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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붙어 다니는 자동차를 운전하는 이라면 감히 확인하지 못했을 일을 시험비행 조종사(테스트 파일럿·test pilot)는 기꺼이 해낸다. 조립을 마친 항공기가 문제없이 만들어졌는지 알아보기 위해, 새로 개발한 항공기가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임무 수행이 가능한지 확인하기 위해 테스트 파일럿은 조종간을 붙잡고 항공기를 극한으로 몰아넣는다. 그들은 추락하듯 하강하다 왼쪽으로 최대한 회전하는 기동으로 항공기를 시험에 들게 한다. 이들이 체험하고 확인한 한계가 해당 항공기 운용 범위를 결정한다.
김진수 한국항공우주산업(KAI) 헬기비행시험팀 수석조종사는 최근 캐나다 북부에서 소형무장헬기(LAH·Light Armed Helicopter)를 영하 32도 이하에 12시간 계류하고 꽁꽁 얼린 뒤 정상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테스트를 마쳤다. LAH는 육군의 노후 공격헬기를 대체하기 위해 KAI가 개발하고 있는 항공기다. LAH는 2019년 지상에서 30피트(약 10m)까지 이륙해 제자리 비행 후 착륙하는 초도비행을 마친 뒤 시험비행을 거듭해 올해 개발을 마친다. 총 7000개 이상 테스트 포인트 중 마지막 단계에 해당하는 비행시험의 시작과 끝을 담당하는 김 수석조종사에게 극한을 확인하고 한계를 설정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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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 업무를 간단히 설명하면 크게 두 가지다. 새로 개발된 항공기에 대해 비행시험을 통해 엔지니어가 원하는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 새로 개발된 항공기의 성능과 안전한 운용 영역을 정의하고 한계를 설정하는 것이다.
―지난겨울 캐나다에서 LAH 저온 비행시험을 마쳤다. 무엇이 가장 까다로웠나.
▷'소킹(Soaking)' 시험이다. LAH를 정해진 시간 동안 정해진 온도 대역에 노출시킨 뒤 비행시험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 시험은 적합한 온도를 맞추는 것부터 어렵다. 항공기를 12시간 넘게 영하 32도 이하에 노출시켜야 한다. 극저온에 노출시킨 뒤엔 예측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소킹 시험 당시 에피소드가 있다면.
▷시험비행을 할 때 조종사들은 무릎 위에 필기구를 준비한다. 그런데 소킹 시험에선 볼펜이 모두 얼어 메모할 수 없었다. 잉크 타입, 볼 타입에 관계없이 전부 사용할 수 없었다. 항공기 실내 영상을 촬영하기 위해 '고프로' 같은 액션 카메라도 설치했는데 액정화면이 블랙아웃됐다. 단순한 제품들도 극저온에서는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데, 헬기 같은 거대한 복합 시스템이 이상 없이 운용된다는 게 참 대단했다. 이제는 핫팩을 볼펜과 묶어서 사용한다(웃음).
―저온 비행시험 때는 총도 챙긴다고.
▷2013년 미국 알래스카에서 수리온의 저온 비행시험을 할 때였다. 만약 비상착륙한다면 야생동물과 마주치는 상황에 대비해 총과 탄환이 지급됐다. 북극곰이 많이 출몰하는 지역이라고 했다. 다행히 총을 사용할 일은 없었다. 이번에 LAH 저온 비행시험이 진행된 캐나다 북부는 여우나 누는 있지만 곰은 출몰하지 않는 지역이었다. 비상 의료약품, 비상 텐트, 침낭 보온장비 등도 구비한다.
―'이런 항목까지 테스트가 필요한가?' 싶은 때는 없었나.
▷최대 자동활공(autorotation) 속도를 결정하는 게 그렇다. 비행시험에선 강하율이 6000FPM(Feet Per Minute) 수준을 넘기도 한다. 6000FPM이면 1분당 1828m를 이동하는 속도다. 일반적으로 여객기가 착륙할 때 강하율은 1000FPM이고, 최대출력으로 활주로를 막 이륙할 때 상승률은 2000~3000FPM이다. 자동활공 속도 범위를 운용자에게 넓게 제공하는 건 좋지만, 강하율을 6000FPM 수준까지 시험해야 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래도 필요한 이유는.
▷지대공미사일이 발사되는 상황에서 항공기가 미사일 공격 노출에서 벗어나기 위해 추락하는 속도 이상으로 빠르게, 지상으로 깊이 강하하는 경우를 상정할 수 있어서다.
―가장 긴장되는 순간은 언제인가.
▷시험비행 전날이다. 난도와 위험도가 높은 시험을 준비할 때면 항상 하루 이틀 전에 테스트 카드 리뷰(Test Card Review)를 한다. 해야 할 기동을 머릿속에 그리며 예행연습을 한다. 시험 환경을 예측하고 몸과 마음이 익숙해지도록 한다. 겁이 날 때도 있다. 강하율이 급격하게 나오는 시험을 하기 전날 밤에는 꿈에서 그런 기동이 체감되며 깜짝 놀라 깨기도 한다. 시험 당일이 되면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지는 편이다.
―평소 마인드 컨트롤 방법은.
▷숙달이다. 전날이나 전전날이면 테스트 카드 리뷰를 한다. 이때 기동이 구체화된다. 이렇게 비행해야겠구나 하는 게 엔지니어와 협의된다. 이후에는 계속 마음속으로 예행연습을 한다. 시뮬레이터로도 연습한다. 비행기를 타지 않는 동안에도 비행기 타는 모습을 떠올리며 늘 연습한다. 당일이 되면 신체적·정신적 컨디션이 비행시험 업무에 맞춰진다. 평상시에 운동도 많이 한다. 걸으며 명상하고, 생각을 정리한다.
―시험비행 도중 아찔한 순간이 있었나.
▷2018년 미국 미시간주에서 수리온 결빙시험을 했을 때다. 마지막 중요한 시험 포인트를 채우지 못했는데 기온이 점점 따뜻해졌다. 시험 성패를 좌우할 만한 결과를 끌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전문 기상학자가 위성 관측 정보를 확인하고 강력한 결빙 수준을 보이는 장소를 알려줬다. 크루들이 즉각 그 장소로 비행했다. 63빌딩 두세 채가 서 있는 듯 위압감을 주는 구름이 한군데 모여 있었다. 일반적인 비행이면 당연히 회피해야 할 기상이지만, 크루들과 협의한 후 진입했다. 그때, 지금까지 만나보지 못한 강력한 결빙 수준을 겪었다. 항공기 표면이 순간적으로 얼기 시작했다. 블레이드에도 얼음이 달라붙었다. 파워 게이지가 20% 이상 쭉 올라갔다. 항공기가 제대로 자세 유지도 되지 않는 비행을 경험했다.
―어떻게 대처했나.
▷안전한 속도와 파워 게이지 상태를 만들어주는 게 우선이었다. 자동비행 조종 장치를 껐다. 테스트 파일럿은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고 어떻게 대응할지 습관적으로 떠올린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기계적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계속 훈련하고 숙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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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4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저는 ROTC 출신이다. 당시 육군 항공 헬기 조종사 20명을 선발하는 과정에 참여했다. 그때 처음 친숙화 비행을 했다. 지금은 박물관에 보관된 'OH―23'이라는 헬기를 탔다. 비행이 뭔지도 모르고 교관 옆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활주로에서 가속해 공중으로 죽 떠오르는데, 그때 가슴 벅차오르는 감정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테스트를 마친 항공기와 작별하는 기분은.
▷2013년 군에서 전역하고 KAI에 입사한 이후 주로 양산시험비행을 했다. 양산호기는 마지막 날 페리비행(Ferry Flight)을 하며 운용자에게 인도된다. 최종 운용자에게 인도할 때면, 항상 항공기를 어루만지며 항공기에 당부한다. 끝까지 안전 비행 해달라고. 양산시험비행은 늘 마지막 페리비행이 기억에 남는다.
―개발비행시험을 마친 항공기는.
▷개발비행시험은 항상 첫 비행이 기억에 남는다. 최소 수개월, 길게는 몇 년간 책과 서류에서만 보던 항공기를 직접 시동을 걸고 띄우는 일은 언제나 설레고 흥분된다. 시제기는 조립 이후에도 지상에서 상당 기간 시험을 거듭한다. 초도비행을 위해 몇 달간 엔진런(engine run) 시험을 하며 성숙도를 끌어올린다. 이후 갓난아이 다루듯 하루하루 비행시험을 통해 영역을 확장한다. 개발 후반부에 이른 LAH는 시제기에 대한 신뢰가 가장 높을 때다. 오랜 친구 같은 느낌이 든다.
―LAH는 최초의 국산 공격헬기 개발 사업이다. 기존 헬기와 무엇이 다른가.
▷LAH는 우리나라 육군이 운용했던 '500MD'와 'AH―1S 코브라'를 대체하는 기종이다. 중량은 1만파운드(약 4.5t)인데, 이는 너무 가볍거나 너무 무겁고 큰 기종들에 비해 우리나라 산악 지형 운용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LAH의 최대 장점은.
▷기동성이다. 기동성은 안정성과 민첩성이 뒷받침돼야 한다. 높은 수준의 기동성은 사격 명중률을 높이고 생존성을 보장하는 중요한 요소다. LAH는 조종사가 조종간을 잡지 않은 상태에서 사격해도 안정성을 유지한다. 속도가 있는 비행 상태에서는 미국 군사 규격상 기동성 요구도 레벨 1~2를 달성하고 있다. 전통적 공격헬기가 갖춰야 하는 공대지미사일, 로켓, 터렛건 등이 장착됐다. 이는 전용 무장제어 컴퓨터로 제어되며, 조종사 헬멧에 장착된 디스플레이와 연동해 쉽고 빠르게 원하는 화기를 운용할 수 있다.
―테스트 파일럿으로서 지키는 원칙은.
▷시험비행 학교에서 배우는 대표적인 문구가 있다. 'Your baby is ugly.' 남의 아이더러 못생겼다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고 말하기도 힘들다. 그러나 시험비행 조종사는 이런 말을 계속해야 하는 입장에 서야 한다. 힘들고 어려운 이야기를 설계자나 사업 관리자에게 끊임없이 해야 하는 직업이다. 무언가 잘못된 게 있다면 잘못됐다고 개선해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데드라인이 있고, 스케줄이 짜인 상황에서 무엇 하나 고치려면 시간도 돈도 많이 들지만 그래도 이런 말을 해야 한다. 시험비행 조종사가 1순위로 추구하는 것은 성능과 안전이기 때문이다.
―테스트 파일럿이라는 직업의 매력은.
▷모든 조종사가 비슷할 것이다. 항상 새로운 분야에 첫발을 내딛는 느낌이 든다. 내가 밟았던 자리 위로 한계가 만들어지고, 새로운 체계의 운용 영역이 결정된다. 어떤 때는 위험하기도 하지만 많은 부분에서 성취감과 보람을 느낀다.
―최근 헬기 추락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우리나라 헬기 운용은 군·경찰·소방 등 임무 중심의 국가항공기 운용이 대다수다. 기본적으로 위험성과 난도가 높은 환경에서 사용되고 있다. 단순히 공항에서 공항으로 이동하는 게 아니고, 어려운 자연환경에서 위험한 임무를 수행한다. 사고의 위험성이 어느 정도 늘 함께한다. 조금 더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항공기를 개발하기 위해 마음을 다잡고 있다.
▶▶ 김진수 수석조종사는…
1971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금오공과대에서 정밀기계공학을 전공했다. 1994년 육군 항공장교로 임관해 근무하다 2013년 전역했다. 복무 중 미국시험비행학교(NTPS)에서 비행시험공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기동헬기 '수리온' 시험비행에 참여했다. 전역 후 한국항공우주산업에 입사해 현재 헬기비행시험팀 수석조종사를 맡고 있다. 지난 28년간 32개 기종을 조종했고, 누적 비행시간은 4300시간이 넘는다.
[문광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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