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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에 '사람 살리는' 기업이 있다고요?

황태자의 사색 2022. 4. 16.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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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에 '사람 살리는' 기업이 있다고요?

드라마로 주목받는 웹툰 `내일`

175번 탈락한 취준생
노숙자 구하려다
혼수상태 빠져
`주마등` 위기관리팀
계약직으로 입사

왕따 시달리는 학생
고통받는 참전용사 등
벼랑 끝 내몰린 사람에
희망의 손 내밀어

"말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다른 선택 있었을 것"

  • 박대의 기자
  • 입력 : 2022.04.15 17:08:41   수정 : 2022.04.16 00:5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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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내일`은 저승 독점기업 `주마등`의 특별 위기관리팀 소속 3명이 이승에서 자살하려는 자들을 막기 위해 힘쓰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앞쪽부터 구련, 임륭구 등 저승사자 2명과 혼수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들과 계약하는 최준웅. [사진 제공 = 네이버웹툰]
"무슨 일이 생기든 무시하고 집에 갔더라면, 아니 애초에 거길 가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어느 날 밤 술에 취해 한남대교를 걸어가던 27세 최준웅은 신세한탄을 하고 있었다. 대형 병원 외과 과장인 아버지와 판사인 어머니를 둔 부족할 것 없는 집안 출신에 명문대 차석이라는 학벌, 토익 980점의 높은 스펙까지. 남보다 모자랄 것 없는 인생을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준웅은 인턴에 신입사원 공채, 심지어 아르바이트까지 모두 불합격 통보만 받고 있는 취업준비생이다. 지금까지 통보받은 서류전형 불합격 통보 건수만 자신의 키(175㎝)와 같다. 준웅의 눈에 자신을 알아봐주지 않는 세상은 미쳐 돌아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알 수 없는 시련을 한강에 풀어내고 있던 준웅은 노숙자와 시비가 붙는다. 빚더미에 앉은 노숙자는 나잇값을 못한다는 준웅의 말에 발끈해 난간에 메달렸고, 그를 말리려던 준웅은 노숙자와 함께 다리 밑으로 떨어진다.

죽은 줄만 알았던 준웅은 혼수상태로 병원으로 옮겨지고, 눈을 뜨지 못하고 몸도 가누지 못하는 상태에서 옆에 사람이 있다는 인기척만을 느낀 채 누워 있다. 창백한 낯빛을 한 남녀 한 쌍이 잠들어 있던 준웅의 정신을 일으켜 세우고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을 쏟아낸다. 자신들이 저승의 독점 기업 '주마등'의 특별 위기관리팀 소속 저승사자라는 사실과 준웅이 3년 뒤 가을까지 혼수상태로 지금처럼 병원 신세를 져야 한다는 것. 그리고 취업이 잘 안 되는 이유는 준웅이 두 번째 전생에서 비열한 간신이었기 때문이라고.

"너무 절망하지는 마. 우리 조건을 받아들이면 예정 기간보다 빠르게 혼수상태에서 깨어날 수 있어. 원하는 대로 취업도 할 수 있고. 우리와 함께 일하는 것, 그게 조건이야."

도포도 없고 갓도 쓰지 않은 저승사자들의 제안이 탐탁지 않았지만 준웅은 오직 빨리 혼수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에 저승사자들의 조건을 승낙한다. 176번 만에 일자리를 구한 준웅은 저승사자들과 함께 죽음을 쫓기 시작한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저승사자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자들만을 쫓아다니며 그들의 자살을 막으려고 한다. 저승사자가 하는 일이 자살하는 사람을 막는 일이라고? 준웅의 혼란은 끝이 없다.

웹툰 '내일'은 오랫동안 취업준비생이었던 준웅이 우연히 일어난 사고로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는 저승사자들을 만나 이들과 함께 '위기관리팀' 계약직 막내로 일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만화다. 네이버웹툰이 아마추어 웹툰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운영하는 '도전만화'로 시작한 작품으로, 2017년 정식 연재 작품이 된 이후 5년간 250회에 달하는 회차를 이어오고 있다.


 [사진 제공 = 네이버웹툰]
'내일'은 죽음을 상징하는 저승사자들이 오히려 삶의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을 살린다는 독특한 설정으로 주목받고 있다. 첫 에피소드에선 학교에서 흔히 일어나는 따돌림을 주제로 독자의 공감대를 불러일으켰고, 이후 참전용사, 위안부 피해자 등 특정 계층이 겪는 문제를 다루면서 독자들에게 그들의 고통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성별 갈등이나 성소수자 문제와 같이 사회적으로 논란이 돼온 소재도 과감하게 다루면서 독자들이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도록 했다.


 [사진 제공 = 네이버웹툰]
만화를 그린 라마 작가는 "매번 에피소드를 전개할 때마다 스스로 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주인공을 벼랑 끝까지 몰고 가면서 독자들께서 답답해하는 '고구마 구간'을 만들기도 한다"며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읽는 분들이 주인공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의 마음을 느끼면서 공감할 수 있고, 그것이 작품을 그리면서 제가 독자들에게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만화를 그리게 된 것은 어머니 지인의 자녀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실을 알고나서부터였다. 라마 작가는 "누군가 그분의 말을 들어주고 끝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생각에 자살하는 자를 막는다는 이야기를 그리게 됐다"며 "죽은 이를 인도하는 저승사자가 오히려 죽으려는 자를 살린다는 설정으로 발전하면서 지금의 만화가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제목 '내일'에는 세 가지 뜻이 담겼다. 죽음을 결심한 사람들이 아픔을 이겨내고 맞이할 '내일', 다른 사람의 일을 '내 일'처럼 여기는 것, 그리고 주인공 3인방이 해야 하는 '나의 일(내 일)'. 라마 작가는 "스스로 죽음을 원하는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내일'을 찾아주는 저승사자들의 이야기라서 제목을 지었는데, 중의적으로 해석되는 점에서 더 마음에 들었다"며 "심심할 수 있는 제목이지만 이보다 더 어울리는 제목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매번 에피소드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사연을 찾는 일은 작가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포털 사이트에서 '자살'이라는 단어만 검색해도 쏟아지는 기사들 속에 안타까운 소식들이 재발하지 않도록 만화로 만들어 내는 일이 작가에게는 더욱 고된 일이다. 라마 작가는 "만화로 그렸을 때 잘 만들 수 있을지, 비슷한 일을 겪은 이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지를 고민하고 소재로 활용한다"며 "소재를 찾는 일보다 인물과 인물이 처한 상황에 살을 붙여 가며 이야기를 진행하는 과정이 더 힘들다"고 털어놨다.


매 에피소드의 부제가 한 차례를 제외하고 모두 가요 제목인 점도 눈에 띈다. 자우림의 '낙화',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 이데아', 이승철의 '서쪽 하늘', 이효리의 '미스코리아' 등 유명 가수들의 노래 제목이 부제로 붙었다. 라마 작가는 "노래 가사가 해당 에피소드의 내용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어, 어쩌면 독자들에게 부제를 통해 에피소드에 대한 힌트를 드리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만화는 인기를 얻으면서 14권의 단행본으로 출판됐고, 이달부터는 동명의 TV 드라마로 제작되면서 인기를 잇고 있다. 최근에는 영어, 중국어, 프랑스어 등 8개 언어로 해외에서도 연재되고 있다. 라마 작가는 "제가 그린 작품을 책과 영상으로 마주할 수 있어서 감사할 따름"이라며 "생명의 소중함을 알리는 기회가 좀 더 넓어질 수 있도록 계속 만화를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박대의 기자]