에 조선 관군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선조는 한양을 떠나 의주로 향하는 피난길에 올랐다. 초반의 거듭된 패전 속에서도 희망은 있었다. 이순신(李舜臣·1545~1598)의 활약이다.
'난중일기'에는 전쟁을 예견하고 미리 대비하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1592년 4월 12일의 "맑음. 식후에는 배를 타고 거북선에서 지자(地字), 현자(玄字) 포를 쏘아 보았다. 순찰사 군관 남공이 살펴보고 갔다. 정오에 동헌으로 옮겨 앉아 활 열 순을 쏘았다"라는 기록이 대표적이다. '난중일기'는 1592년 1월부터 1598년 11월 17일까지 7년간의 진중(陣中)일기로, 1962년 국보 76호, 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난중일기'에는 전투에 철저히 임하는 지휘관의 모습과 함께 가족을 걱정하는 인간적인 면모까지 기록돼 있다. 어머니 변씨에 대한 효심은 일기 곳곳에 나타난다. 1593년 5월 4일에는 "오늘이 어머니 생신이지만 적을 토벌하는 일 때문에, 가서 오래 사시기를 축수하는 술잔을 올리지 못하니 평생의 한이다"라고 하였으며, 5월 5일에는 "탐후선이 들어와 어머님이 평안하신 줄 알다. 다행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병드신 어머님을 생각하니 눈물이 절로 난다. 종을 보내어 어머니의 안부를 물어오게 하였다"라는 기록에서는 전쟁 영웅 이전에 어머니의 건강에 노심초사하는 아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1597년 4월 13일에는 어머니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조금 있다가 종 순화가 배에서 와서 어머님의 부고를 전했다. 뛰쳐나가 뛰며 뒹구니 하늘의 해조차 캄캄하다. 곧 해안으로 들어가니 배가 벌써 와 있었다. 길에서 바라보는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을 어찌 이루 다 적으랴"라고 하여, 어머니를 잃은 아픔을 절절하게 기록하였다.
1597년 10월 14일에는 아들 면의 전사 소식을 들었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마땅한데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이런 어긋난 일이 어디 있을 것이냐. 천지가 캄캄하고 해조차도 빛이 변했구나"라고 하여 아들을 먼저 보낸 비통한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부인 방씨에 대해서는 "아침에 탐후선이 들어왔는데 아내의 병이 매우 중하다 한다. 그러나 나라의 일이 이러하니 다른 일은 생각할 수 없다"거나, "아내는 불이 난 뒤로 크게 상처를 받았고 담과 기침이 심해졌다고 한다. 걱정이다"라고 기록하여, 아내의 병을 비교적 담담하게 받아들이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원균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인식이 많다. 1593년 2월 22일에는 "경상 좌위장과 우부장은 보고도 못 본 척하고 끝내 구하지 않았으니 아주 괘씸하였다. 분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이를 두고 경상도 수사 원균을 나무랐지만 통탄할 일이다. 오늘의 분함을 어찌 다 말할 수 있으랴"라고 하였고, 1593년 5월 14일에는 "수사 원균이 나타나서 술주정이 심하기가 말할 수 없으니 배 안의 군사들이 분개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그의 고약스러움은 차마 입으로 말할 수가 없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와는 대비되는 기록도 보인다. 유성룡에 대해서는 "좌의정 유성룡이 편지와 함께 '증손전수방략(增損戰守方略)'을 보내왔다. 수륙전과 불로 공격하는 전술 등에 관한 것이 낱낱이 설명되어 있었다. 참으로 만고에 보기 드문 뛰어난 저술이다"거나, "어두워질 무렵 성으로 들어가 영의정(유성룡)과 이야기하다가 닭이 울어서야 헤어져 나왔다"라고 기록하여, 두 사람이 시종일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였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난중일기'는 불패의 신화를 이룬 장군 이순신이 쓴 거의 매일의 전쟁 상황 일기라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여기에 더하여 가족을 걱정하고 호불호가 분명했던 인간적이고 진솔한 모습까지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